일상을 회복 하였다.
쉽지 않게 되찾은 일상.
내가 존경하는 이들을 찾아 보면서
그 인물들이 겪은 수난에 비하면
그 분들은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했어도
결국은 이루지 못하고 병세를 더하여 일씩 별세하신
얼굴과 마음씨 다 천인 선녀같이 느껴지는 림혜인을
보면 숙연해지고 또 다시 힘을 얻게 된다.
참 말 나온김에 추가 설명 드리자면
그들은 자국 문화재 고대 건물 보호에만 애쓴것이 아니라 미군기가 일본을 폭격할때 문화재 위치를 폭격하지 않게끔 죄표를 그려줘서 교토 등지의
천년이상된 문화재들이 불타지 않을수 있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전쟁중인 적국의 문화재까지 보호하려는 마음
인류애가 없이는 불가능한
그 마음 넓이는 헤아릴수가 없다.
그들이 림혜인 선생과 량사성 선생이다.
근대 위대한 여성들중 드물게 몇분만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선생이라 극 존칭을 쓰며 부르는 인물이 림혜인이다. 남편보다 더 천재적인 인물이나
여성인 관계로 그리고 근대 유명한 사상가이자 계몽가인량계초의 며느리라는 이유로 같은 건축학자인 량사성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많이 저평가 되어 있고
인격면에서도 따라 올자가 없다고 생각한다.
량사성이 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히는것은 건축설계 도면 등등 실력도 그렇지만
도덕면에서도 인격 면에서도 발 뒤꿈치도 따라 가지 못한다.
그중 이유중 하니가 림혜인이 살아 계실때는 량사성의 부족함을 커버 해줬으나 림혜인이 사망하자 량사성의 안목과 인품이 바로 들어 났다.
림혜인의 먼 친척인 낫 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자기집에서 도우미 신분으로 시중들던 림매라는 여인을 후처로 들인것만 봐도 알수 있다.
그의 친구들이 거의다 량사성과 손절하고 절교 했고
량사성 사후 림매라는 여인이 그의 집안에서 내려오는 국보급 서적들 특히 송나라때 내려온 건축설계서를 비싼값에 받기 위해 책장을 뜯어서 판 일이나
디른 문화재들도 팔아 분실되게 했으며 림혜인이 이웃에 사는 김악림과 정분을 통했다는 헛 소문을 퍼뜨려 야사에 오만가지 버전으로 전해져 내려오게 한것도 림매라는 여인이 최초로 자서전에 림혜인을 시기 질투하여 적은 내용을 호사가들이 그렇게 문장을 만들어 갔던것이다. 풍류 남아 서지마도 거절한 여인인데 그리고 그의 인품상 결혼중에 다른 남자랑 정분나는것은 불가능 하기도 하고 만약 사실이라면 그의 성격상 량사성과 이혼하고 정정당당하게 유명한 철학자 김악림과 결혼 했을것이다. 그리고 김악림은 림혜인이 좋아할 스타일도 아니다. 김악림은 림혜인을 사모하여 평생 결혼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나 그의 사생활은 철학자 답게 자유 분방 했으며 그런 그를 림혜인이 결혼하여 애가 둘이 있는 상태에서 그에게 정분이 생긴다는것은 어불성설이다.
그처럼 깨끗하게 살아도 량사성이 지체 없는 후처를 맞은 이유로 죄없는 림혜인까지 욕보게 된것이다. 그것이 량사성이 림혜인이 발끝에도 못 미친다고 하는 이유다. 림혜인 가문은 친 남동생 삼촌 등을 포함하여 열명이 넘게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숨젔고 그의 남동생은 전투기 비행사로 일본군과 써우다 전사 허셨다.
그런 그분의 만문영렬의 집안의 그가 애 둘을 가진 상태에서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남자와 정분났다고 하는것은 그에 대한 모욕이다.
그 모욕의 씨를 량사상이 심은것이다.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 그럼으로 배우자 친구를 사귈때에는 극히 신중헤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