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이란 추상적인 것이고
인간이 필요에 의하여 보편적인 것처럼
만들어 놓은 기준에 불과하다.
만 사람은 만 사람의 도덕의 기준이 있다.
도덕은 필요하나 부도덕한 이들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많다.
진짜 심판은
오직 하나님만 내리실 수 있다.
그런 추상적인 걸로 스스로 도덕적인 인간이라
자만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도덕은 신이 보시기에 미쁜 일이지
스스러의 자악감각이 좋은 일이 아니다.
신만이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을 오만하게 스스로 판단 내렸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법은 최저한도의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 찾게 되는 도구일 뿐이다.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인물들과
인의도덕을 논하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않으련다.
그리고 살면서 신앙 양심 성경 십계
반야심경 니체 쇼펜하우어 등등을 통해서도 상식과 수양을 쌓을 수 있고
이젠 상식을 논하는 일도
술을 마셔 비 이성적인 상태에서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일도 점점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큰돈을 빌려줬음에도 온갖 핑계들로
반환을 거부하고 적반하장으로 자신의
불의를 상대에게 투시하고
궤변을 늘어놓던 상대도
200만 원 줄여줄게 해도 꿈쩍 않고
온갖 지랄발광 하던 사람도
결국엔 100만 원 변호사 비용으로
더 이상 그 악다구니를 직접 대응하지 않아도
되는 기적을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악은 너의 나약함을 딛고 쳐들어 오고
선은 너의 친절함을 먹고 그것을 몇 배로 돌려준다는 사실을
깨여있고 용감하고 지혜로와야 한다는 것도.
신이 심판 하지만 신은 우리에게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
여러 시련을 겪으면서 그 능력을 의식하고 장착하게끔 만들어 준다.
주변의 선과 악을 다시 돌이켜 보게 된다.
거리를 둘 필요가 있는 인연과 가끔
연락하고 고마움을 전할 필요가 있는 인연
좋은 소식 생기면 전하고 싶은 인연을 떠 올려 본다.
신만 바라보자.
신을 믿고 신을 향해 나아가며
내 몸을 튼튼하게 만들고
내 손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좀씩 나아지는 글씨들이
나를 즐겁게 만든다.
악을 직접 치려던 그 칼을 내려놓고
회 칼을 들고 가족 형제들에게 정성껏
종이처럼 얇게 가자미 회를 떠서
함께 나눴다.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내 가족을 나를 지켜내는 것은
결국은 건강과 정당하게 벌고 모아둔
돈이었다.
그리고 양심이고 신앙이였다.
그 뒤에는 내 가족들이 쌓아 올린 보이지 않는
힘도 분명 한몫 했었다.
내 사촌형과 친구가 만들어 놓은 보이지 않는
힘의 장막도 물론 악의 무리들에겐 작용했음은
느끼고 있다.
보이지 않는 영향력 그러나
분명 존재히는 힘이 있다.
그 힘이 만만하다면 치고 들어온다.
덕분에
깊은 성에 들어가 명상을 하며 조용히 쉴 수 있었고
돈으로 대리인의 시간을 사서
대리하게 함으로써 나의 시간 정력을
아껴 소중한 사람들과 일에 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결과는 중요치 않다.
양심에 어긋나는지가 중요하고
말씀과 십계를 지켰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이 여유와 쌓아온 지혜도
부모님의 헌신과 근검절약 덕분에
이룩할 수 있었던 것임을 자각하며
주신몸 주신 가르침에 감사드리며
겸허히 살아가고 당신들처럼 살아가리라
다짐을 한번 해본다.
당신들의 삶을 돌이켜 보고 그리고
지금의 당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토록 건강하고 맘 편히 사시는 모습을 보면서 인과보응이란 진짜로 존재하는구나 하면서
더욱 믿게 된다.
더욱 조신하게 살리라 다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