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의 한식첩 공유.

by 수호천사

송나라 때 정치인이자 학자이고

문장가인 소식과 관련된 문장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중국인들도 송나라 황제 이름 두세 명

대보라면 힘들어한다.

송휘종 알고 나머지는 모르기 십상이다.


소식은 한국에서 정약용에 비교하면

알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둘 다 문장가이고 오랜 시간

유배를 당하고 유배지에서 많은 경험과

체험을 통해 실학을 연구하고 그것이

대중들에게 유익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많아 보인다.

하도 많은 풍파를 겪었음에도

달관한 사람 해탈을 얻은 도인의

풍모를 보이는 모습도 닮은 듯싶다.

그처럼 소동파는

중국 사람들 남녀노소에게 익숙하고

친절한 존재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일생은 파란 만장한 일생이었다.


소식 이름보다는 소동파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의 호가 동파거사였다.

그는 생애동안 현재로 치면 30여 개

성과 시를 지나며 수많은 흔적과 과업을 남겼다.


그는 문자가이자 서예가이며 화가이자

정치가였다.



천재 소년으로 이름났고

그의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더불어

삼소로 유명하다 모두 문장가이고

정치인이었다.


소동파는 항주 밀주 서주 호주 등지의

현재로 치면 시장으로 있으면서

서호에 제방을 만들고 곳곳에서

수리시설을 보수하는 등 공을 세웠다

항주 서호에 가면 걷게 되는 소제가

그가 900년 전 쌓은 제방이다.

그리고 중국 음식에서 그 유명한 동파육이

소동파가 발명해 낸 음식이다.

파란만장한 인생이 아니었더라면

일범풍순한 인생이었다면 과연

수십 개의 도시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을지

버려지는 비게덩어리를 이용해

동파육을 만들 생각조차 못했을 수도 있다.

이렇듯 시련과 고난은 사람의 심신을

피폐하게만 만드는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그리고 오늘은 한식첩을 소개하자면

그가 황주에 간지 삼 년째 되던 날

1082년 3월 31일

조상의 묘소에 참배할 수도 없는 신세를

한탄하면서 술 한잔하고 일필휘지로

써 내린 글자수 120 여자의 문장이 중국에서 천하 제3행서로 불리며

왕희지의 “난정집서” 와 안진경의 “제질문고”에 다음으로 명문장으로 평가받는다.


어떤 내용인가 하면


自我来黄州,已过三寒食

年年欲惜春,春去不容惜

今年又苦雨,两月秋萧瑟


내가 황주에서 보낸 한식도

세 번째나 되는구나

봄은 매번 너무 짧아 아쉽구나

난 알고 있지

내가 가는 봄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올해는 비도 많아

두 달간 멈추지 않네 마치 가을처럼 소슬하구나


이 소슬부터는 괴로운 감정이 묻어나듯

글자 크기도 제멋대로 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卧闻海棠花,泥污燕支雪

暗中偷负去,夜半真有力



방에 누워 마당의 해동화를 보노라니

비줄기에 꽃송이들이 진흙탕에 소북하네


밤중에 도적질 해 가다니

힘도 좋구려



이 문장은 장자의 문장을 인용한 것이다.

예전에 한 사람이 적은 배를

산속에 깊숙이 숨겨 놨는데

밤중에 누군가 도적질 해갔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세상일은 무상하여

사람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아무리 깊게 완벽하게 숨겨놔도

훔쳐갈 수 있음을 뜻한다.

소동파는 도적질 도 偷자를 아주 크게 쓰고

힘도 좋구나. 真有力

좁고 약하게 쓴 것을 보아낼 수 있다.


何殊病少年,病起头已白

春江欲入户,雨势来不已

小屋如渔舟,濛濛水云里。


마치 병든 소년이 병은 나았으나 머리가

하얗게 된 듯하구나.

여기서는 술을 먹고 쓰다 보니 병들다

병자를 病을 빼먹고 나중에 작은 글씨로

옆에 붙여서 쓴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유유자적한 맘가짐 완벽을 추구하지 않고 소탈한 그의 성격을 보아낼 수 있다.


봄비로 불어난 강물이 방으로 들어 오려 드는구나 비가 멈출 기색이 안 보이는구나

초가집이 마치 작은 고깃배처럼

물안개 속에 흔들리는구나


空庖煮寒菜,破灶烧湿苇


텅 빈 주방에서 식은 야채반찬을 젖은 갈대로 불을 지펴

덥히니 연기가 자욱하구나.


那知是寒食,但见乌衔纸。

君门深九重,坟墓在万里。

也拟哭涂穷,死灰吹不起


까마귀가 종이돈을 물고 날아가니

한식인 줄 알았더라.

뜻을 펼치려 해도 그 깊은 문은 나를 향해 열려있지 않고

조상님의 묘소는 만리밖에 있구나.

막막한 맘에 울고 싶어도

맘이 재가 되어

울어지지도 않는구나.



사람의 감정은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천 년 전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자유롭고 안전한 세상에

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수시로 검색해서

천 년 전 2천 년 전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흔적을

무료로 찾아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세대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된다


추석이 한 달도 남지 않는 시점

자의 반 타의 반

조직생활을 떠나 야인이 된 지 한 달이

되어 가는 시점

한 달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소회를 느꼈다.

그 느낌을 공유해본다.

내년 이때쯤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어디에 살고 있을지

어떤 글들을 찾아 읽고 있을지

일 년 전에 비해서는

덜 불안한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맘가짐 몸가짐이 고요한 상태라

다행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自我来黄州,已过三寒食。年年欲惜春,春去不容惜。今年又苦雨,两月秋萧瑟。卧闻海棠花,泥污燕支雪。

暗中偷负去,夜半真有力。何殊病少年,病起头已白。春江欲入户,雨势来不已。小屋如渔舟,蒙蒙水云里。

空庖煮寒菜,破龟烧湿苇。那知是寒食,但见乌衔纸。君门深九重,坟墓在万里。也拟哭涂穷,死灰吹不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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