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벌의 교실(2)

안녕, 여왕벌? 난 양봉업자야.

by silvergenuine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예술강사 무용수업을 마치고, 별님이를 케어하느라 무용수업을 함께 지켜보셨던 특수실무사님께서 나에게 따로 말씀을 꺼내셨다.


"선생님, 달님이가 너무 안쓰러워요. 아까 모둠 구성을 하는데 소율이가 달님이랑 같은 모둠이 되니까 표정이 싹 굳으면서 너무 싫은 티를 내는 거예요. 그런데 달님이는 한마디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고, 제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소율이한테 말을 했어요. '소율아, 아까 모둠 구성할 때 달님이랑 같은 모둠 되니까 네가 너무 싫어하는 표정을 보이던데 그러면 달님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라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소율이 표정이 못됐게 변하면서 뭐라는 줄 아세요? '유승이도 그랬는데 왜 저한테만 뭐라고 하세요?' 이러는 거에요. 제가 너무 당황스러워서 '내가 유승이 표정은 못 봤고, 네 반응이 눈에 보여서 그랬어. 유승이도 그랬다면 유승이도 잘못했네, 앞으로는 그러지마'라고 말은 했는데 별로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더라구요."


"안 그래도 소율이가 우리반 여왕벌이라는 말을 들어서 요즘 주의해서 보고 있었어요. 아까 그 표정은 제가 미처 못 봤는데, 실무사님께서 잘 보고 계셨네요. 실무사님 말씀에 반성은 안하고 유승이를 끌어들이고, 자기만 뭐라 한다고 따지다니 정말 보통이 아니네요. 유승이도 그랬을지 몰라도 소율이 행동은 그 자체로 잘못된 거라고 지도해야죠. 제가 둘다 이야기 좀 해볼게요"


"아니에요, 선생님이 이 얘기를 하면 제가 말한 걸 알고 소율이가 절 더 안 좋게 여길 것 같아요. 이번 일은 알고만 계시라고 말씀드렸어요."


실무사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부분들이 더 많이 있었을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달님이가 꿋꿋하게 생활하고 있지만 그러고보니 소율이 뿐 아니라 소율이 단짝 소인이도 달님이랑 별로 어울리지 않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1학년인데다 여왕벌인지 뭔지 신경도 안 쓰는 대다수의 남학생들과 여왕벌이 견제하는 여자아이들, 여왕벌이 무시하는 아이들이 그냥 옹기종기 놀고 싶은대로 놀고 있다는 것이다. 여왕벌이 겉으로 드러나게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괴롭히지 않는 상황에서 콕 집어 지도하기가 애매했으므로 일단은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교사와 여왕벌의 관계 설정

소율이는 입학 초부터 눈에 띄는 여학생이었다. 한글을 술술 읽고 문해력도 우수하며 수학에도 자신 있다. 쉬는 시간에는 혼자 있는 법이 없으며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놀이를 주도했다.

선생님한테는

"선생님, 오늘 머리가 예뻐요.", "주말에 보고 싶을 거에요."

이런 말도 할 줄 안다.


한 번은 수업 중에 한 친구가 바닥에 토를 했다. 아이들에게 개별 학습을 시킨 뒤 내가 고무장갑을 끼고 걸레질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 있던 소율이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선생님, 힘내세요."

라고 말해서 헛웃음이 난 적이 있다.

"어머, 그래. 고마워."

라고 대답은 했지만, 감동적이라기보다는 좀 어이없는 기분, 그게 뭘까. 내가 을이 된 기분?


소율이가 또래보다 발달한 언어능력과 상황파악능력을 발휘하여 담임에게 순수한 애정과 격려를 전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한편 여왕벌의 기질을 염두해두고 바라보면 자신에게 담임은 중요한 힘의 원천이므로 교사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만들기 위해 이런 호의적인 표현을 자주 건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없는 가운데 교사에게 호의적인 여왕벌 기질의 소율이. 나를 끌어당겨 자신의 편에 두고 싶어하는 그 아이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난 중립기어를 넣고 밀당을 해야했다. 여왕벌의 언행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여왕벌이 교사를 적대적으로 인식하여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아이의 호의에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되 일관된 지도원칙을 지켰다.


여왕벌이 왜 그럴까

그러던 중, 소율이에게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전 내내 잘 지내다가도 급식 시간이 다가오면

"선생님, 배가 아파요."

라며 자신의 배를 잡고 복통을 호소했다.

"갑자기 왜 그러지? 어떻게 아파? 급식은 먹을 수 있겠어?"

"아니요, 못 먹겠어요."

"그럼 급식실에 흰쌀죽 있는데 그거라도 먹어볼래?"

"네, 먹어볼게요."

그렇게 죽을 먹은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오후 활동을 정상적으로 소화했다.

처음에는 사나흘에 한번 정도 그러더니 점점 그 빈도가 잦아졌다. 복통의 원인이 신체가 아닌 심리적 요인에 있음을 알 수 있었던 나는 '왜 계속 이러는가'에 대한 피로감과 의문을 갖게 되었다.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보았다.


첫째, 결핍된 관심과 애정을 얻기 위한 관심추구행동.

올해 1월에 소율이의 동생이 태어났다. 소율이가 겉으로는 동생이 귀엽다고 말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는 관심의 분산으로 인한 애정 결핍과 상실감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심인성 통증이 되어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났고 이를 통해 교사와 부모의 관심을 획득하고 있다.


둘째, 교사의 급식 검사을 회피하기 위한 술수.

나는 아이들의 식습관 개선과 음식에 대한 고마운 마음 가지기, 지구환경보호 등을 이유로 급식 검사를 꽤 철저히 하는 편이다. 배탈을 이유로 흰쌀죽만 먹으면 급식 검사를 안 받아도 되니 아이가 이런 요령을 부리는 것인가, 또는 급식 검사 스트레스로 진짜 배가 아픈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아무래도 첫번째 가능성에 좀더 심증이 갔고 가정에서는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소율이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소율이가 학교 생활을 밝게 잘하고 있는데 요즘 들어 급식 시간만 다가오면 자꾸 배가 아프다고 해서 걱정이 됩니다. 급식시간에 계속 흰쌀죽만 먹고 있고요. 혹시 가정에서도 자주 이러는지요?]

소율이 어머니에게서 장문의 답장이 왔다.

[안그래도 집에서도 자꾸 배가 아프다고 해서 죽을 자주 주고 있어요. 이때까지 크게 아픈 곳 없이 뭐든 잘 먹는 아이였는데 1학년 되어서 급식 검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러는 것 같네요. 아이가 자꾸 그래서 저도 스트레스구요. 앞으로 학교에서 그러지 않도록 말해볼게요.]

가정에서의 아이 상태를 묻는 나의 질문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는지 소율이 어머니는 몸을 사리고 나에게 화살을 돌렸다. 답장을 보냈다.

[그랬군요. 소율이가 급식을 잘 먹는 편인데도 급식 검사 때문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면 제가 잘 살펴볼게요. 집에서도 자주 배가 아프다고 했다니 소율이에게 어떤 심리적 요인이 있는 건 아닌지 학교에 계신 위클래스 선생님께 상담을 한번 받아보도록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소율이 어머니는 위클래스 상담 의뢰에 기꺼이 응하셨고, 다음날 소율이는 위클래스 선생님과 개별 상담을 가졌다. 위클래스 선생님께서 상담 결과를 전해주셨다.

"소율이의 복통 호소는 꾀병이라기보다는 불안과 상실감 같은 심인성 증상으로 보여요. 올해 초 동생이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관심을 잃었다는 애정 결핍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어머님께는 소율이와 단둘이 함께 하며 소율이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가지면 이런 복통 증상이 많이 완화될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역시 그런 이유가 있었네요. 혹시 상담에서 급식 검사에 대한 스트레스 이야기는 하지 않았나요?"

"네, 급식 검사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난 원래 급식 시간에 아이들 동선에 맞게 퇴식구 가까운 자리에서 식사를 하며 식판 검사를 했었는데, 이번에 소율이가 정말 급식 검사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인지 알아보고자 급식 시간에 소율이 테이블에 가서 같이 식사를 해보았다. 그랬더니 소율이가 "선생님이랑 밥 먹으니깐 너무 좋아요."하며 오히려 밥을 더 잘 먹는 것이었다. 급식 검사 때문에 복통이 생긴 것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했지만, 이후 나나 소율이 엄마는 이에 대해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위클래스 상담 선생님의 조언을 충실히 따라준 가정의 변화 덕분에 소율이의 복통 호소는 이내 확실히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 오늘 왜 소율이 테이블에서 식사하세요? 우리 테이블에도 오세요" 한 아이들 덕분에 요일마다 아이들 테이블을 옮겨다니며 급식를 먹게 되었다. 우리 반 한정 셀러브리리, 행복하다.


여왕벌의 탄생비화 정리

소율이는 태어난 후 만 7년 동안 가정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군주였다.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었으며 타고난 영리함과 외향적인 기질은 여왕을 더 빛나게 했다. 그러나 올해 동생이 탄생하며 엄마의 관심과 에너지가 신생아에게 집중되자 내면 깊은 곳에 불안정감과 상실감이 자리잡았다. 소율이는 선생님의 인정을 획득하고, 또래 관계를 통제함으로서 교실에 여왕벌의 세계를 만들고 싶다. 이 과정에서 심인성 복통을 호소하며 담임교사와 어머니의 1대1 관심을 획득하고자 했다.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보이는 어머니의 방어기제, 즉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 돌리고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은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아이에게 은연중에 학습되었을 것이고 자기를 보호하는 방식이 되었다.


우리반에 여왕벌이 있다, 그럼 난 양봉업자가 되겠어. 여왕벌도 살고 꿀벌도 잘 살고, 다른 존재들도 각자 나름대로 잘 살아보자고!


다음 연재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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