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겠지?
초등교사의 자녀라는 것은 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이 알고 싶어서 나의 아이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래서 지극히 협소한 데이터)
각자 방에 있던 아들들을 한 명씩 식탁으로 불렀다. 둘 다 처음엔 뭔가 싶어 관심을 보이다가 금세 대단히 생각하기 싫어하며 대충 대답해 주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간신히 뽑아낸 대답을 정리해 보았다.
Q1. 엄마, 아빠가 교사라서 좋은 점은 뭔가요?
1호 아들(13세): 일찍 퇴근해서 좋고, 방학 때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서 좋죠. 학교 생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쉽고, 공부를 잘 가르쳐줘서 좋아요.
2호 아들(11세): 평범해서 좋아요. 그러니깐 뭐 정치 같은 큰 일을 하지 않고 소소하게 살아서 좋아요.
3호 딸 꽃봄(1세): 엄므엄므 아부부부(엄마가 육아휴직을 해서 내가 엄마 껌딱지를 실컷 할 수 있어서 좋아요)
Q2. 안 좋은 점은 뭔가요?
1호: 없었는데요. 굳이 말하자면 바른생활을 많이 강요하시는 것? 예를 들면, 인사 잘해라, 수업 시간에 집중해라, 쓰레기 버리지 말고, 음식 남기지 말고, 욕 쓰지 마라... 그래도 어차피 대부분 습관이 잡힌 거라 상관없어요.
2호: 별로. 몰라요. 없어요.
3호: 어부부부(아무 상관없어요)
Q3. 커서 초등교사가 되고 싶은 의향이 있으신가요?
1호: 안 할 거예요. 힘들게 하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있을까 봐 안 하고 싶습니다.
2호: 이 세상에 제가 할 것이 정말 없다면 아주 조금 해볼 생각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뭔가 다른 멋진 일을 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3호: 아부부부(엄마 놀아주세요)
교사인 엄마가 직접 하는 질문이라 속내를 감췄거나 아니면 정말 귀찮아서인지 대답이 신통찮지만, 그 답변으로 유추해 보자면 교사는 힘들어 보여도 교사 자녀는 할 만한가 보다.
초등교사라서 부모에게 좋은 점은 뭘까?
-시간: 아이들 말대로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해줄 수 있는 데에서 오는 장점이 많은 것 같다.
부모의 출퇴근 시간과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이 비슷하니 아이들 시간 관리가 용이하고, 집에서 직접 공부를 봐줄 시간도 꽤 확보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교사 부모 중에도 자녀 공부를 학원에 맡기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집은 아직이다.
-교육과정 이해: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잘 알다 보니 아이 학교가 대략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언제 어떤 것을 한다 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초등 수행평가는 수업 시간에 성실하면 웬만하면 '잘함'을 받을 수 있는 걸 알고 있으니 그저 학교에서 저 알아서 잘하라고 하고, 만약 수행평가 통지표에 '노력요함'이 있다면 아이의 수업태도를 나무랄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이제 아이들을 중등으로 보내고 나면 중고등학교생활과 입시제도가 생소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은 초♡중등 부부교사가 참 유리할 듯싶다.
-발달 단계 이해: 학교에서 다양한 학생들을 대하는 경험은 내 자녀의 학습, 생활, 교우 관계 수준을 객관적으로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와 동시에, 내 자녀를 키우는 경험이 다시 학교의 학생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너그럽게 포용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주기도 한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육아시간 등 보장: 13년에 걸쳐 자녀를 양육해 보니 출산육아 지원정책의 진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첫째의 어린이집 참관 수업에 못 가는 걸 당연하게 여겼지만, 이제는 가족 돌봄 휴가라는 제도가 생겨서 학부모 공개수업에 당당히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경력단절 걱정 없이 육아휴직을 쓰고, 근무기간에는 육아시간 정책으로 어린 자녀를 돌볼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한다.
이러한 문화가 다른 직종에도 많이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산율 증대를 위해서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정책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등교사 부모라서 안 좋은 점?
돈? 더 많이 버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끝도 없겠지. 지금 소확행 할 수 있고, 아이들 아이비리그 보낼 계획이 없어서 괜찮다. 아이들이 치킨에 제일 행복해하고, 옷이며 신발 등에 브랜드를 따지지 않아서 실속 있게 구매해 주는 편이다. 성장과정에서 어떤 변덕이 나올진 몰라도 그건 그때 또 대화해 볼 일.
학교학교한 생활! 학교에서 학교일, 집에 와서 학교 얘기. 아들들이 초등교사는 안 하겠다고 하는 걸 보니 부부가 특히 그날그날의 힘들었던 얘기를 많이 나눴나 보다. 그래도 서로 이야기하고 공감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도덕적 잣대. 비뚤어지게 살겠다는 건 아니지만, 교사가 잘못하면 더 엄격한 잣대를 대는 게 사회의 시선이라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려는 사람들이 많다.
엄마, 아빠가 학교를 졸업하고 또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협소할지 모른다. 이 길 말고 저 길도 있을 테고, 대범하고 혁신적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내가 아는 세상 밖의 다양한 시야와 기회를 충분히 주지 못하는 게 못내 미안하다.
다 해주진 못해도 따뜻한 식사가 있는 포근한 집이 아이들의 안전 기지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다.
아들딸이 큰 날개 펴고 세상을 높이, 넓게, 때로는 구석구석 보고 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