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풍뎅이가 좋아
담임교사의 양봉 플랜
양봉에서 여왕벌은 꿀벌 군집 생존의 핵심이지만 동시에 양봉업자가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다.
실제로 양봉업자는 필요시에 여왕벌을 교체하기도 하고, 여왕벌의 탈출을 막기 위해 날개 일부를 자르기도 한다. 여왕벌의 산란공간을 분리하기도 하며 여왕벌의 페르몬 분비와 건강 상태를 파악하여 군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관리한다.
여왕벌 아이의 타고난 성향을 없애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양봉업자의 지혜를 교실 안 여왕벌과 공존하는데 접목해 보자.
여왕벌의 영향력 분산시키기
교실에서 여왕벌 학생이 주도하는 놀이 외에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여 아이들의 관심을 분산시켜 보자.
소율이가 주로 갖고 노는 놀잇감이 우리 교실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데 그 놀이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기죽지 않도록 하려면 더 신나고 뿌듯한 활동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웬만한 놀이보다 가장 강력한 것은 양봉업자의 등판.
"선생님이랑 도서관 갈 사람?"
"선생님이랑 분리배출하러 갈 사람?"
이라고 외치면 소율이 곁을 맴돌던 아이들이
"저요! 저요!"
하면서 뛰쳐나온다. 그렇게 쉬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이들이 더 자라 보인다.
그래, 너흰 여왕벌의 꿀벌 말고 나비랑 풍뎅이랑 메뚜기 같은 거 하자. 선생님도 왕년에 풍뎅이 출신이야.
각자 다른 재미난 것을 찾아보자.
꿀벌의 정서적 독립
여왕벌 학생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 꿀벌 성향의 아이들은 여왕벌이 주는 소속감과 후광효과 때문에
여왕벌 곁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일반적인 단짝 관계와 구분하자면, 여왕벌과 꿀벌의 관계는 그보다 힘의 불균형이 심하고 꿀벌이 여왕벌의 기분과 성향에 일방적으로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여왕벌 없이도 생활할 기회를 제공하여 독립적인 관계형성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꿀벌 소인이는 똑똑하고 할 말을 야무지게 하는 아이라서 여왕벌에게 일방적으로 당할 것 같지 않지만, 여왕벌과 서로 단짝 관계를 맺으면서 같은 반 친구들을 차별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소율이와 소인이는 번호가 앞뒤라서 원래 급식실에서 나란히 앉았는데 둘이서 밥 먹는 것도 잊고 노느라 너무 바빴다. 그 모습에 며칠을 잔소리하다 결국 특단의 조치로 멀찍이 앉아있던 달님이와 소율이의 자리를 서로 바꾸게 했고, 그 결과 달님이와 소인이가 한 테이블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그런데 둘이 처음 같이 앉을 때 분위기가 너무 이상한 것이었다. 둘 다 서로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어색한 상황. 달님이는 머쓱하게 웃었고, 소인이는 조용히 밥만 먹었다. 둘이 처음 같이 밥을 먹어서라고 말하기에는 1학년이 된 지 벌써 한참이 지났고, 보통의 아이들은 옆에 새로운 친구가 오면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는데, 두 아이는 너무 거리감이 있었다.
소인이에게 달님이랑 편하게 말 좀 하라고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역효과가 날까 봐 일단 두고 보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어느새 둘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웃기도 하며 밥을 먹고 있었다. 소율이와 어울리며 달님이를 멀리했던 소인이가 달님이를 여느 친구처럼 대하고 있는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여왕벌은 섣불리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달님이와 놀지 말자고 직접적으로 말을 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평소 행동과 표정으로 싸한 분위기를 풍겼고 소인이는 거기에 영향을 받았다. 여왕벌이 소인이와 멀리 앉게 되자, 소인이는 자기 옆에 앉은 달님이와 자연스레 어울리게 된 것이다. 암, 1학년이 그래야지!
여왕벌에게 경계선 알려주기
여왕벌 학생이 부정적 행동을 할 경우 1대 1 면담을 통해 담임이 그 행동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과 다른 아이들의 감정은 어떠한지에 대해 명확히 알려주어 행동의 경계선을 그어주어야 한다.
우리 반 소율이는 겉으로 누굴 직접 괴롭히지 않았고, 자기가 피해자가 되어 교사에게 호소함으로써 다른 아이들을 조종했다. 들어보면 소율이가 놀고 있을 때 방해가 되는 행동들이었는데, 여왕벌과 놀고 싶은 순수한 접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면 교사에게 일러바치는 행동으로 영역을 지키려 했다.
"소율아, 친구들에게 공평하게 대해야 해. 놀이에 누가 끼워달라고 할 때 누구는 되고, 누구는 되지 않는다고 네 마음대로 결정하면 거절당한 친구가 너무 속상하잖아. 놀 사람이 꽉 차서 안 되는 거면 '미안한데 지금은 자리가 없어, 다음에 같이 놀자.'라고 말하고 그건 나중에 다른 친구가 와도 똑같이 해야 돼."
이렇게 알려주고 나니 좋아하는 친구와 싫어하는 친구를 눈에 띄게 다르게 대하는 행동이 많이 줄어들었다.
여왕벌의 강점 살리기
여왕벌의 우수한 사회적 기술과 인정욕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하게 하여 협력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자신만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면서 건강한 기여를 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때 배려, 협력, 타인을 존중하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칭찬하고 인정해 주면 여왕벌은 이를 통해 자신의 가치와 특별함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풍뎅이 되기
소율이가 여왕벌의 기질을 가지고 자기 마음에 드는 친구들을 꿀벌로 간택하여 친분을 과시해도 이에 연연하지 않는 독립적인, 또는 천진난만한 친구들이 더 많은 교실이어서 여왕벌의 왕국은 크게 자라지 못했다.
여왕벌의 남자친구를 제외한 해님, 영태, 준하, 민우는 어차피 여왕벌의 관심 밖 메뚜기 같은 친구들이었고 자기들 나름대로 신나게 놀며 1년을 보냈다. 비록 어쩌다 여왕벌 무리에게 놀자고 하면 거절당하기 일쑤였지만 금세 잊고 다른 놀거리를 찾아냈다.
여학생들도 나름대로 잘 살아냈다.
달님이는 여왕벌의 무시를 받았지만, 잘 보이고자 매달리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관심을 보이고, 달님이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교사에게 말해달라고 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든다. "달님아, 소율이가 너에게 그런 표정을 지었을 때 속상했지? 그건 네 탓이 아니라 소율이가 잘못한 거야. 그럴 땐 선생님한테 얘기해도 돼. 선생님이 소율이에게 그러지 않도록 말해줄게."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특수교육대상자인 별님이는 하루 한번 우리 교실에 오는 특별한 존재여서 오히려 여왕벌을 비롯한 많은 아이들이 잘해주고 싶어 했고 별님이와 무엇을 한다는 것을 우쭐하게 여겼다. 실제 별님이는 좀처럼 반친구들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았으므로 어쩌다 인사만 해줘도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수민이는 말수가 적고 도도한 느낌의 여학생이다. 여왕벌 무리가 교실 뒤에서 뭘 하고 놀든 신경 쓰지 않고 자기의 소소한 장난감을 가지고 자기 자리에서 논다. 타인에게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지 않기 때문에 친구들을 분류하거나 편견을 가지지도 않는다. 주변에 눈을 돌려 불필요한 간섭을 하지 않으며 누가 말을 걸면 필요한 말만 한다. 그러기에 말에 힘이 있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여왕벌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솔직히 담임인 나도 조심스럽게 대하는 아이다. 호랑나비 같은 친구다.
아린이는 진정 행복한 풍뎅이다. 표정 자체가 웃음을 띠고 있는, 신기할 정도로 행복해 보이는 아이다. 교실에서 꼭 붙어 다니는 단짝은 없지만 무언가 자기만의 즐거운 소일거리를 찾는 아이이며 교사를 찾아와서 자주 재잘거리며 자신의 관심사를 소개해준다. 여왕벌 무리와 상관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나무와 풀들을 오가며 삶을 만끽하는 풍뎅이를 연상시킨다. 아린이를 만만하게 본 여왕벌이 자기를 함부로 대하면 세상 슬픈 표정으로 내게 와서 말을 해준다. 덕분에 여왕벌이 더는 건드리지 않는다.
현지는 가정의 보살핌을 듬뿍 받지만 학교에서는 소심하고 겁이 많은 여학생이다. 은주는 세 자매 중 막내로 언니들에게 듣고 배운 게 많아서 학교 생활에 노련함을 풍긴다. 마침 현지와 은주는 같은 피아노 학원을 다녀서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준다. 은주가 한 때 여왕벌과 어울리면서 현지와 같이 못 간다고 해서 현지가 슬퍼한 적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은주와 여왕벌은 앙숙이 되었고, 현지와 은주는 다시 어울렸다.
이번 교실 안에서 여왕벌의 영역은 거기까지였다. 결과적으로 여왕벌의 교실이 아닌 제각각의 존재들이 따로 또 같이 노는 꽃밭이 되었다.
"넌 여왕벌이야? 나는 네 꿀벌이 아니야! 난 행복한 풍뎅이야."
<여왕벌에게서 살아남기>
자기 존중감을 지키고, 감정적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의 독립성 확보하기, 직접 맞서는 것보다는 자신만의 심리적 방어막을 치는 것으로 여왕벌로부터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나길 바란다.
* 여왕벌의 무시, 비웃음, 은근한 따돌림에 상처받기보다는 무관심하고 덤덤한 태도로 공격 동기를 약화시키자. 여왕벌이 원하는 것은 주변의 관심과 희생자의 반응이다. 여왕벌이 도발할 때는 반응하지 않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 여왕벌의 무리가 화려해 보인다고 자신의 상황과 비교하지 말자. 각자의 가치와 행복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일상과 관심사에 집중하자. 여왕벌 무리에 끼려고 굳이 노력하지 말고, 마음이 잘 통하는 다른 친구를 찾는 등 여유를 가져보자.
*무례한 행동에는 자신의 경계를 분명히 보여주자.
(감정을 싣지 말고 단호하게)"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미안해, 그렇게는 못 하겠어."
* 필요할 때는 반드시 도움을 요청하자.
담임 선생님, 상담교사, 부모님 등 주변의 어른에게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상황을 알려주어야 한다. 따돌림이나 괴롭힘의 정도가 심하다면 학교폭력위원회 같은 공식적인 절차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