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1학년, 잘할 수 있을까?

다들 잘 해내셨잖아요

by silvergenuine

"나 지금 떨고 있니?"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고르고 고른 새 책가방을 맨 아이의 뒷모습, 아이의 등보다 큰 가방처럼 학교생활이 버겁지나 않을까 안쓰럽다.

초등학교는 어린이집, 유치원과 많이 다르다던데, 긴장한 부모의 모습에 아이까지 불안해할까봐 최대한 염려는 숨기고 기뻐하고 대견해하는 마음을 전해본다.


나 역시 8살 아이의 등에 업힌 책가방 크기에 당혹스럽긴 했어도,

아무래도 초등학교에 근무를 해서인지 자녀의 입학 자체에 근심이나 불안이 들진 않았다.


우리집 첫째는 코로나로 온 국민이 불안에 떨었던 2020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입학식은 생략되었고, 원격수업이 6월 초까지 이어졌다. 아이는 3월 2일부터 돌봄교실로 등교했고, 엄마는 엄마의 학교로 출근하여 코로나 맞춤 원격수업을 준비했었다. 돌아보면 첫째는 초등학교 입학날의 사진조차 없다. 돌봄교실 처음 가던 날, 아니면 윈격수업을 끝내고 정식으로 교실로 등교하던 날에 교문에서 사진이라도 하나 찍어둘 걸, 부모가 너무 무심했다.


둘째는 그로부터 2년 뒤 입학했는데, 하필 엄마,아빠가 제각각 1학년 담임을 맡아서 정작 우리 아이의 입학식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대신 가셨다. 1학년 담임으로서 정신없는 입학식을 치뤄내고 오후가 되어서야 둘째의 입학식 사진을 보게 되었다. 까만 학사복을 입고 의젓하게 찍은 사진을 보니 고맙고 대견했다. 이웃 동갑내기 친구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오셔서 자기 아이와 우리 둘째를 같이 사진 찍어 전송해주기도 했다. 다른집은 엄마, 아빠가 오셨던데 난 왜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셨냐고 투정 한 번 없었다. 그렇게 입학식 날이 지나고 매일매일 신나게 현관을 나서 학교로 가는 아이였다. 집현관과 교문까지의 거리가 도보 3분 남짓이라 학교까지 데려다줘본 적도 없다.

훗날 나의 방학과 아이의 등교가 맞는 날이 있어 교문까지 같이 가줄까 했더니

"진짜? 그래줄 수 있어?"

하며 행복해했다. 교문에서 좋은 하루 보내라며 서로 인사를 하고 교정을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돌아왔다.

간밤에 불현듯 이런 것들이 떠올라서 새벽잠을 설치던 아이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너 1학년 때 생각나? 입학식날 누가 오셨던 거 같아?"

"기억 안 나는데."

"그날 할아버지, 할머니 오셨었잖아. 그리고 입학식 끝나고 짜장면 먹었을 껄?"

"정말 그랬었나?"

"너 입학식 때 엄마, 아빠가 못 갔었는데 서운하지 않았어?"

"괜찮았는데."

아이의 기억 속에 서운한 마음이 없다니, 미안하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다.


두 아들은 이런 엄마아빠 밑에서 어쩜 그리도 초등학교에 잘 적응했을까? 아마도 그 당연함을 믿는 가정의 분위기가 바탕이 되지 않았겠나 싶다. 멋진 8살이 되었으니 초등학교에 가는 것이고, 입학식은 함께 못하지만 축하와 격려의 마음은 집에서 나누면 된다. 교문에 데려다주는 친구 엄마를 보고도 부러워하지 않은 것은 영유아기에 형성한 안정애착을 바탕으로 부모가 바로 옆에 있지 않아도 자신을 믿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가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8살이면 초등교육과정에 짜여진 시간 정도는 일정에 맞게 스스로 보낼 수 있다고 믿었고, 못 본 동안의 그리움은 함께 하는 시간에 서로를 꼭 안으며 달래면 되었다.

"엄마 충전! 아들 충전!"


요 몇 년 사이에 교직 문화도 많이 바뀌어서 교사 자녀가 입학식이나 졸업식을 하면 근무학교에 연가나 가족돌봄휴가를 내고 참석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되고 있다. 내가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내가 맡은 1학년 아이들의 입학식을 다른 선생님께 맡기고 내 아이의 입학식에 갈 수 있을까? 둘째를 위해 그래주고도 싶지만 다시 돌아봐도 난 내 일을 했을 것 같다. 다른 학년도 아니고 1학년 우리반 아이들의 입학식이었으니.


시작은 어렵다. 시작해보기 전에는 과업의 규모가 덩어리째 느껴지며 뒤죽박죽 순서없이 머리에 들이치기 때문에 막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은 어느 일이나 같다.

초등학교 입학도 마찬가지, 입학식이라는 고개 하나만 넘고 나면 그 뒤의 일들은 미리 고민한 것들이 무색하게 하루하루 흘러간다.


-우리 아이가 교문에서 교실까지 잘 찾아갈까?

당연히. 사흘만 되어도 몸이 알아서 찾아간다.


-급식실에서 교실은 잘 찾아갈까?

급식실로 갈 때는 일년 내내 함께 손씻고 줄을 서서 이동한다.

교실로 돌아올 때는 일주일 정도 모두를 기다려 함께 교실로 돌아오는데, 일주일이 다 되기도 전에 이젠 자기들끼리 교실로 갈 수 있다며 기다리는 몸이 근질근질하다. 이 때 다 먹은 아이들 두세명씩 짝 지워서 교실에 먼저 가있으라 하면 시키지 않아도 손을 잡고 날듯이 교실로 향한다. 자기들끼리 교실로 왔다는 의기양양함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기분이 더해진다.


-화장실 실수는 하지 않을까?

첫 화장실 이용은 반전체가 이동해서 익히고, 그 다음부터는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부터 다녀오도록 기본 습관을 잡아간다. 쉬는 시간에 노는 게 먼저인 아이가

"전 안 마려운데요."

당차게 말해도 되도록이면 화장실부터 다녀오게 하는게 필요하다.

혹시나 수업 중에 화장실이 급하다면

"선생님, 저 화장실 가고 싶어요."

라고 말할 수 있어야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자꾸 반복되면 안 된다. 수업 중에 그렇게 화장실에 가야했던 경험을 통해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이용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배워야하는 것이다.


각반 분위기에 따라 화장실 이용 습관이 달라질 수 있다. 옆반 아이들은 수업 중에 그렇게 화장실을 오갔다. 나중에 보니 그것도 몇몇 아이들이 단골이었다. 수업 시간에 교실을 잠시 벗어나 옆반 수업을 구경하면서 지나가는 게 재미나고, 미리 화장실을 이용함으로써 쉬는 시간에 온전히 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게 달콤했을 것이다.

우리반은 담임인 내가 이 부분을 엄격하게 지도했기에 수업 중에는 하루에 한 두명 화장실에 갈까말까 했다.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가게 되면 수업 흐름에 방해가 되고, 화장실 다녀오는 동안 수업 내용을 놓치게 되니 반전체와 본인에게 피해가 간다.

그런데 2학기가 되어 어느날부턴가 우리반 해님이가 수업시간마다

"선생님, 저 화장실 가고 싶어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얼른 다녀와."하고 보냈지만, 몇 번 반복되자 그 행동이 쉬는 시간 화장실 갈 시간을 벌어 놀잇감을 먼저 확보하려는 전략임을 알 수 있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 안 가려고 수업시간에 간 거구나. 그러면 안 돼. 앞으로 네가 수업시간에 화장실을 가면 그 시간만큼 쉬는 시간에 앉아있게 할거야."

예고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더니 단번에 행동이 교정되었다.

표현을 못하면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나도 1학년 때 차마 화장실 다녀와도 되냐고 묻지를 못해서 교실 자리에 그대로 실례를 적이 있다.

쉬는 시간 화장실 이용이 1원칙이되, 어쩌다 수업 중에 너무 급해지면 손을 들어 표현해도 된다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부끄러운게 아니라고, 친구들은 놀려서는 안 된다고 안심시켜주어야 한다.


-보건실은 누구랑 가지?

3월 적응기에 학교 돌아보기를 하며 보건실 위치를 익힌다. 실제 보건실에 갈 일이 생기면 아이들이 너도나도 에스코트해주고 싶어하기에 정말 길을 아는 아이와 짝을 지워 다녀오도록 한다.

가벼운 상처는 교실에 있는 밴드만 붙여줘도 위안을 받는 아이들이다. '호오~'만 해줘도 낫는 경우도 있고, 밴드나 연고를 처방해주면 금세 또 웃으며 논다.

골절이나 염좌 등 보건실에 갈 정도로 크게 다친 경우라면 선생님이 동행할 것이나, 고열이나 배탈 정도는 친구와 함께 보건실에 다녀오게 하는 편이다.


3월이 지나며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반납도 수 있게 되고

선생님 뒤를 따라다니다 교무실, 학년연구실, 학습준비물실 위치도 알아낸다.

함께 분리배출하러 가는 것도 너무나 즐거워하고,

입학 후 1~2주만 담당 선생님들이 인솔해주면

돌봄교실, 방과후교실도 알아서 찾아다닌다. 특히 학교에 형제자매가 있는 아이들은 그들 학년의 교실 위치까지 어느새 알고 있어서 간혹 그 학년에 심부름 갈 일이 있으면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각자의 속도대로 학교 안을 누비며 점차 학교를 접수해가는 우리 1학년 학생들이다.


한편, 그게 어려운 아이도 있다.


교문에서 헤어지지 못하는 아이

두 번째로 1학년을 맡았을 때 처음보다 1학년 담임이란 역할에 자신감이 붙었고, 학생들도 학교가 좋다며 하루하루 잘 생활해주었다.

그러던 3월의 어느 날 옆반 선생님이 오셔서 교실 밖 계단 쪽에 우리반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교실에 안 들어간다며 울고 있다고 했다. 안경 끼고 머리에 파마를 한 아이. 인상착의를 들으니 우리반 준하(가명)가 맞는데 평소 교실에서의 수업태도나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보면 이미 적응이 끝난 것 같은 적극적인 아이라서 그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소리를 따라 찾아가보니 울고 있던 그 아이는 정말 우리반 준하였다.

"아빠, 가지마.흐엉흐엉"


...우리 준하가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다음 연재에 들려드릴게요.

오늘은 이만 굿밤.. 꽃봄이가 저를 찾아요~

오랜만의 이웃집 김선생 글이 길어져서..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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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