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비니 뭐니 해서 대머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언제나 비는 피해야만 한다고 들어왔다. 그런데 한 번쯤은 우산 없이 비를 맞아보고 싶었다. 어떤 느낌일까.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이 된 느낌? 아니면 천진난만하게 빗속에서 뛰노는 강아지가 된 느낌?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시도는 해본 적이 있었다.
"와, 가는 곳마다 비 오네."
모처럼 여행이었다. 큰맘 먹고 온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은 시작부터 삐그덕 댔다. 화창한 하늘 아래서 티 없이 맑은 바닷물과 푸른 하늘 그리고 차창 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를 기대했건만 보이는 건 세차게 흔들어대는 와이퍼였다. 차를 타고 비구름을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달렸지만 헛수고였다. 마치 만화처럼 머리 위에 먹구름이 따라다니는 것 마냥.
"야, 그냥 비를 맞고 다니자."
누구의 입에서 나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대단히 정신 나간 소리라고 넘겼다. 하지만 곱씹어 보았을 땐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럼 우산 쓰고 나가자는 거야?"
슬쩍 묻자마자 친구는 미끼를 물었다는 듯이 곧장 대답했다.
"우비랑 슬리퍼 신고 가야지! 없으면 사러 가자."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있었다. 물어본 순간 말릴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왔다. 그렇게 마트에 들러서 준비물을 챙긴 후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주위에는 우리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지. 어느 미친놈이 비가 쏟아지는데 밖에 돌아다니겠는가. 그런데 뭔가 기분이 묘했다. 해서는 안될 것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알 수 없는 쾌감이 몸에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어떤 목적도 없이 그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아니 뛰었다. 그리고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빗물을 느껴보았다. 시원했다. 차창밖에서 튀기는 빗방울에도 찝찝하다며 짜증 낸 던 나였는데 이제는 볼을 타고 흐르는 물의 감각이 좋았다. 이따금 친구와 서로를 바라보았는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마법에 걸린 걸까. 그 모습을 놓칠세라 카메라에 모습을 담았다.
정말 어렸을 적 아무런 걱정 없이 놀이터에서 뛰놀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여행에서 돌아와 뒤풀이를 하며 우린 입모아 말했다. 3박 4일 간 일정 중에 비 맞으며 뛰 놀던 게 가장 즐거웠다고.
언제 다시 빗속으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느낌이 잊힐 때쯤 고개를 들어 떨어지는 빗물을 맞는다면 왠지 다시 마법에 걸릴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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