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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Sep 15. 2023

그 '순간' 나는 펜을 들었다

별별챌린지 54일 차

#순간 1


 그냥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가슴이 막히다 못해 턱 끝까지 숨통을 죄어오는 이 느낌.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남은 시간은 겨우 1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눈앞이 캄캄했다. 매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들려오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귓가에 맴돌 뿐.


  "공부해야 성공한다."


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은 오히려 알 수 없는 반발심만 생기게 만들었다. 물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는 것은 이해한다. 다만, 그려질 앞날이 정녕 내가 원하는 것인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더 엿같은 것은 그런 '나'가 어떤 것을 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 '순간' 펜대를 들었다.

손톱만 한 자물쇠가 달려서 혼자만 열어 볼 수 있는 노트가 있었고 새벽 1시가 넘은 늦은 밤, 책상 위 스탠드를 켜고선 한자씩 써내려 갔다. 현재 나의 상황과 가슴을 쥐어뜯어버리고 싶은 심정,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 누구에게 말할 수 없었지만 글로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순간 2


 내일이면 이 지긋지긋한 곳도 끝이다. 2년이라는 세월 동안 눈물 콧물 빼가며 울고 웃었던 이놈의 군대. 그런데 돌이켜보니 시원섭섭했다. 내 밑에 줄줄이 소시지 마냥 달려있던 후임들은 잘 해낼지 걱정도 됐다. 아니, 나가는 마당에 누가 누굴 걱정하냐 싶다만. 그래도 함께 동고동락했다는 것 만으로 정이 꽤 들었나 보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펜을 들고 있었다.

마땅히 쓸 종이가 없어 사무실에서 굴러다니던 수첩을 북북 찢어서 적어나갔다. 박병장, 정상병, 이일병... 그리고 우리 막내까지. 모두들 자는 밤 플래시를 몰래 켜놓고선 미안하고 고마웠던 마음들을 전부 내어놓았다. 고이 접힌 편지는 각자의 머리맡으로 갔다.


#순간 3


 "야, 너 휴학하면 백퍼 후회해. 바로 졸업해야 취업하기 쉽지. 내가 아는 선배가 그러던데 내년이 대기업가는 막차래. 휴학하고 오면 큰일 난다."


 괜찮다고 애써 웃어보며 짐을 싸고 있었다. 대학교 3학년 기숙사에서 마지막 밤이었다.

알고 있었다. 다시 돌아오는 날엔 현실이 녹록지 않을 거라고. 평소에도 잘 따라가지 못해 허덕이던 전공수업은 더욱 힘들어질 테고, 그 많던 동기들도 전부 학교를 떠나 도움도 못 받을 테니까. 족보도 못 얻겠지? 큭. 가는 마당에 무슨. 어차피 정해진 거 다 잊고 휴학하는 동안 더 열심히 살면 되는 거다.

 하지만 기숙사 룸메이트의 조언 아닌 조언은 날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왜냐면 어떻게 열심히 살 것인지 몰랐으니까.


 그냥 쉬고 싶었다.

 별생각 없이 시간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겨왔다. 학교 수업도 때가 되면 들었고 시험도 남들처럼만 하자는 생각으로 도서관 한편에 자리 잡고 앉아만 있었다. 그렇다고 노는 것에 진심을 다하지도 않았다. 누군가 부르지 않는다면 굳이 방 밖을 나서진 않았으니까. 그렇게 20대 초반은 지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 살다가는 내일 죽어도 문제없을 것만 같았다. 그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한 번 쉬고 가자, 생각할 시간을 가지자는 것이었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는 모른 채.


 그 '순간' 펜대를 다시 들었다. 아니, 이번에는 키보드 앞에 앉았다. 휴면계정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블로그를 들어가서 새 글쓰기를 눌렀다. 빈 화면을 앞에 두고 몇십 분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겨우 쓴 두 글자.

 

 "계획"


이후에는 쉴 틈 없이 흰 바탕을 채워갔다. 그렇게 머릿속에 맴돌고 있던 생각이 하나둘 씩 정리되었다.


#순간 4


 글을 쓰던 순간들은 써야만 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살기 위해서, 보답하기 위해서,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 모두 내가 원해서 펜대를 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떠한가. 무얼 위해서 글을 쓰고 있지? 그저 글을 쓰는 것이 좋다고 남들 따라 하고 있지 않나. 누구를 위해서? 물음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해 결국 글쓰기를 포기한 지가 벌써 20일이 넘었다.


 그 '순간' 나는 펜을 들었다.


 이제는 목적을 가져보려고 한다. 생각 없이 글자를 휘갈기며 여백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왜 글을 써야만 하는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생각을 가지려 한다. 이게 바로 진심이 담긴 글을 쓰는 왕도(王道)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글은 더 나은 글쓰기를 위한 고찰임을 밝힌다.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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