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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Nov 04. 2023

문제를 모르는 것이 문제

별별챌린지 10일 차

 몇 시간째 지도 어플만 보고 있다.

 다음 달에 가게 될 서울 여행 계획을 짜기 위함이었다. 모처럼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연말이기도 해서 더 의미를 두는 걸 걸까. 숙소부터 식당까지 예약을 마쳤다. 폰에는 결제문자가 자꾸만 날아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분은 좋았다. 원래 여행은 가기 전까지가 제일 신나는 법. 그런데 이번에는 꽤나 심각하다.


 오늘 뿐만이 아니었다. 이번주 월요일부터였을까. 서울 구경 제대로 해보자고 여자친구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모든 관심이 쏠렸다. 심지어 일하고 있는 중에도 눈앞에는 적어둔 일정표가 아른거렸다. 밥 먹는 중에도 한 손으로 폰을 잡은 채 여행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읽고 있었다.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많았던 탓일까.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것은 여행 이외의 것은 전부 지루했고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한마디로 집중이 불가능했다. 그러다가도 쉴 틈이 있어 예약해 놓은 숙소정보와 식당 위치를 체크할 때는 얼굴이 상기되며 나도 모르는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왔다. 죄여오는 일상에서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여긴 것일까.

 누구나 갑갑함을 풀 수 있는 통로를 하나 마련하는 것은 좋다. 다만 그 정도가 심각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덕분에 안 그래도 손에 잡히지 않은 일이 이제는 눈에도 안 들어온다. 누군가 날 부르지만 그저 기계적으로 답하고 만다. 모두 시시해진 느낌. 얼른 시간이 지나가서 숙소에 체크인하는 순간만을 기다리고만 있다. 현재는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업무능률은 떨어졌다. 자리를 비우고 구석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퇴근이 다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쌓인 서류를 보면 미쳤구나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오늘이 어서 끝장나버리길 바랐다. 그렇게 하루를 버리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불행 중 다행으로 얼추 여행 계획은 마무리되었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걸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여행’이 문제가 아닐지도.

그래서 무섭다.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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