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철렁했다. 방금 전 무서운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지만 지금이 더 서늘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내 휴대폰이 아님에도 이토록 난리였던 것은 예전기억이 떠올라서였을 테다.
전주여행을 함께 떠났을 때. 지금과 같이 전주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휴대폰을 찾던 중이었다. 이번과 달랐던 점은 그녀의 휴대폰이 아닌 내 것이었고 모처럼 여행으로 들뜬 기분을 단숨에 가라앉게 했다. 다행스럽게 어느 착한 중학생 아이 덕분에 되찾을 수 있었지만 그날의 전주 모습은 잃어버린 휴대폰으로 기억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어떻게든 찾아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우선 가장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쓴 곳을 물어보았고 동시에 분실된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통화음만 계속되었고 아무도 받지 않았다. 곧이어 영화관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1대 1 상담은 불가했고 ARS 음성만 귀에 맴돌았다. 얼굴엔 잿빛이 돌고 만다. 그때였다.
"그만하고 일단 밥부터 먹자! 먹고 힘내야 찾지."
잘 못 들었나 싶었다. 이 상황에서 밥이 넘어가니. 아니, 그리고 내 것도 아니고 네 건데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잿빛은 흙빛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직접 족발 한 점을 집어다 입에 넣어주는 그녀의 손짓에 마지못해 입을 연다. 맛도 모른 채 이윽고 식탁에서 일어난다.
"영화관에 다녀와볼게. 지금 안 가면 문 닫을지도 몰라."
다짜고짜 나서려는 순간, 발 밑에 반짝이는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휴대폰이다.
어이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입속에 있던 것의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제발 좀 덜렁이지 말라며 나도 모르게 면박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선 한마디 던졌다.
"뭐 어때, 찾았잖아! 빨리 맛있게 밥 먹자."
그렇게 너와 나는 달랐다.
한바탕 소동에도 요동치던 나의 마음과는 달리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 버리는 너. 무엇보다 현재에 충실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먼 미래의 걱정까지 당겨오는 나에게는 여전히 어색하다. 그럼에도 네게 끌리는 이유는 가볍게 미소 짓는 얼굴에 스며들기 때문일까. 흙빛이었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서로 마주 보며 함께 보았던 영화에 대해 신나게 웃으며 떠들고 있으니 말이다.
서로 다른 파장의 맨 꼭대기 격인 마루와 정 반대의 아래 골이 만나면 결국 진폭은 줄어든다. 같지 않은 우리가 함께 있어도 결국 편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필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