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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9. "스웨덴"

숲과 바다, 추위가 만든 방어의 나라

by 김장렬


스웨덴 사진.png 스웨덴 지리

스웨덴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동쪽에 길게 뻗어 있다. 서쪽에는 험준한 스칸디나비아 산맥이 노르웨이와의 경계를 이루고, 동쪽에는 발트해가 끝없이 펼쳐진다. 북쪽은 북극권의 추위에 묻혀 있고, 남쪽은 덴마크와 좁은 해협으로 이어진다. 국토의 절반 이상은 숲으로 덮여 있고, 수많은 호수는 자연의 요새와 같다. 겨울은 길고 어둡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은 끈기를 배웠다. 이 모든 지형은 스웨덴을 때로는 제국으로, 때로는 방어국가로 만들었다.

발트해 지정학적 중요성

발트해는 스웨덴의 생명줄이자 전쟁터였다. 17세기, 스웨덴은 이 바다를 장악하며 ‘발트해 제국(Swedish Empire)’으로 불렸다. 구스타브 아돌프가 이끄는 군대와 함대는 무서운 기동성과 해양력을 앞세워 덴마크, 폴란드, 러시아와 맞섰다.

구스타브 아돌프 : 제6대 스웨덴 국앙, 필란드 대공(1611~1632년)

특히 폴란드와의 전쟁은 스웨덴 제국의 힘을 상징했다. 1655~1660년 *‘대홍수 시대(Deluge)’ 동안 스웨덴 군은 폴란드 평야를 순식간에 점령했다. 그들의 기동력과 해군은 발트해의 지배자를 꿈꾸게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주변국들은 두려움 속에 연합했고, 폴란드 민중은 끈질긴 저항을 이어갔다. 스웨덴은 점령은 했지만 지배는 하지 못했다. 이 전쟁은 스웨덴이 강했으나 고립될 수밖에 없는 지리적 한계를 드러냈다.

*‘대홍수 시대(Deluge)’: 1655~1660년의 폴란드 북방 전쟁기, 폴란드를 폐허로 만들었다.

대홍수 시대 스웨덴과 폴란드간 바르샤바 전투

발트해는 스웨덴을 부유하게도 했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충돌의 무대였다. 시간이 흘러 20세기, 이 바다는 다시 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1939년 독일의 침공은 폴란드 해안을 향한 전함의 포격에서 시작되었고, 발트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첫 무대가 되었다. 스웨덴은 직접 공격받지 않았지만, 중립 속에서 불안한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 발트해의 좁고 얕은 바다는 오늘날에도 나토 북부 전략의 중심이다.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와 맞닿아 있는 이 바다는, 스웨덴의 안보를 영원히 규정짓는다.

폴란드 베스테르플라테를 포격 중인 독일의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전함(1939년)

스웨덴의 내륙은 숲과 호수, 산악으로 가득하다. 방어에 유리한 지형은 외세의 침입을 막아주었고, 동시에 강인한 병사들을 길러냈다. 이 자연의 산물은 군사 혁신으로 이어졌다.

17세기 구스타브 아돌프는 기동성과 화력을 결합한 혁신적 전술을 도입했다. 보병과 기병, 포병을 결합한 전술은 기존의 느리고 무거운 전투 방식을 뒤집었다. 그의 군대는 유럽 전장을 누비며 ‘북방의 사자’라 불렸다. 특히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신성 로마 제국을 비롯한 중부유럽에서 벌어진 전쟁 30년 전쟁에서 1630년, 구스타프 아돌프 왕의 지휘 아래 개신교 진영을 돕기 위해 참전하여 전쟁의 판도를 바꾸었습니다. 스웨덴 군은 독일과 중부 유럽까지 진출했고, 신교 세력의 맹주로 자리매김했다. 내륙의 험준한 자연은 병사들에게 체력을 주었고, 지휘관에게 새로운 전술을 고안할 힘을 주었다.

30년 전쟁에 참전한 구수타프 아돌프왕과 스웨덴 군대

그러나 자연은 동시에 제국의 한계를 드러냈다. 1700년부터 발트해의 지배권을 놓고 진행된 대북방 전쟁 중 하나로 1709년 우크라이나 지역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은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와 혹한에 무너졌다. 기동력과 화력을 자랑하던 군대는 끝없는 평야와 겨울에 갇혀 괴멸당했다. 이 패배는 스웨덴 제국의 쇠퇴를 알렸고, 발트해의 패권은 러시아로 넘어갔다. 자연은 승리를 주기도 했지만, 패배의 무덤이 되기도 했다.

대북방 전쟁 스웨덴 기동로

스웨덴의 강과 운하는 유럽의 대하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국가의 생명줄이었다. 고타 강은 남부 내륙과 발트해를 연결하며 교역과 군수 수송로가 되었다. 운하는 목재와 철광석을 바다로 실어 날랐고, 이는 스웨덴 군사력의 토대가 되었다.

고타 강

특히 북부 키루나 지역의 철광석은 전략적 가치가 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스웨덴 철광석 확보를 위해 노르웨이를 침공했다. 스웨덴은 중립을 선언했지만, 독일과 영국 양측의 압력을 피할 수 없었다. 스웨덴은 철광석 수출을 유지하면서도 직접 전쟁에 끌려들지 않으려 했고, 이는 중립 외교의 복잡성을 보여주었다. 고타 운하와 같은 수로망은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스웨덴이 유럽 전쟁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정치적 무대이기도 했다.


스웨덴의 하늘은 길고 차가운 겨울 동안 맑고 건조하다. 이 넓은 하늘은 외세의 폭격에 취약할 수 있었지만, 스웨덴은 하늘을 방패로 바꾸었다. 냉전기, 스웨덴은 중립국이었지만 강력한 공군력을 유지했다.

좌측부터 스웨덴 사브의 JSS-37 Viggen, JAS-35 Draken, 그리고 JAS-39 Gripen

자국산 전투기 사브 ‘그리펜(Gripen)’은 그 상징이다. 작지만 기동성과 효율성을 갖춘 전투기는 스웨덴의 지리적 조건에 맞게 설계되었다. 분산 배치 전략, 숲 속 활주로 활용은 강대국의 폭격에도 생존할 수 있는 방식을 제공했다. 하늘은 단순한 약점이 아니라, 숲과 바다, 평야를 지키는 새로운 벽이었다.


스웨덴은 19세기 이후 직접적인 전쟁을 피하며 중립국으로 남았다. 그러나 중립은 단순한 소극적 선택이 아니었다. 국토의 위치와 자원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 외교 전략이었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스웨덴은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외교적 균형을 통해 생존을 모색했다. 냉전 시기에도 스웨덴은 중립을 유지하며, 동시에 서방과 비공식 협력을 이어갔다. 소련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서방과 거리를 좁히는 이중 전략은 지리적 숙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스웨덴의 중립 신화를 끝내게 했다. 발트해의 위협, 나토 동부 전선의 강화 속에서 스웨덴은 2022년 나토 가입을 결정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수세기 이어온 중립의 종말이자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었다. 나토 가입은 스웨덴이 이제 혼자가 아니라 집단 방위의 일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스웨덴은 2024년 3월 7일 200년 넘는 중립국 노선을 포기하고 NATO의 32번째 회원국으로 공식 합류

스웨덴의 미래 전략은 지리에서 출발한다. 발트해는 러시아와 나토의 대치선이며, 스웨덴은 그 최전선에 서게 되었다. 해군력 강화와 잠수함 전력 증대, 해상 초계망은 발트해 방위의 핵심이 될 것이다.


내륙에서는 산과 숲, 호수가 다시 방어의 요새가 될 것이다. 기동성과 화력을 결합한 군대는 과거 구스타브 아돌프의 전술처럼 현대화된 모습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영공에서는 그리펜 전투기와 나토 연합 전력이 함께 스웨덴 하늘을 지킬 것이다.


스웨덴의 무기체계는 실용성과 첨단을 결합할 것이다. 잠수함은 조용하고 치명적이며, 전투기는 빠르고 유연할 것이다. 사이버 전력과 무인기가 새로운 방패가 될 것이며, 숲과 바다, 추위와 바람은 여전히 스웨덴의 교본이자 방패로 남을 것이다.


스웨덴은 작은 나라지만, 지리가 만든 운명은 결코 작지 않았다. 바다는 그들을 제국으로 만들었고, 숲과 산은 강인한 병사를 길렀다. 강과 운하는 생존의 길을 열었으며, 하늘은 새로운 방패가 되었다. 중립으로 살아남았던 이 나라는 이제 동맹 속에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의 지리는 이렇게 속삭인다.

“평화는 숲과 바다 위에 쓰인다. 전쟁은 언제나 다시 올 수 있지만, 준비한 자만이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

스웨덴 사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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