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원과 흑해가 만든 전장
우크라이나는 언제나 유럽의 경계에 있었다. 서쪽은 폴란드와 중부 유럽으로, 동쪽은 러시아의 광대한 평원으로, 남쪽은 흑해와 지중해로 이어졌다. 산맥도 사막도 이 땅을 지켜주지 않았다. 대신 끝없는 평야와 드네프르 강, 그리고 크림반도의 바다가 이 나라의 운명을 정했다. 이 땅은 늘 침공의 길이었고, 동시에 퇴각의 무덤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버티고 일어서며 씨앗을 뿌렸다. 우크라이나의 지리는 숙명이었고, 그 숙명은 전쟁과 평화를 동시에 낳았다.
우크라이나 남쪽의 흑해와 아조프해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었다. 유럽과 중동, 러시아를 연결하는 길목이었고, 제국들이 서로 차지하려 했던 전략적 공간이었다. 특히 크림반도는 흑해를 통제하는 열쇠였다.
19세기 중반 크림 전쟁(1853~1856년)은,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의 쇠퇴를 틈타 흑해로 진출하려 했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가 개입해 오스만 제국을 지원했다. 전쟁은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공방전으로 대표되며 러시아의 패배로 끝났다. 의의는 분명했다. 크림반도와 흑해는 단순한 변방이 아니라 유럽 세력 균형을 흔드는 국제 전략의 중심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흑해를 장악해야 남부에서 NATO와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림반도는 여전히 유럽 안보의 뇌관으로 남아 있다. 흑해는 전쟁터이자 곡물 수출의 길이었다. 오데사 항에서 밀과 옥수수가 실려 나가 유럽과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면 그 길은 봉쇄되었고, 곡물은 무기가 되었다. 오늘날 흑해 곡물 협정과 해상 통로 문제가 국제 정치의 의제가 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우크라이나 내륙은 동유럽 대평원의 일부다. 산맥이 없어 막을 수 없고, 평탄하여 군대가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땅은 언제나 침공의 길이었고, 동시에 퇴각의 길이었다.
1812년,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진격했다. 그 길 중 일부가 우크라이나 북부 키예프 평야였다. 여름에는 승리처럼 보였지만, 겨울이 오자 참혹한 퇴각길로 변했다. 병사들은 굶주림과 추위로 쓰러졌다. 우크라이나의 길고 긴 대평야는 침공에 유리한 단순한 길처럼 보이지만 전의를 상실한 군대에게는 눈과 바람을 앞세워 대군을 삼킬 수 있는 무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폴레옹은 알지 못했다.
1941년,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은 남부 전선에서 우크라이나를 향해 진격했다. 목표는 곡창지대와 흑해, 그리고 동쪽의 석유였다. 키예프 전투에서는 60만 명의 소련군이 포로가 되었고, 도시와 마을은 잿더미가 되었다. 그러나 전쟁은 결국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처럼 이 평야에서 독일군은 수많은 인원과 보급품을 갉아먹으며 녹아내렸다. 우크라이나의 깊고 넓은 평야는 침공하기는 쉽지만 장악하기는 힘든 곳이었다. 독일과 소련 두 제국의 싸움에서 중심 전장이자 승부처가 바로 우크라이나의 지리였다.
우크라이나는 드네프르 강, 드네스트르 강을 비롯한 여러 강과 비옥한 흑토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드네프르 강은 북에서 남으로 흘러 흑해로 들어간다. 교통과 물류의 길이자 방어선이었다. 1943년, 소련군은 드네프르 강을 도하하며 독일군을 밀어냈다. 수십만 명의 병사가 강을 건너 싸웠고, 전세는 이 강을 경계로 바뀌었다. 드네프르 강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전투의 승리를 가져다준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오랫동안 유럽의 완충지대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오스만, 러시아가 차례로 이 땅을 차지했다. 소련 해체 후 독립했지만, 중립을 지키려던 시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를 점령으로 위협을 느낀 우크라이나는 서방과 가까워졌고, 러시아와의 갈등은 격화됐다. 러시아는 흑해와 크림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전면 침공을 시작했다. 전쟁은 곧 우크라이나를 넘어 유럽 전체 안보의 위기로 확대되었다. 우크라이나는 더 이상 완충지대가 아니라 유럽 방어의 최전선이 되었다.
우크라이나의 지리는 변하지 않는다. 대평원, 드네프르 강, 흑해와 크림반도, 그리고 러시아와 맞닿은 국경, 그러나 그 지리를 어떻게 준비하느냐는 사람들의 몫이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전쟁 경험을 토대로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무인기 및 첨단 기술을 활용한 비대칭 전력으로 보완하고 있다. 그리고 서방의 군사 지원을 받아 영토 방어와 기습 공격을 병행하는 전략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드론 생산을 대폭 늘리고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는 드론 공격을 통해 심리적 부담을 주고 협상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외교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더 이상 중립이 불가능하다. NATO와 EU 가입은 생존의 조건이다. 경제적으로는 곡창지대와 항구를 다시 세계와 연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전쟁 후 미래의 우크라이나 군 전략은 세 축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첫 번째는 흑해를 지키기 위한 해상 드론, 미사일, 소형 구축함 등 해군력 재건이 시급하다. 두 번째는 평야 전투에 맞춘 기동사단, 전차와 포병, 축적된 드론 전투능력 활용 등 육군의 현대화이다. 세 번째는 F-16과 F-35, 방공망, 무인기 대응체계 등 영공 방어능력을 발전시켜 가야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제국들의 길목이었다. 나폴레옹의 군대, 히틀러의 전차, 러시아의 군대가 모두 이 평야를 지나갔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람들은 무너진 듯 보였으나, 다시 일어섰다. 지금 이 위기도 극복하고 그들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흑해의 파도, 드네프르 강의 물결, 평야 위의 바람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준비한 자만이 지켜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