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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10. "핀란드"

숲과 호수, 겨울이 만든 전쟁과 평화

by 김장렬
핀란드 지리

핀란드는 지리의 나라다. 숲과 호수, 끝없는 설원, 그리고 1,300km에 달하는 러시아 국경과 맞닿아 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언제나 자연과 함께 살아왔고, 그 자연은 때로는 방패였으며 때로는 굴레였다. 서쪽으로는 발트해,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광대한 대지, 북쪽으로는 끝없는 북극권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언제나 전쟁과 평화 사이의 좁은 길을 걷는 일이었다.


핀란드의 해안선은 길지 않다. 그러나 그 짧은 해안은 북유럽 안보의 요충지였다. 발트해는 스웨덴, 러시아, 독일이 서로를 견제하던 바다였고, 핀란드는 그 한가운데 있었다.


18세기 스웨덴과 러시아가 발트해 패권을 두고 싸웠을 때, 핀란드는 전장의 일부였다. 해상 통제는 곧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1939년 겨울,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소련은 독일과 발트해 활용의 비밀 협정을 맺고 핀란드 만을 거점으로 핀란드를 압박했다. 이것이 11월 30일부터 다음 해 3월 13일까지 지속된 "겨울전쟁"이다.

겨울전쟁으로 잃어 버린 핀란드 영토(적색)

핀란드는 겨울전쟁에서 패하며 핀란드 만 일부와 영토를 소련에 할양했지만 *모티 전술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저항하면서 핀란드의 독립은 유지했다. 짧은 해안은 도망칠 길이 아니라 싸워야 할 전선이었음을 이 전쟁을 통해 절실히 느꼈다.

*모티 전술 : 소련군 부대를 통나무 조각처럼 잘게 나누고 각개격파 하는 방식, 핀란드 자연 지형을 활용 적을 깊숙이 유인한 후 포위하여 소규모로 분리시켜 섬멸


핀란드 해군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좁고 얕은 발트해에서 소형 함정과 기민한 전술은 큰 힘을 발휘했다. 오늘날에도 발트해는 나토 북부 전략의 중심이다. 스웨덴과 함께한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이 작은 바다의 안보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Hamina급 전함 : 스텔스 기능, 신형 MTO-85M 대함미사일, 함대공미사일 탑재

핀란드의 내륙은 끝없는 숲과 호수로 이루어져 있다. 겨울이 되면 숲은 설원으로 바뀌고, 그 속에서 길을 아는 사람만이 움직일 수 있다. 이 자연은 핀란드에게 전쟁의 무기가 되었다.


1939년 겨울전쟁, 소련은 압도적 병력으로 핀란드를 침공했다. 그러나 핀란드 병사들은 숲과 눈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스키를 타고 눈 덮인 숲을 가로질렀고,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소규모 부대로 전차부대를 갈라놓았다. ‘몰로토프 칵테일’이라 불린 화염병은 거대한 소련 전차를 멈추게 했다. 대규모 기동전은 숲 속에서 무너졌고, 핀란드는 버텨냈다.

핀란드 공격에 파괴된 소련 전차

그러나 자연은 언제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계속전쟁과 전후 소련의 압박 속에서, 핀란드는 숲과 설원만으로는 독립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하지만 겨울전쟁의 기억은 세계에 하나의 교훈을 남겼다. 숲과 설원은, 준비된 자에게는 무기다.


핀란드는 ‘천 호의 나라’라 불린다. 국토의 10% 이상이 호수로 18만 7,888개이며, 수많은 강과 수로가 국토를 가르고 있다. 이는 때로는 방어선이 되었고, 때로는 길이 되었다.

핀란드 호수 지형도

겨울전쟁에서 호수와 강은 천연 장벽이었다. 얼어붙은 호수는 매복 장소였고, 강은 적을 늦추는 지형이 되었다. 그러나 봄과 여름에는 이 물길이 군수품과 병력을 실어 나르는 통로로 바뀌었다.

얼어붙은 핀란드 호수

경제적으로도 호수와 강은 중요했다. 목재와 광물은 수로를 따라 이동했고, 수력 발전은 산업의 토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노르웨이를 침공했을 때, 스웨덴 철광석이 이 지역을 통해 흘러갔다. 핀란드는 중립을 유지하려 했지만, 지정학의 압력 속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호수와 강은 국토의 혈관이자, 전쟁의 그림자였다.

핀란드 사이마호 운송선

평야와 호수가 많은 핀란드에서 하늘은 방어의 최전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과 소련 공군이 핀란드 상공을 넘나들었고, 바르샤바처럼 대규모 폭격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하늘의 위협은 늘 존재했다. 냉전기, 핀란드는 소련과의 국경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방공망을 유지했다.

핀란드 대공포에 격추된 소련 폭격기, 핀란드는 이를 개조하여 소련을 공격

현대에 들어서는 공군 현대화가 국가 안보의 핵심이 되었다. F/A-18 전투기를 운영하며 NATO 군과 연합훈련으로 공군의 능력을 향상시킨 핀란드는 최근 F-35 도입을 결정하며 공중 우세 확보를 노리고 있다.

핀란드 공군과 연합훈련 중인 미 해병대 F/A-18 Hornet 전폭기

하늘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이 나라에서 하늘은 곧 생존의 공간이다.


핀란드의 역사는 외교의 역사다. 중세에는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고, 근대에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1917년 독립했지만, 소련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겨울전쟁 초기 소련은 친 소련의 핀란드 민주공화국과 협정 조인식을 맺으며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핀란드는 민중의 끝없는 항전으로 독립을 유지했지만 *‘핀란드화’라는 이름 아래 완전한 독립국이 아닌 중립을 유지했다. 서방과 협력하면서도 소련을 자극하지 않는 길. 이는 굴욕처럼 보였지만, 생존의 지혜였다.

친 소련의 민주공화국과 협정 조인식(뒷열 소련의 수뇌부와 핀란드 수반 쿠시넨(우측끝, 매국노로 평가 받음))

* 핀란드화 : 겨울전쟁 패배 후 핀란드는 소련의 압력 속에서도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중립국의 핀란드화를 선택했다. 이를 통해 핀란드는 소련에 의한 완전한 지배나 예속을 피하고, 독자적인 사회 및 경제 체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역사를 바꾸었다. 핀란드는 중립을 버리고 나토 가입을 선택했다. 이는 단순한 군사동맹 가입이 아니라, 지리적 숙명에 대한 응답이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집단 안보 속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결단이었다.

24년 4월 4일 NATO 31번째 회원국으로 가입

핀란드의 지리는 변하지 않는다. 숲과 호수, 끝없는 겨울, 그리고 러시아와의 국경. 그러나 그 지리를 어떻게 해석하고 준비하느냐는 사람들의 몫이다.

미래의 핀란드는 나토 집단방위 속에서 동부 전선을 지킬 것이다. 발트해 해군력 강화, 내륙 게릴라 전술의 현대화, 공군의 F-35 중심 전력, 사이버 전력과 무인기의 결합. 모든 전략은 지리에서 출발한다.

핀란드 공군 F-35

핀란드는 자연의 요새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요새보다 강한 의지를 지녔다. 겨울전쟁의 기억, 숲과 호수가 준 교훈,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다시 일깨운 현실.

핀란드의 땅은 말한다.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준비한 자만이 지켜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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