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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3. "일본"

섬이 만든 나라, 바다가 결정한 운명

by 김장렬
일본지리.png 일본의 지리

일본은 바다의 나라다. 태평양과 동해 사이, 길게 뻗은 섬들의 띠 위에서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물결의 리듬에 맞춰 살아왔다. 북쪽 홋카이도의 눈과 남쪽 오키나와의 열대가 한 나라에 공존한다. 땅은 화산의 불로 들끓고, 바다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러나 그 불안 속에서 강인한 질서가 만들어졌다. 일본의 역사는 언제나 자연의 위협과 싸우며, 동시에 그것을 이용해 문명을 세운 이야기였다.

KakaoTalk_20251021_085600122_16.jpg 일본 지리 특징 (출처 : https://www.istockphoto.com/kr)


1. '바다' 고립과 팽창의 양날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일본은 처음부터 바다에 기대어 살아야 했다. 그 바다는 이들에게 벽이자 창이었다. 외세를 막아주었지만, 동시에 바깥세상을 향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16세기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향해 바다를 건넜다. 1592년 임진왜란. 일본 역사상 첫 대규모 해외 원정이었다.

KakaoTalk_20251021_085600122_18.jpg 임진왜란 당시 부산 상륙 함대의 구성을 담은 에도시대 일본그림(출처 : http://sisa-n.com/ViewM.aspx?No)

전국시대 통일 직후의 일본은 내륙을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조선 수군이 남해바다 곳곳에서 일본 함대를 궤멸시켰다. 이순신의 판옥선과 거북선은 일본의 해상 야망을 꺾었다. 이 전쟁은 일본에게 ‘바다의 힘을 지배하지 않으면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KakaoTalk_20251021_085600122_17.jpg 노량해전에서 괘멸 당하는 일본 함대 (출처 : https://www.ziksir.com/news/articleView.html?idxno)

메이지 유신(1868) 이후 일본은 서양 해군기술을 흡수했다. 그리고 1904년 동북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진 러일전쟁에서 그 결실을 보여주었다. 쓰시마 해전은 러시아의 발트함대가 일본 해군에 의해 전멸한 날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발트해 함대는 2,900km를 항해하며 지쳐있었고, 일본 함대는 최신 장비와 지형의 이점을 살려 대비하고 있었다. 당시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함대전이었으며, 최신 무선 전신 기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최초의 근대 해전이었습니다.

KakaoTalk_20251021_085600122_15.jpg 쓰시마해전 요도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

일본의 승리는 단순한 전투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아시아 국가가 유럽 열강을 물리친 최초의 순간이었다. 일본은 자신감을 얻었고, 바다를 지배하려는 제국의 길에 들어섰다.

KakaoTalk_20251021_085600122_14.jpg 쓰시마 해전도 (출처 : https://steemit.com/zzan/@sanha88/5pv4xb)

하지만 바다는 오래도록 복종하지 않았다. 1941년,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하며 태평양전쟁을 열었다. 이후 일본은 태평양 전역에서 승리를 거듭하며 파죽지세로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KakaoTalk_20251021_085600122_13.jpg 1941년 12월 7일 일본군 진주만 공습, 불타는 미국 해군 전함들 (출처 : https://www.joongang.co.kr)

일본 해군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진주만 공격 당시 살아남은 미 항공모함 전력을 완전히 섬멸하기 위해 미드웨이 환초를 공격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거대한 정보력으로 일본의 암호를 해독하고, 산업력과 항공력은 바다를 뒤덮었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은 정예 항공모함 4척을 모두 잃고 조종사를 포함한 수많은 병력을 손실했습니다. 반면 미군은 항공모함 1척(요크타운)과 구축함 1척을 잃었습니다. 그날 이후, 일본의 바다는 제국의 꿈과 함께 가라앉았다. 바다는 일본을 세웠지만, 또한 무너뜨렸다.

일본전함.png 미드웨이 해전 중 미 해군 항공대의 공습을 받고 격침되기 직전의 일본의 이쿠마 함 (출처 : https://namu.wiki/w)


2. 다이묘의 산맥과 땅, 고립의 요새


일본 국토의 70%는 산이다. 산은 사람들을 갈라놓고, 그 사이에서 수많은 세력들이 태어났다. 전국시대(1467~1603), 일본은 다이묘(大名)라 불린 지방 영주들이 각자 자신의 영토를 지배하던 시기였다. 그들은 산과 강을 경계로 성을 짓고, 무사들을 거느려 끊임없이 싸웠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인물은 이 산악 분열의 시대를 통일로 이끈 주인공들이었다.

KakaoTalk_20251021_085600122_10.jpg 일본 전국시대 영토 (출처 : https://m.cafe.daum.net/shogun/1Db/5101)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막부를 세우고, 에도 시대가 시작 이후 260년의 평화를 열었다. 이 시기 일본은 바다를 닫고 내륙을 다스렸다. ‘쇄국’이라 불린 정책은 외세를 막고 문화와 질서를 지켰지만, 동시에 일본을 세계에서 고립시켰다. 사무라이의 명예와 농민의 근면이 사회의 기둥이었고, 도시에는 상인 계급이 성장했다. 에도 시대의 평화는 총보다 붓이 강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평화는 바다 밖에서 다가오는 근대의 파도를 막지 못했다.

에도시대.jpg 에도시대 영역과 주요 지리 (출처 : https://namu.wiki/w)


3. 짧은 물길, 깊은 문화


일본의 강은 유럽의 대하처럼 길지 않다. 섬나라이기에 산에서 바다까지의 거리가 짧고, 급류가 많다. 그러나 이 짧은 강들은 수력 발전과 운송의 원동력이었다. 에도 시대에는 요도강과 스미다가와 같은 수로가 도시와 항구를 잇는 상업망이었고, 강을 따라 곡식과 목재가 흘러 산업의 밑거름이 되었다.

KakaoTalk_20251021_085600122_08.jpg 일본의 강과 평야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

제2차 세계대전 중, 이 강들은 또 다른 의미를 가졌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모두 강과 항만이 만나는 도시였다. 그곳이 폭격 목표가 된 이유도, 산업과 병참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두 도시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강이 흐르는 문명’ 위에 떨어진 인류의 비극이었다. 물은 여전히 흐르지만, 그날의 기억은 멈춰 있다.

강.png 일본 원폭 지역 (출처 : https://www.yna.co.kr/view/GYH20150731000400044)


4. 열린 하늘의 불타는 교훈


1945년 봄, 도쿄의 하늘은 불에 타올랐다. 3월 9일, 미군의 B-29 폭격기 300여 대가 도쿄를 덮었다. 수천 톤의 소이탄이 떨어졌고, 그날 밤 10만 명이 불길 속에서 사라졌다. 이후 오사카, 나고야, 고베 등 주요 도시도 차례로 불탔다. 공중전은 일본의 산업과 민간을 한순간에 마비시켰다. 하늘은 패배의 길이 되었지만, 동시에 교훈의 공간이 되었다.

KakaoTalk_20251021_085600122_06.jpg 도쿄 상공 미군 B-29 폭격기, 38만 여 M69 소이탄 지상 투하 (출처 : https://m.nownews.seoul.co.kr//news/newsView)

패전의 교훈 이후 일본은 하늘의 중요성을 각인했다. 항공자위대(JASDF)가 창설되었고, 기술은 평화를 위한 힘으로 변했다. F-15J가 도쿄 하늘을 지키고, F-35A는 태평양의 경계를 순찰한다. 하늘은 다시 위협의 공간이 아니라, 지키는 공간이 되었다. 그 하늘 위에는 일본이 만든 차세대 전투기 F-X의 꿈이 있다. 그들은 패전의 하늘을 기술과 자존의 하늘로 바꾸고 있다.

KakaoTalk_20251021_085600122_05.jpg 일본 차세대 전투기 콘셉트 (출처 : https://m.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


5. '외교 지형' 바다와 섬, 경계의 외줄


지리적으로 일본은 늘 선택의 외줄 위에 서 있었다. 서쪽으로는 중국과 한반도, 북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동남아시아. 모든 방향이 외교의 과제였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미국과 동맹을 맺었다. 그 동맹은 일본의 안보를 보장했지만, 독립된 외교를 제약했다. 1970년대 이후, 일본은 경제력으로 세계 2위를 차지했지만 정치·군사적 자율성은 여전히 ‘평화헌법’이라는 제약에 묶여 있었다.

KakaoTalk_20251021_085600122_04.jpg 1946년 10월 7일 중의원에서 일본 평화헌법이 가결돼 성립하는 순간의 모습 (출처 : https://www.yna.co.kr/amp/view)

21세기 들어, 일본은 다시 영토 문제로 흔들리고 있다. 한국의 독도 영유권 분쟁화 시도, 중국과의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 충돌, 러시아와의 쿠릴열도(북방영토) 갈등은 일본의 지정학적 불안을 드러낸다. 그들은 바다를 둘러싼 섬 하나하나에 국가의 자존심을 걸었다.

KakaoTalk_20251021_085600122_03.jpg 일본의 영토 분쟁화 지역 (출처 : https://www.yna.co.kr/view/GYH20080715000600044)

하지만 일본 외교의 진정한 강점은 위기 속의 침착함이다. 패전 이후에도 그들은 무릎 꿇지 않았다. 굴욕 속에서도 기술을 키웠고, 조용히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이 섬나라는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며, 다시 세계의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


6. '미래 지형' 기술의 돛을 단 바다의 나라


일본의 미래는 여전히 바다 위에 있다. 그들은 바다의 민족답게 해양자위대를 첨단화하고 있다. ‘이즈모급 항공모함’의 개조, 무인 잠수정과 위성 정찰체계,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등은 모두 새로운 바다의 전쟁을 대비하는 준비다. 그들은 힘의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힘이 없는 평화를 믿지 않는다.

함모.png 일본의 이즈모급 항공모함 (출처 : https://namu.wiki/w)

그들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저출산, 고령화, 에너지 의존, 젊은 세대의 전쟁 회피 의식 등 내부의 보이지 않는 전쟁을 시작했다.


일본은 늘 재난 위에서 부활해 왔다. 화산이 폭발한 땅에 다시 도시를 세웠고, 쓰나미가 휩쓴 자리에서 다시 항구를 열었다. 그들의 회복력은 세계 어떤 군대보다 강하다. 바다는 여전히 그들을 감싸고 있다. 그 물결은 때로 위협이었지만, 지금은 길이다. 일본은 바다에서 태어났고, 다시 그 바다에서 미래를 찾고 있다. 정복의 바다에서 공존의 바다로, 침묵의 섬에서 다시 일어서는 섬으로.

KakaoTalk_20251021_085600122.jpg 일본의 파도 (출처 : https://livejapan.com/ko/in-tokyo/in-pref-kanagawa/in-kanagawa_suburbs)


파도는 여전히 거세지만, 그들은 이제 그 물결 위에 새로운 돛을 단다. 그것이 일본의 길이며, 지리가 만들어준 운명이다.

일본지리.png 일본의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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