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과 태평양이 만나는 곳, 그 사이에 흩어진 18,000개 이상의 수많은 섬들이 있다. 그 많은 섬 하나하나가 이름을 갖고, 문화와 언어, 신앙을 품었다. 그들이 모여 하나의 나라가 되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지리의 결합이 아니었다. 바다를 품은 제국, 인도네시아의 시작이었다.
1. 스리비자야와 마자파힛 제국이 이룬 바다의 유산
인도네시아의 이야기는 바다에서 시작된다. 7세기 수마트라 섬의 팔렘방에서 태어난 스리비자야 왕국은 해상 제국이었다.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잇는 무역로를 장악하며 향신료, 금, 보석을 교역했다. 그들은 바다를 단순한 경계가 아닌 ‘길’로 보았다.
스리비자야는 해상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성장했고, 불교가 전파되는 통로가 되었다. 중국의 당나라, 인도의 팔라 왕조, 그리고 아라비아 상인들이 이 항구를 거쳐갔다. 그들의 배에는 문명과 종교, 그리고 전쟁의 씨앗이 함께 실려 있었다.
13세기 이후에는 자바 섬의 마자파힛 제국이 바다를 이어받았다. 마자파힛은 “해상 제국의 황금기”라 불린다. 자바, 발리, 수마트라, 보르네오, 필리핀 남부까지 지배하며, 동남아 최대의 세력을 자랑했다. 그들은 해군과 조선 기술을 발전시켜 각 섬을 연결하고, ‘바다 위의 통합’을 이루었다. 이 시기 인도네시아의 정체성은 이미 형성되고 있었다. 섬으로 나뉘었지만, 바다로 하나 되는 나라였다.
그러나 16세기, 바다는 낯선 깃발을 맞았다. 향신료를 찾아온 포르투갈, 뒤이어 네덜란드, 영국이 도착했다. 1619년 네덜란드는 자카르타(당시 바타비아)를 점령하고 동인도회사를 세웠다. 인도네시아는 300년 동안 식민의 바다에 잠겼다.
네덜란드는 섬들을 나누어 통제했다. 바다는 무역로가 아니라 감시망이 되었고, 향신료는 자유의 대가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바다에서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저항했다. 17세기 반딧사리 반란, 19세기 디포네고로 전쟁이 그것이었다. 그들의 싸움은 ‘국가의 독립’이 아니라, ‘섬과 바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2. 인도네시아의 심장 자바, 게릴라의 땅
인도네시아는 바다의 나라지만, 그 중심은 내륙이었다. 자바 섬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모여 사는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다. 자바의 산맥은 완만하지만, 그 안에는 수백 개의 화산이 있었다. 이 화산들은 흙을 비옥하게 만들었고, 그 비옥한 땅이 왕국을 키웠다.
자바 전쟁(1825~1830)은 그 중심에서 일어났다. 자바의 영웅 디포네고로 왕자가 네덜란드 식민 통치에 맞서 봉기한 전쟁이었다. 그는 산악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으로 네덜란드군을 괴롭혔다. 전쟁은 5년간 이어졌고, 양측에서 20만 명이 넘게 죽었다. 패배했지만, 이 전쟁은 인도네시아의 민족의식을 일깨운 상징이 되었다. “우리는 섬이지만, 하나의 영혼으로 이어져 있다.” 디포네고로의 말은 이후 독립운동의 구호가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내륙은 또 한 번 전쟁의 무대가 되었다. 1942년, 일본군의 인도네시아 점령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핵심 전략 목표였던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해 단행되었습니다. 일본군은 먼저 자바와 수마트라를 점령하며 철도와 항만을 전쟁 물자 수송로로 바꾸었고, 젊은 인도네시아인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조국’의 개념이 자랐다. 수카르노와 하타가 지도한 독립운동은 일본의 패전 직후 폭발했다.
1945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4년간의 인도네시아 독립전쟁(1945~1949)이 이어졌다. 정규군이 아니라, 섬과 산, 강과 정글을 아우른 인민의 전쟁이었다. 결국 1949년 ‘네덜란드-인도네시아 주권이양협정’으로 독립이 확정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군도국가가 하나의 이름 아래 통합된 순간이었다.
3. 흐름이 만든 제국의 생명선 강과 해협
인도네시아의 강은 섬마다 다르지만, 그 모두가 바다로 열린다. 자바섬의 브란타스 강, 수마트라의 무시 강, 칼리만탄의 마하캄 강은 내륙과 해안을 잇는 생명선이었다. 이 강들은 단순한 물길이 아니라, 내륙과 바다를 잇는 무역과 병참의 통로였다.
그러나 진정한 전략적 가치는 해협에 있었다. 세계 교역의 약 40%가 지나는 말라카 해협, 그리고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순다 해협, 롬복 해협은 모두 인도네시아의 바다에 속한다. 이 해협들은 군사적 요충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은 이 해협을 통해 남방자원을 실어 날랐고, 연합군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격렬한 해전을 벌였다. 전쟁은 해협 위에서 일어났다.
오늘날에도 이 해협들은 여전히 세계의 관심사다. 말라카 해협은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섬 사이에 위치한 좁고 긴 해협으로,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최단 항로로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붐비는 해상 교통로 중 하나입니다.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하며, 특히 중동에서 동아시아로 향하는 석유 및 천연가스 수송의 핵심 길목입니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90% 이상과 액화천연가스(LNG)의 상당 부분이 이 해협을 통해 운송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전체 수출입 물동량 중 약 30%가 이 해협을 통과하면서 해협의 안정적인 항행은 우리 경제의 필수적 요소이다. 그러므로 말라카 해협의 통제권은 중국과 미국, 인도, 일본의 전략적 계산에 모두 들어 있다. 인도네시아는 이 해협의 안정과 개방을 유지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해상 평화의 수호자’가 되었다.
4. 독립의 상징 하늘, 현대의 힘으로
하늘은 인도네시아가 가장 늦게 손에 넣은 공간이었다. 식민지 시절, 네덜란드와 일본은 하늘을 철저히 통제했다. 그러나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는 공군을 통해 자주성을 증명했다. 1950년대, 인도네시아 공군은 구소련제 미그 전투기를 운용하며 냉전기 초기에 소련과 협력했다. 이후 냉전이 완화되자, 미국으로부터 F-16을 도입했고, 최근에는 프랑스 라팔 전투기와 한국의 KF-21 보라매 공동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이 협력은 단순한 군수계약이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기술 주권국”으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최근 인도네시아는 KF-21 사업의 재정적 부담과 기술적 문제 속에서 자국의 안보 및 방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터키의 KAAN 도입을 고려하면서 우리나라와의 방위산업 관계가 좋지 못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의 하늘은 이제 방어만이 아니라, 자주와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5. 비동맹의 전통과 바다의 균형을 반영한 외교
인도네시아는 냉전기부터 지금까지 비동맹 외교의 중심국이었다. 1955년, 수카르노는 반둥에서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를 열어 ‘제3세계 연대’를 선언했다. “우리의 바다는 식민의 바다가 아니라, 협력의 바다여야 한다.”
그는 강대국의 편에 서지 않고, 독립국가들의 연대를 이끌었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현재 인도네시아는 아세안(ASEAN)의 중심국이자, G20 유일한 동남아 회원국이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ASEAN)에서 독보적인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한다. GDP가 1조 달러를 돌파하며, 아세안 전체 GDP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G20은 세계 주요 경제국들의 모임이므로, 이러한 경제적 비중이 회원국 선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세계 경제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중국의 남중국해 확장정책에도 신중히 대응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일정 거리를 둔다. “양쪽 모두와 대화하며, 어느 쪽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이것이 인도네시아 외교의 정수다. 그들의 지리는 바다에 흩어져 있지만, 외교는 그 바다를 하나의 무대로 묶어내고 있다.
6. 바다로 가는 길, 세계로 가는 미래의 힘
인도네시아의 미래 전략은 세 가지 방향으로 흐른다. 첫째, 해양강국의 복귀이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2014년 “세계 해양축 비전(Global Maritime Fulcrum)”을 선포했다. 이는 스리비자야와 마자파힛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전략이다. 군도 간 연결 인프라, 해군력 확충, 해양경비 강화는 단지 군사정책이 아니라 국가 통합의 실질적 도구다. 둘째, 수도 이전과 내륙 통합이다. 현재 수도 자카르타는 해수면 상승과 지반침하로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는 보르네오섬의 ‘누산타라’로 수도를 이전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행정이전이 아니라, 지리적 균형 회복 전략이다. 바다에서 내륙으로, 중심을 재배치하는 실험이다.
셋째, 신안보 영역의 확장이다. 기후변화, 해상자원 보호, 사이버 안보, 무인전력 개발 등은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과제다. 18,000개 섬이 모두 안전해야 진정한 평화가 가능하다. 그들에게 안보란 총과 미사일의 문제가 아니라, 지리 전체를 지키는 행위다.
인도네시아의 지리는 여전히 파도처럼 출렁인다. 스리비자야의 향신료 바람, 마자파힛의 조선소 망치 소리, 자바의 화산 연기, 말라카 해협의 선박 경적까지, 모든 소리가 섞여 하나의 리듬을 만든다. 그 리듬은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섬은 어떻게 나라가 되는가?”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그 대답을 바다에 새겼다.
“섬이 흩어져 있을수록, 우리의 평화는 더 단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