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는 거대하다. 면적은 약 3,037만㎢. 세계 육지의 약 20%를 차지한다. 아시아 다음으로 넓은 대륙이다. 이 땅에는 54개의 독립 국가가 존재한다. 인구는 약 14억 명을 넘어섰다. 숫자만 보면 잠재력의 대륙이다. 그러나 지도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다른 것이 보인다. 넓음보다 먼저, 연결의 어려움이 보인다.
북쪽에는 약 900만㎢에 이르는 사하라 사막이 놓여 있다. 서쪽 대서양에서 동쪽 홍해까지 약 5,000㎢ 이상 이어지는 거대한 모래의 바다다. 이 공간은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니었다.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을 물리적으로 갈라놓은 장벽이었다.
같은 대륙이지만 서로 다른 역사 경로를 걷게 된 이유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북쪽은 지중해 세계와 더 가까웠고, 남쪽은 전혀 다른 정치적·문화적 발전을 이어갔다. 아프리카는 넓어서 분열된 것이 아니다. 연결되기 어려워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대륙이다. 이 구조는 이후 반복된 분쟁의 조건이 되었다.
1994년 르완다에서 100일 동안 약 80만 명이 희생되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이어진 제1차 콩고 전쟁, 그리고 1998년부터 2003년까지 계속된 제2차 콩고 전쟁은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 전쟁들은 단순한 정치 실패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자연이 먼저 갈라놓은 공간 위에 인위적 경계가 겹쳐지면서, 충돌은 구조가 되었다. 아프리카는 ‘물리적 거리와 구조적 단절’이 만든 전쟁의 대륙이다.
1. 바다는 방패가 아니라 통로였다
아프리카의 해안선 길이는 약 30,500㎢ 이른다. 대서양, 인도양, 지중해, 홍해에 둘러싸여 있다. 겉으로 보면 열려 있는 대륙이다. 그러나 이 바다는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15세기 후반, 유럽의 항해가 서아프리카 해안에 닿았다.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약 1,200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이 대서양을 건너 노예로 팔려갔다. 바다는 교류의 길이 아니라 유출의 길이 되었다. 19세기말, 유럽 열강은 해안을 따라 내륙으로 진입했다. 1884~1885년 베를린 회의는 지도 위에서 아프리카를 나누었다. 20세기 초가 되면 대륙의 약 90% 이상이 유럽 식민 통치 아래 들어갔다. 해안은 통치의 출발점이 되었고, 자원과 인력을 외부로 내보내는 관문이 되었다. 그러나 내륙까지 동일한 통제력이 미치지는 못했다. 해안 중심의 지배 구조는 이후에도 정치적·경제적 불균형을 남겼다. 바다는 연결을 열었지만, 그 연결은 비대칭적이었다.
2. 사막과 고원이 만든 이동의 장벽
사하라는 아프리카 지리의 핵심이다. 약 900만㎢에 이르는 이 사막은 북과 남을 갈라놓았다. 대규모 군사 이동과 행정 통합을 어렵게 만드는 자연의 벽이었다. 아프리카는 또한 평균 고도가 높은 ‘고원 대륙’이다. 에티오피아 고원은 해발 2,000~3,000m에 이르고, 동아프리카 고원 역시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해안에서 내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평야가 많지 않다. 이 지형은 이동 비용을 높였다. 군대와 행정력이 전국을 빠르게 통합하기 어려웠다. 국가가 성립하더라도 통제력은 지역마다 달랐다. 중앙 권력은 늘 물리적 조건과 씨름해야 했다. 그리고 그 조건은 정치적 불안정의 토대가 되었다.
3. 문명은 만들었으나, 대륙을 묶지는 못했다
아프리카에는 세계 최장 강인 나일강이 있다. 길이는 약 6,650㎢다. 나일은 예외적으로 통합의 축이 된 강이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이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다른 강들은 달랐다.
콩고강은 약 4,700킬로미터에 이르지만, 급류와 폭포가 많아 내륙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되기 어려웠다. 니제르강 역시 사막과 밀림을 지나며 지역 단위 경제권을 만들었으나, 대륙을 하나로 묶는 축이 되지는 못했다.
유럽의 라인강과 도나우강이 여러 도시와 국가를 연결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강은 문명을 낳았지만, 연결망을 촘촘히 만들지는 못했다. 그 결과 지역 정체성은 강해졌고, 통합은 느렸다. 그리고 식민 시기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이 그 위에 덧씌워졌다. 자연이 분리한 공간 위에 인위적 통합이 이루어졌다. 그 긴장 속에서 갈등은 반복되었다.
4. 직선 국경과 현대의 전략 공간
아프리카 지도에는 유난히 직선 국경이 많다. 산맥도, 강도, 부족 경계도 아닌 선들이다. 1884~1885년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나누기 위해 소집한 베를린 회의 이후 지도 위에서 그어진 경계다. 같은 민족이 여러 국가로 나뉘었고, 서로 다른 집단이 하나의 국가 안에 묶였다. 하늘에서 보면 단순한 선이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복잡한 현실이 된다.
국경 분쟁은 독립 이후에도 이어졌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전쟁을 벌였다. 수단은 2011년 남수단과 분리되었지만 갈등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현대의 항공망과 통신 기술은 물리적 이동 시간을 줄이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분리와 정치적 경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늘은 연결을 가능하게 하지만, 과거의 선을 지워주지는 않는다.
5. 단절은 극복될 수 있는가, 그리고 이제 시작이다
아프리카연합(AU)은 대륙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는 경제적 연결을 확대하려 한다. 인구는 2050년까지 약 25억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도로와 철도, 항공망이 확장되면 이동 비용은 낮아질 수 있다. 물리적 거리는 점차 줄어들 수 있다. 기술은 장벽을 낮추고, 시장은 연결을 촉진한다. 그러나 구조적 단절은 단순한 인프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형이 오랫동안 만든 분리의 흔적은 정치와 사회의 깊은 층위에 남아 있다. 자연이 갈라놓은 공간 위에 인위적 경계가 덧그어졌고, 그 경계는 여전히 현실 속에서 작동한다.
아프리카의 전쟁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조건의 결과였다. 그 조건은 자연에서 시작되었고, 인간의 선택이 그것을 증폭시켰다. 이제 우리는 이 대륙을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각기 다른 지형과 역사 위에 선 여러 나라들의 집합으로 바라보려 한다. 사하라를 넘는 나라들, 나일을 따라 선 나라들, 밀림과 고원을 품은 나라들, 직선 국경 위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나라들. 아프리카 연재는 여기서 시작된다. 우리는 다시 묻는다. 이 나라의 전쟁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가. 이 나라의 평화는 어디에서 설계되는가. 물리적 거리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구조적 단절은 극복되어야 할 과제로 남는다. 지리는 여전히 설계자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 설계도를 한 나라씩 읽어 내려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