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9. “볼리비아” 바다를 잃은 고원의 나라

by 김장렬
볼리비아 지리 (출처 : 금성출판사 사회과부도)

남아메리카의 중심을 바라보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왜 이 나라는 바다에 닿지 못하는가. 대륙의 대부분 국가는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향해 열려 있다. 그러나 볼리비아는 고원 위에 머물러 있다. 사방이 이웃 국가로 둘러싸인 내륙국. 그 사실 하나가 이 나라의 전쟁과 평화를 설명한다.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국가 대 국가의 대규모 전면전을 오래 지속한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전쟁이 이 나라의 지리를 바꾸었다. 1879년부터 1884년까지 이어진 태평양 전쟁은 이 나라의 해안선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바다가 사라진 조건은 남았다. 이 나라는 패배의 기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잃은 지리로 살아간다.

칠레 안토파가스타 해변(과거 볼리비아 영토) (출처 : https://www.expedia.co.kr/Antofagasta.dx382)


1. 사라진 바다, 시작된 고립

한때 볼리비아는 태평양에 닿아 있었다. 아타카마 사막 북부의 해안은 이 나라의 창이었고, 세계로 나가는 통로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질산염 자원을 둘러싼 갈등은 칠레와의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졌고, 전쟁은 네 해 동안 계속되었다. 결과는 냉정했다. 볼리비아는 태평양 연안을 잃고 내륙국으로 전락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태평양 전쟁 전후 영토 (출처 : https://lifechallenger.tistory.com/164)

볼리비아의 태평양 전쟁(1879~1883)은 아타카마 사막에 매장된 초석(질산나트륨)과 구아노(새똥) 등 비료 및 화약의 원료가 되는 자원의 영유권이 핵심이었다. 볼리비아가 칠레 기업에 대한 과세를 금지한 기존 조약을 깨고 초석 수출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자, 칠레가 이에 반발하며 안토파가스타 항구를 침공했다. 볼리비아는 페루와 맺은 비밀 방위 조약에 따라 연합군을 구성해 칠레에 맞섰다. 그러나 해상권과 육상 전투 모두에서 우위를 점한 칠레는 페루의 수도 리마를 점령하는 등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전쟁결과 볼리비아는 유일한 해안 지역인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 주를 칠레에 빼앗겼다.

아타가마 지역 구아노 채취 (출처 : https://cafe.daum.net/hanryulove/KTAr/171961)

이 사건은 단순한 영토 축소가 아니었다. 바다는 군사적 의미에서 전략 공간이고, 경제적으로는 교역의 통로이며, 정치적으로는 외교의 선택지다. 바다를 가진 국가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바다를 잃은 국가는 방향을 협상해야 한다. 전쟁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해안선의 상실은 영구적이었다. 이후 볼리비아는 해군 대신 기억을 갖게 되었다. 매년 바다의 날을 기념하며 태평양을 잃은 사건을 되새긴다. 전쟁은 과거가 되었지만, 바다를 잃은 지리는 현재다. 지리는 전쟁을 끝내지 않는다. 지리는 전쟁의 결과를 오래 남긴다.

볼리비아 군 기념식 (출처 : https://www.chosun.com)

2. 산맥과 육지, 방패이자 경계

볼리비아의 중심은 안데스 고원이다. 해발 수천 미터 위에 펼쳐진 광대한 고원은 자연의 요새다. 서쪽으로는 안데스 산맥이 병풍처럼 서 있고, 동쪽으로는 급격히 낮아지며 아마존 분지로 이어진다. 이 지형은 외부 침략을 어렵게 만든다.

볼리비아 산맥 (출처 : https://m.blog.naver.com/allmaps/222861301525)


태평양 전쟁 이후 볼리비아는 외부와의 대규모 전면전을 거의 경험하지 않았다. 산맥은 자연의 방패였다. 그러나 같은 산맥은 내부를 갈랐다. 1898-1899년 연방 전쟁 (Federal War)은 볼리비아의 산맥이 갈라놓은 가장 대표적인 내전이다. 수도 이전 문제와 통치 방식을 두고 남부 수크레의 '보수파'와 북부 라파스의 '자유파'가 충돌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라파스의 자유파가 승리하면서 행정 수도가 라파스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고원 중심의 정치권력과 동부 저지대의 경제 자원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형성했다. 고원은 역사와 전통, 행정과 권력을 쥐었고, 저지대는 천연가스와 농업 자원을 통해 경제적 영향력을 키웠다. 지형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정치적 구조가 된다. 산맥은 외부의 적을 막았지만, 내부의 균열을 봉합하지는 못했다. 전쟁은 사라졌지만 긴장은 남았다. 그 긴장은 총성이 아니라 구조로 존재한다.

3. 흐르지만 열리지 않는 길 (강과 하천)


볼리비아의 강은 브라질의 아마존으로 흐른다. 마모레 강과 베니 강은 결국 대서양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흐름은 직접적이지 않다. 강은 이웃 국가의 영토를 지나 바다에 닿는다. 이 말은 곧, 볼리비아의 경제와 전략은 항상 타국의 통로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볼리비아 하천 (출처 : https://namu.wiki/w)

강은 존재하지만 자율적 해양 접근은 없다. 전쟁은 끝났지만 구조적 의존은 시작되었다. 강은 전쟁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은 국가의 선택을 제한한다. 지리는 외교를 조건으로 만들고, 조건은 전략을 제한한다. 볼리비아는 바다를 되찾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판결은 현실을 바꾸지 못했다. 지리는 법정보다 오래 지속된다.

볼리비아 태평양 접근권 국제사법재판소 패소 (출처 : https://www.yna.co.kr/view)

4. 하늘 길의 시선


고원 위의 하늘은 유난히 가깝다. 얇은 공기와 강한 햇빛은 이 나라의 일상을 규정한다. 그러나 이 하늘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바다를 잃고 사방이 육지로 막힌 나라에서, 하늘은 마지막으로 열려 있는 길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행정 수도 가운데 하나인 볼리비아 라파스의 엘알토 공항은 단순한 공항이 아니다. 그것은 고립을 넘어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다. 안데스 산맥은 육로를 어렵게 만들고, 강은 타국을 거쳐야만 바다에 닿는다. 그런 지형 속에서 항공로는 가장 직접적인 외부 연결선이 되었다.

볼리비아 라파스의 엘알토 공항 (출어 : http://www.startour.pe.kr/local)

20세기 들어 항공 교통이 발달하면서 볼리비아는 해상 통로 대신 공중 통로에 의존하게 되었다. 수출과 외교, 인적 교류는 점차 하늘을 통해 이루어졌다. 항공망은 고원과 저지대를 연결했고, 내륙의 단절을 부분적으로 완화했다. 바다를 잃은 지리는 국가를 좁혔지만, 하늘은 그 좁아진 공간 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하늘에서 보면 하나의 국가다. 산맥과 분지는 선으로만 구분될 뿐이다. 그러나 땅 위에서는 여전히 거리와 제약이 존재한다. 전쟁은 오래전에 끝났다. 그러나 지리는 남아 있다. 그리고 볼리비아는 그 지리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로, 하늘을 선택했다.

5. 전쟁 이후의 평화, 미래의 볼리비아

볼리비아는 지금 평화로운가. 총성은 드물다. 외부와의 대규모 전면전도 없다. 그러나 이 나라의 평화는 완전한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제약 속의 안정이다. 바다가 없는 조건, 산맥이 만든 분절, 강이 열어주지 않는 통로, 고원이 만든 정치 구조.

이 모든 요소는 이 나라의 선택지를 좁힌다. 평화는 존재하지만, 확장되지는 않는다. 볼리비아는 스스로 묻는다. 전쟁이 끝났다면 충분한가. 아니면 지리가 바뀌지 않으면 평화도 완전할 수 없는가.

볼리비아 지리 (출처 : 금성출판사 사회과부도)


6. 아메리카를 닫으며


아메리카를 지나오며 우리는 여러 얼굴의 지리를 보았다. 두 개의 바다가 시간을 주었던 나라, 거리가 전쟁을 부르지 않았던 나라, 경계 위에서 흔들렸던 나라, 산맥이 외부를 막았던 나라, 같은 산맥이 내부를 갈랐던 나라,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나라.


그리고 이제 우리는 바다를 잃은 나라 앞에 서 있다. 볼리비아는 말한다. 전쟁은 인간이 끝낼 수 있다. 그러나 지리는 인간이 쉽게 바꾸지 못한다. 아메리카의 평화는 선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리가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상태였다. 이제 대륙 하나가 닫힌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지리가 만든 전쟁과 평화는 다음 대륙에서 또 다른 얼굴로 이어질 것이다.

아메리카 지리 (출처 : 금성출판사 사회과부도)
이전 04화아메리카-8. “콜롬비아”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