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goes around... Ⅴ

by 박규동


새해가 오기 며칠 전, 준호는 다리를 절뚝이며 도시를 배회했다. 왼쪽 발을 끌면서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라는 생각에 준호는 택시를 멈춰 세웠다. 그의 눈빛에는 공포와 허무함만이 남아 있었다. 택시는 거대한 병원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준호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현찰을 꺼내 택시비를 계산하고 문을 닫았다. 준호는 병원을 올려다보았다.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나.’


그는 1인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다. 호텔보다 높은 층수의 병원. 준호는 침대에 누워 있는 친구를 찾아왔다. 침대 위의 사람은 마치 미라와도 같이 얼굴에 붕대가 감겨 있었고, 팔다리는 모두 부러진 듯 깁스에 갇혀 있었다. 준호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붕대로 틀어 막힌 입에서 예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준호야. 픽서 아저씨 부르자.”


픽서 아저씨라는 단어에 준호의 눈은 흔들렸다. 해결사, 아무도 13층에 가지 못하는 이유. 준호는 공포가 숨겨진 미소를 지었다.


“너는 일단 쉬는 데만 전념해.”

“네가 싫다고 해도 부를 거야. 경찰한테 계속 수사하라고 하게?”

“알겠어.”

“다리 아프지? 택시 타고 가. 서랍에 지갑 있어.”



병원에서 나온 준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긴장감에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그는 예슬이 말한 '픽서', 해결사라는 남자를 알고 있었다. 과거 예슬의 할아버지와 관련한 사건이 있었다. 기업 회장의 접대 영상을 폭로하려던 사람들이 있었고, 일주일은 그 이야기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지금은 모두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잊고 살아간다. 그 일에 관련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어떤 뉴스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회장의 개인 보안팀에는 김 부장이라는 남자가 있다. 법을 넘어서는 남자. 예슬의 할아버지나 아버지, 혹은 누군가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모든 것을 깨끗이 청소하는 남자. 회장을 협박했던 일에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사라졌다.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경찰들이 타는 차를 만드는 회사가 어디인지, 경찰은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 뉴스 사이에 나오는 광고를 제공하는 회사가 어디인지, 그들의 죽음은 뉴스에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준호가 아는 것은 하나다. 김 부장은 자신이 맡은 일은 분명히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



호텔 로비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준호는 아픈 다리를 떨고 있었다.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그의 심장이 뛰었다. 문에서 나오는 사람이 40대 후반의 남자일 때는 침조차 삼키기 어려웠다.


로비의 문이 열리고 준호는 검은 코트와 검은 운동화를 신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지러움이 몰려왔고, 온몸이 수축하며 팔다리가 떨렸다. 정갈하게 정돈된 머리와 진한 눈썹을 가진 남자가 준호 앞에 앉았다. 그는 안경을 벗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준호는 테이블 위 커피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남자는 이삼 분이 지나도록 핸드폰만 바라보았다. 숨 막히는 침묵은 호텔 밖의 날씨보다 차가웠다. 준호는 핸드폰을 바라보는 남자의 붉은 입술과 정돈되지 않은 수염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할 용기는 없었다. 남자는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뒤집어 놓았다.


“저한테는 전부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 거 알죠?”

“네.”

“우리 만난 적 있죠?”

“어렸을 때 한 번 뵀어요.”



준호는 중학생 시절 예슬의 집에 놀러 가던 날을 떠올렸다. 준호와 민혁은 그곳에 놀러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곳의 어른들은 그들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곳의 모든 어른은 예슬의 할아버지를 위해 일했다. 그런 이유에서 일까. 준호와 민혁은 그곳의 어른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예슬의 방에서 창밖으로 김 부장을 바라본 기억이 어째서인지 준호에겐 진하기만 하다. 젊었던 김 부장은 예슬의 할아버지에게 혼나는 듯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연설이 끝나고 김 부장이 창문을 올려다봤을 때, 준호는 그의 눈을 보았다. 해일 같은 분노와 잔잔한 파도가 공존하는 눈이었다.



로비에서 커피를 주문한 김 부장은 미소를 지으며 준호에게 말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유해진다는 말은 맞는 것 같아. 나도 이제 게으르다. 내년에는 진짜 이 짓거리도 관둬야지. 말 편하게 할게?”

“네.”


김 부장은 핸드폰에 있는 나은과 승훈의 사진을 준호에게 보여주었다.


“얘네들도 없어지고, 돈도 없어졌다며?”

“네.”

“얼마였는데?”

“예슬이가 알아요. 근데 그렇게 큰돈은 아니라고만 했어요.”

“예슬이나 너희한테는 큰돈이 아니겠지. 나 같은 월급쟁이한테는 큰돈일걸. 아니지, 이제 너한테도 큰돈이구나.”


준호는 김 부장의 미소가 두려웠다. 그는 김 부장의 눈을 피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제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알아. 도움 안 될 거. 그래도 거기서 예슬이도 지켜주고 살아 나왔으니까. 대화는 해보려고 온 거지.”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담당 서장이랑 술은 마셨고. 가만히 놔두라고 했으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거야. 그다음은 나은이랑 승훈이라는 애 찾아야 하고. 아니면 그전에 다른 애들 유가족부터 만나야 하나.”


준호는 최대한 그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김 부장의 질문은 준호를 흔들리게 했다.


“돈도 찾아줘?”

“예?”

“걔네가 훔친 돈 말이야.”

“그건…. 예슬이랑 알아서 하시면 안 될까요.”

“예슬이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입에서 피가 나와. 그래서 내가 너랑 앉아 있는 거 아니야? 뭐, 어차피 돈 찾아주는데 싫다 할 사람은 없겠지.”

“돈은 됐어요.”

“뭐?”


김 부장은 웃음을 지은 후 커피를 들이켰다. 커피잔 너머의 눈빛은 준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어쩌면 김 부장도 잃어버린 돈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의뢰는 받아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의 웃음엔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 모른다.


“알았어. 뭐, 본인이 싫다는데 내가 상관이 있나. 그러면 일단은 기자들 조용히 시키고, 나은이랑 그…. 그 새끼 찾는 거부터 할게.”

“나은이랑 승훈이, 찾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김 부장은 크게 웃으며 남은 커피를 급하게 마셨다.


“뭘 어떻게 해.”


준호는 호텔 로비의 문을 열고 나가는 김 부장의 차가운 등을 바라보았다.




미영에게는 정말 이상한 한 해였다. 호텔에서 퇴근하며 집으로 걸어가는 그녀는 다짐했다.

‘새해에는 꼭 다르게 사는 거야.’


크리스마스에 일어난 호텔에서의 사건은 미영과 큰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사라진 승훈이나 그녀가 발견했던 시체들의 모습에 그녀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런 광경을 목격하고도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것은 그녀에게 좋은 선택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미영은 입김으로 손을 녹이며 자신의 원룸이 있는 빌라에 도착했다. 순간 그녀는 두려웠다. 5년이 넘도록 편하게 지냈던 보금자리, 그곳에도 승훈과 같은 인간들이 있지 않을까?

‘뭐, 승훈 씨가 그랬다고 결론이 난 건 아니니까.’


그녀는 비밀번호를 누른 후, 현관에서 신발을 벗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정말 재수 없는 연말이 맞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돈된 머리와 검은 코트, 화면을 바라보던 남자는 미영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직장에서 끔찍한 일이 생겨서 많이 놀라셨겠어요.”

“경찰이세요?”

“경찰….”


김 부장은 웃음을 터뜨렸다.


“경찰들이 수사하는 걸 갑자기 멈췄죠?”

“네. 누구세요? 경찰 아니면 여기는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경찰 부를 거예요.”

“경찰이 아니면 경찰을 부른다고? 그럼 내가 경찰이면 누구를 부를 건데?”


현관으로 천천히 뒷걸음질 치는 미영의 모습에 김 부장은 겁먹은 그녀를 달래주고 싶었다.


“겁먹지 말아요. 나쁜 사람 아니니까. 호텔에서 일어났던 일 관련해서 몇 가지 여쭤보려고 왔어요.”


미영은 답을 하지 않고 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이내 곧 현관을 통해 달려 나갈 것 같은 그녀의 태도에 김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들었다.


“많이 겁먹으신 것 같은데, 불편하면 다음에 올게요.”


김 부장은 자신의 물건을 챙긴 후, 미영이 있는 현관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미영의 몸은 자리에 그대로 굳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신발장에 다가선 김 부장은 눈앞의 미영에게 조용한 어투로 예의를 갖췄다.


“지나갈게요.”


자신의 등 뒤로 사라져 신발을 신는 김 부장에게서 떨어지고만 싶던 미영이었다. 미영은 움직이지 않는 발을 이끌며 방으로 들어섰다. 신발을 신은 김 부장은 굳어 있는 미영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미영이 쓰러지기 전, 그는 신발을 고쳐 신기도 했지만, 동시에 신발에서 너클을 꺼내기도 했다.


미영은 5분도 지나지 않아 눈을 떴다. 그녀는 컴퓨터 책상 앞 의자에 팔다리가 결박된 채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앞, 침대에 걸터앉은 김 부장은 그녀의 입에 붙은 테이프를 뗀 후,

다시 침대에 앉았다.


“되게 매너 없는 행동이에요.”

“예?”

“나는 몇 가지 질문만 하려고 왔는데, 왜 그렇게 사람 무안하게 하는 건데?”

“그게….”

“내 얼굴을 봤을 때, 하늘에서 누가 알려줬어요? ‘저 사람은 생긴 것이 살인자 같다. 저 사람이 널 죽일 거다.’ 이렇게?”

“살려주세요.”

“이거 봐, 또 그러네. 미영 씨. 당신 죽이러 온 게 아니라 이야기하러 온 거라니까. 왜 계속 그래?”


미영은 담벼락을 마주한 방의 창문이 열려있음을 확인했다. 그녀는 소리를 질러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눈길이 창문에 닿았다는 사실을 김 부장이 알지 못하길 바랐다. 김 부장이 모를 리는 없었다.


“뭐, 됐고. 물어보러 왔으니까, 물어볼 거 물어보고 갈게요. 알았죠?”


미영은 온몸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 부장은 침대 위, 미영의 베개를 끌어안았다.


“승훈 씨가 어디 살고, 어디에서 자주 놀고, 뭐 그런 것들 좀 알려줄래요? 자료는 받았는데, 실거주지가 다른가 봐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뭐를?”

“승훈 씨가 어디 사는지.”

“알아보려는 노력도 안 했잖아. 지금.”

“모르는데 어떻게 말해요.”

“승훈 씨보다 훨씬 오래 일하셨는데, 승훈 씨가 면접 볼 때 제출한 이력서 같은 게 있겠죠?”

“그거는 과장님만 알죠. 제가 어떻게 알아요.”

“당신이 손님 없을 때 이용하는 컴퓨터가 과장이라는 사람 컴퓨터잖아요.”


대화 중간, 김 부장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미영은 김 부장이 이용하는 향수의 향기 때문인지, 그의 깔끔한 스타일 때문인지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보는 김 부장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때리고 묶어놓은 것을 보면 분명 경찰은 아닐 것이다. 핸드폰을 보는 김 부장에게 미영은 먼저 말을 꺼냈다.


“찾아볼게요. 지금 컴퓨터로 찾아보면 되죠? 과장님 아이디랑 비밀번호도 아니까. 풀어줘요. 찾아서 보여드리면 되잖아요.”

“그래요. 그럼. 근데 풀어주는 건 내가 나갈 때 풀어줘도 괜찮죠?”


김 부장은 자신의 핸드폰에 승훈의 주소와 번호, 모든 정보를 적은 후 컴퓨터를 종료했다. 김 부장은 자신이 약속한 대로 미영의 다리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며 이야기했다.


“평소에 승훈 씨가 뭐, 자주 가는 곳이라든가 취미 같은 이야기는 안 해줬어요?”

“저희 그런 이야기까지 하는 사이 아니에요. 산책을 좋아한다고는 했던 것 같아요.”

“알았어요. 이제 왼쪽 손목만 풀면 되니까 움직이지 말아요.”


미영은 김 부장을 내려다보는 표정에서 분노와 공포를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표정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김 부장은 그녀의 눈물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진짜 열받고 서운하네.”

“네?”

“왜 그러는 건데? 처음 왔을 때부터.”

“뭐가요?”

“지금도 약속대로 풀어주고 있는데 불쾌한 표정을 짓고 겁냈잖아. 나는 일하러 온 건데. 너무하네. 정말.”


김 부장은 그녀의 오른 손목을 다시 의자의 팔걸이에 대충 묶어냈다. 그는 미영이 앉은 의자를 반 바퀴 돌려 그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코트 안쪽 주머니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꺼낸 김 부장은 그것을 그녀의 머리에 씌운 후 입과 코 부분을 손으로 막았다. 잠시의 비명과 몇 분의 몸부림이 있었지만, 김 부장은 자신이 맡은 바를 해냈다. 어쩌면 김 부장은 정말 그녀를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 부장은 이에 대해 복잡한 생각을 갖지 않았다.

‘이렇게 되었네. 뭐. 이럴 운명이었나 봐. 그러게, 손님을 좀 친절하게 좀 맞이해 주지.’


미영의 집에서 나오던 김 부장은 핸드폰을 꺼내 회사의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과장님. 여기 이제 정리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고생 많으십니다.”

“고생은 무슨. 어려운 일은 과장님이 다 하는데.”

“여자애도 같이 찾고 있습니까? 로비 CCTV를 보니까 나은이라는 애는 아예 호텔에서 나온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직도 그 호텔에 있을 순 없지 않나요?”

“그렇죠. CCTV 보느라 눈알 빠질 뻔했어.”


김 부장은 웃으며 신발을 갈아 신었다.


“나도 그럼 다시 한번 확인해 볼게요. 영감님이 화가 많이 나서 이번에 과장님이나 나나, 큰일이에요. 예. 끊을게요.”


김 부장은 현관의 문을 닫고 한숨을 쉬었다. 그 미영의 옆집 문이 열렸다. 편한 옷차림의 30대 남자가 나와 김 부장을 바라보았다.


“거기는 아가씨 혼자 사는 방인데, 무슨 소리가 나서….”

“예? 무슨 소리?”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김 부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미영이 사는 방의 문을 활짝 열었다.

‘대한민국 건설 시공사들 정말 대단하네. 방음이 이렇게까지 안 되나.’


“뭐, 의심스러운 거 있으면 확인해 보세요.”

“아니요. 그럴 것까지는 없고.”

“별일 없는지 한 번 보는 게 어렵나?”


퇴근길에 미영은 생각했다.

'이웃 중에 승훈과 같은 인간이 있다면 정말 최악일 것이다.'


현실은 다행히 그녀의 걱정과는 달랐다. 김 부장은 미영의 집 바닥에 피에 젖어 쓰러진 이웃의 몸을 확인한 후 문을 닫았다. 주차장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던 그는 다시 한번 핸드폰을 확인했다.


“예. 과장님. 오고 계시죠? 다른 게 아니라, 여기 시체 하나 더 가져가야겠는데.”

“하나 더요? 용역 애들이 분명 돈 더 달라고 할 텐데?”

“뭐, 죽여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돌아가는 배에서 떨궈주기만 하면 되는데.”

“내가 볼 때 분명 돈 더 달라고 할 것 같아요. 얘들.”

“안 돼요. 진행비 펑크 나. 과장님이 잘 말해줘요. 내가 술 한잔 살게.”


김 부장은 전화를 끊은 후, 지하철역으로 걸어 들어갔다. 깔끔한 차림과 서류 가방을 든 그는 도시의 다른 직장인들과 다를 게 없었다.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 안, 김 부장은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밀어내며 언성을 높였다. 나은이었으면 견디지 못했을 상황이다. 그러나 김 부장은 태연히 자신이 내려야 할 역에서 걸어 나왔다.


집으로 향하기 전, 김 부장은 역 근처 포장마차에 들렀다. 그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어묵과 소주를 주문했다. 승훈의 이력서를 읽던 그는 나은이 호텔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생각에 빠져 허공을 응시하던 김 부장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포장마차의 주인아주머니는 김 부장에게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거야?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면 어떡해?”

“여기가 무슨 실내예요. 그렇게 따뜻하지도 않구먼. 이거 한 대만 태우고 끌게요.”

“나가서 피우던가, 지금 바로 끄던가 해.”


김 부장은 담배를 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트를 입고 서류 가방을 손에 쥔 그는 포장마차를 떠났다.

‘나은이 핸드폰에 승훈이랑 나눈 문자들이 있으면 좋을 텐데.’


김 부장은 모든 일이 일어났던 호텔로 되돌아갔다. 호텔 앞에는 클럽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남녀들로 정신이 사나웠다. 김 부장은 로비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피우는 젊은 남녀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내 어떤 뾰족한 수가 떠오른 것인지, 그는 호텔의 엘리베이터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는 12층에서 내려 12층의 복도를 둘러보았다.


딱히 특별한 점을 찾지 못한 그는 13층을 향해 차가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 중간에서 걸음을 멈춘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계단 바닥에는 공사 중이라는 팻말이 떨어져 있었다. 김 부장은 차가운 계단을 천천히 올라 13층에 도착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정리를 위해 왔을 때와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김 부장은 사건이 일어난 방의 문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그는 13층의 다른 방들 역시 둘러보았다.

‘나은이라는 애가 나온 적이 없다고.’


그는 자신이 올라왔던 비상계단을 향해 걸음을 돌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12층으로 돌아가야 했던 김 부장. 그는 13층의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는 사실을 되짚어 보았다. 그는 12층으로 내려가는 대신, 옥상을 향해 한 걸음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옥상의 철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포기하려던 차에 마지막으로 손잡이를 돌리자, 문이 열렸다.

‘문이 제 맘대로네.’


김 부장은 옥상의 철문이 닫히지 않도록 돌을 덧대어 놓은 후 옥상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호텔의 어디보다 차가웠다. 그는 바닥 구석에 놓인 옷가지를 발견했다. 찢어진 검은 코트와 셔츠, 바지 등. 남자의 옷이었다. 김 부장은 코트에서 낡은 핸드폰을 꺼냈다. 그곳에는 어떤 전화나 문자의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낡은 코트의 더러움에 사건과 관련 없는 오래된 쓰레기일 수도 있음을 자각했다. 그러나 왠지 그의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김 부장은 옥상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 노란 통이 들어왔다. 그는 염화칼륨을 보관해 놓는 통의 뚜껑을 들어 올렸다. 김 부장은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그곳에는 나은이 있었다. 하얗게 굳어버린 그녀의 몸은 마치 단잠에 빠진 아이와도 같았다. 김 부장은 그녀의 옷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나은의 핸드폰의 몇 가지 설정을 건드린 후 그는 나은의 핸드폰을 다시 그녀의 옷 주머니에 공손히 집어넣었다. 김 부장은 회사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장님 거기는 다 정리하셨어요?”

“예. 다른 직원들이 청소하고 있고, 저는 이제 슬슬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내가 나은이라는 애를 찾은 것 같은데.”

“어디서요?”

“호텔 옥상. 통 안에 들어있네.”

“걔도 그러면 승훈이라는 애한테 맞아 죽었나 보네. 아니면 승훈이가 돈을 나누기 싫어서 죽였거나.”

“아냐. 상처 하나 없어요. 자기 집 침대에 누워서 자는 것처럼 편하게 있어.”

“무슨 소리예요?”

“시체가 웃고 있어. 외상도 없고. 그리고 여기 남자 옷이 있는데.”


시체가 웃고 있다는 말에 전화기 너머에선 침묵이 흘러왔다. 혼란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회사의 누구도 상황이 복잡해지길 원하지 않았다. 어느새 김 부장보다 열심히 회사를 대변하는 과장은 머리를 굴렸다.


“골 때리네. 승훈이 그 새끼는 호텔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아니면 뭐, 사건이랑 관련 없는 오래된 쓰레기일 수도 있고. 옷도 낡아 빠져서, 옷에서 나온 핸드폰도 엄청 오래된 거라.”

“부장님. 어차피 승훈이 주소도 찾았는데. 걔 죽이고 대충 시마이 쳐서 보고합시다. 우리가 경찰도 아니고. 애초에 나은이랑 승훈이 둘만 찾으면 됐는데 하나는 죽었고, 다른 하나는 어디 있는지 아니까.”

“그래요. 내가 그러면 내일 알아서 승훈이는 정리하고 또 연락드릴게요.”

“네. 추운데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고생 많습니다.”


나은의 시체를 남겨둔 채 김 부장은 옥상의 철문을 닫았다. 그는 12층까지 내려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로비에 도착했다. 로비에 앉아 택시를 기다리던 그는 사건에 다른 인간들이 관여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예슬이 할아버지의 요청은 간단했다. 늘 그렇듯. 경찰에서 수사하지 않고, 언론에서는 보도하지 않으며, 죽을 놈들은 죽는 것. 평소와 같이 어려울 부분은 없었다. 이제는 죽을 놈들이 죽을 차례만 남았다.

그러나 김 부장은 헷갈리고 있었다.

‘내가 진짜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김 부장은 로비 앞에 도착한 택시로 달려 나갔다. 택시에 탄 그는 오늘은 더 이상 사건에 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늘 퇴근하고 일 생각만 하는 것보다 최악은 없다고 말해왔다. 택시에서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던 김 부장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잠시만요. 여기 앞에서 세워주세요.”


김 부장은 자신이 소주를 마시던 포장마차 앞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추운 날씨 탓인지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포장마차의 주인아주머니는 정리를 마친 후 실내의 모든 불을 껐다. 이내 포장마차에 남은 빛은 김 부장의 담뱃불 하나뿐이었다. 김 부장은 포장마차 테이블 위의 어묵꼬치를 주인 목에 찔러 넣었다. 포장마차에서 나온 그는 추위에 코를 훌쩍이며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어렸던 준호가 보았던 김 부장의 눈에 담긴 분노와 평정은 균형을 잃고 있었다.



예슬이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 그녀의 눈 위로 지나가는 붕대가 밝아졌다. 그렇게 잠에서 깬 것이다. 테이블에 놓인 물을 빨대로 이용해 마신 그녀는 익숙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병원 침대 옆 작은 의자에는 김 부장이 앉아 있었다.


“나은이는 죽었어.”

“승훈이가 죽였어요?”

“몰라.”

“그러면 승훈이랑 같이 돈을 훔치려 했던 건 맞아요?”

“아닐걸.”

“아는 게 뭐예요?”


의자 위 어색하게 손톱을 만지고 있는 김 부장은 조카와도 같은 존재에게 혼나고 있었다.


“어차피 죽었는데 무슨 상관이야. 나은이 걔 핸드폰에 승훈이한테서 연락들이 와있더라. 이번 사건하곤 다 관련이 없어. 전화는 대부분 수신 거부했고, 문자는 답장을 안 했어.”

“그럼 나은이는 상관이 없는 거네요.”

“그래. 상관없다고 했잖아.”


예슬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냈던 친구, 나은이 죽었다. 그런데도 나은이 자신을 속이지 않아서, 속이려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훈이라는 애 걔는 어떻게 됐어요? 잡았어요?”

“오늘 잡을 거야.”


예슬은 불안을 느꼈다.

‘부모님에게 전화 한 통이 오지 않았다. 분명 모든 걸 알고 계실 텐데.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내가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증명해야 해.’


예슬은 이제야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된 손가락을 물컵을 향해 뻗었다. 그녀는 김 부장을 향해 힘없이 물컵을 던졌다. 김 부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김 부장님 요즘 왜 그래요?”


할아버지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예슬에게 김 부장은 질리고 있었다. 예슬의 할아버지가 김 부장에게 잔소리를 쏟아낼 때, 그는 하늘이나 땅을 바라보곤 했다.


“할아버지랑 똑같네. 네가 어릴 때는 정말 착했는데.”

“내 얼굴을 좀 볼래요? 내 얼굴이 어떻게 됐는지 봐요.”


예슬이 언성을 높이자 얼굴을 덮은 붕대는 피에 젖어갔다. 물에 젖은 머리를 넘기던 김 부장은 한숨을 쉬었다.

‘이번 일만 하고 때려치워야지. 치킨집을 차리든가...’


“준호는 의심해 봤어?”

“그나마 준호 덕분에 내가 여기 살아서 누워 있는 거 아니에요. 준호는 부장님이랑 다르게 능력이 있으니까. 여기 있는 아저씨들 다 데리고 가서 승훈이 그 새끼 죽여요.”

“경호하는 아저씨들하고 내가 하는 일이 다른데?”

“여기서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다 데리고 가서 죽이라고요.”


김 부장은 병원의 의자에서 일어나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에게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예슬은 모든 일이 빨리 정리되고 부모님의 귀여운 딸로 돌아가고 싶었다. 모든 것을 가진 ‘잘못 키운 아이’로 부모님에게 남을까 두려웠다. 그것이 예슬의 가장 큰 공포였다. 김 부장도 그런 예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잔소리는 능히 견뎌왔지만, 어쩌면 아랫사람에게 배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터였다.



차에 올라탄 김 부장은 승훈의 이력서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차가운 운전대를 잡은 채 그는 승훈의 집으로 향했다. 이력서에 적힌 주소와는 조금 떨어진 주택가에 차를 댄 김 부장은 차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예슬의 잔소리를 떠올리자, 대낮이라도 당장 뛰쳐나가 승훈의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대신 그는 차 의자를 뒤로 젖힌 채 눈을 감았다.


편하게 눈을 감은 김 부장은 진동하는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다.


“부장님. 오늘 잡으신다고 했죠?”

“네. 지금 근처입니다.”

“승훈이 이 새끼가 몇 달 전에 경찰서에 갔다 왔네요?”

“경찰서는 왜요?”

“그 새끼 집 근처 건널목에서 노숙자들이 실종되었었대요. 피의자나 용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건 아니고.”


운전석의 의자에 기대 편히 눈을 감은 김 부장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또라이 새끼. 산책하는 걸 좋아했다고.’


하늘이 더 이상 어두워질 수 없을 때 김 부장은 눈을 떴다. 기계처럼 일어난 그는 승훈의 집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핸드폰의 지도를 보며 골목의 집들을 살피던 김 부장은 확신했다.

‘여기네. 지하 1층.’


김 부장은 주택 옆 쪽문을 살며시 밀어 열었다. 집에서는 어떤 빛도,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바깥 신발장을 지나, 그는 승훈이 사는 집의 문손잡이를 잡았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김 부장은 가장 먼저 옆의 신발장을 살폈다. 우편함과 화분 밑도 놓치지 않았다. 위층에서 불이 켜지며 지하를 향해 걸어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교살에 사용할 끈을 꺼내기 전, 가죽 장갑을 꺼냈다.


계단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김 부장은 지하에 비친 그림자에 안심하고 장갑을 벗었다. 계단에서 내려온 1층의 집주인 할머니는 김 부장에게 물었다.


“택배예요?”

“아니요. 승훈이 삼촌이요. 집으로 오라고 해놓고 없네요? 전화는 안 받고.”

“내가 전화해 볼까?”

“아니요. 괜찮아요. 기다리면 되죠.”

“이렇게 추운데 밖에서 기다리게? 그러고 보니 지하 사는 총각이랑 정말 닮기는 했네. 기다려봐.”


‘닮았다고?’


노인은 바지춤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어, 승훈이 숨어 지내는 동굴의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김 부장은 문자가 온 척 핸드폰을 바라보며 노인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5분 안에 온다네요.”

“그래. 이 날씨에 밖에 있다가는 얼어 죽어. 들어가서 기다려요. 그럼. 나는 내 일 보러 갈게.”


방에는 온기가 남아 있었다. 싱크대에는 방금 먹은 듯 라면을 끓인 냄비와 그릇이 쌓여 있었다. 거실을 지나 TV가 있는 낡은 방에 들어섰다.

‘집주인 노인네 때문에 기다렸다가 죽이기는 틀렸네.’


김 부장은 거실 옆, 청테이프가 칭칭 감겨 있는 문을 발견했다. 테이프를 모두 뜯어낸 그는 보일러실에 들어섰다. 가스 밸브에 걸려 있는 검은 비닐봉지 안을 확인했다. 검은 장갑과 모자, 그리고 망치.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묘안이라도 떠오른 듯, 그는 모든 것을 전과 같이 깔끔히 정리하고 승훈의 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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