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es around... 2

by 박규동


작은 나무배는 산이 우뚝 솟은 섬의 강가에 도착했다. 일행은 짙은 어둠을 머금은 산을 보며 배에서 내리기를 망설였다. 뱃사공은 강하게 물속에 노를 내려쳤고, 얇은 손가락이 쥔 노는 배를 붙잡았다. 뱃사공은 노를 놓은 채 잠자코 있었다. 마치 준호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준호 : 왜 여기서 멈추는 거지?


뱃사공은 승훈의 손에 들려 있는 피리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당황한 승훈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내 뱃사공은 산의 뒤편, 밝게 빛나는 붉은 별을 가리켰다.


뱃사공 : 너의 피리 소리가 내가 만족할 정도로 아름답다면, 저 별을 향해 연기가 피어오를 거야.


뱃사공의 태도에 준호는 조롱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준호 : 예슬아, 이제 그만해. 여기가 어디인지 설명해.

뱃사공 : 여기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얼어 죽고 싶다면 상관없고.

준호 : 도대체 우리한테 원하는 게 뭐야?

뱃사공 : 말했잖아.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피리 정도는 불 수 있겠지. 내려. 연기가 피어오를 곳에서 보자.


일행보다 더 많은 기억을 가진 만큼 준호는 괴롭고 억울했다. 산은 높았지만 가파르지 않았다. 그들은 섬의 반대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두운 숲 속에서 보이는 것은 서로의 뒤통수와 발뒤꿈치가 전부였다. 김 부장은 승훈과 나은에게 들리지 않게 준호에게 속삭였다.


김 부장 : 예슬이가 누구야? 아까 뱃사공을 예슬이라고 부르더구먼.

준호 : 친구요. 아니, 다른 곳에서는 친구였던 사람이요.

김 부장 : 너도 이제 슬슬 제정신이 아니구나.


어두운 숲에서 높은음의 굉음들이 들려왔다. 나은은 두려움에 승훈의 팔을 잡았다. 그들은 소리의 근원을 어둠 속의 짐승이라 짐작했으나, 승훈은 높은음의 굉음 속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승훈 : 잠깐만. 이거 피리 소리야.

나은 : 너 말고도 피리를 부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거지?

승훈 : 몰라. 근데 이건 피리 소리야.


준호가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의 불을 켰다. 담배에 불이 붙인 준호 일행은 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호흡조차 힘든 입으로 피리를 불고 있었다. 수년 동안 산속에 갇힌 듯 지칠 대로 지쳐 폐인이 된 인간들의 행렬이었다. 김 부장은 어이없다는 듯 실소했다.


김 부장 : 우리를 갖고 노는 거네. 게임을 하는 거야.

준호 : 게임이요?

김 부장 : 그래. 폭풍에서 도망친 우리를 잡아놓고, 게임을 하는 거지. 이기고 싶다면 쓸모 있는 인간이 되라는 헛소리를 하면서.

준호 : 산속의 다른 사람들이 먼저 뱃사공이 있는 곳에 도착해서, 연기를 피우면 어떡하죠?

김 부장 : 지는 거지. 게임이잖아. 민혁이가 졌듯이.


어둠에 갇힌 그들은 서로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서로가 공포에 맺힌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발밑의 축축한 흙과 나무의 오묘한 향이 섞여 소름을 돋게 했다. 앞으로 나아갈 마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승훈 : 내가 계속 피리를 불게. 같이 걸어가자.

나은 : 괜찮겠어? 승훈아 너 이거 연주할 줄 알아?

승훈 : 응. 조금.


승훈의 피리 : 언젠가는... 언젠가는... 나는 태양이 되고 싶어. 빛나지 않아도 되는 태양. 언젠가는 나는 꽃이 되고 싶어. 향기가 나지 않아도 되는 꽃. 언젠가는 피리가 되고 싶어. 소리가 나지 않아도 되는 피리. 언젠가는 모두에게 말하고 싶어. 이제 모든 것이 괜찮다고. 이대로 멈춰도 괜찮다고.


자유가 다가오고 있어!


준호의 일행은 승훈의 연주를 들으며 어둠 속을 전진했다. 그곳의 누구 하나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작은 단서 하나 없었다. 그러나 승훈의 피리 소리는 분명히 아름다웠다. 나은은 승훈의 피리 소리를 들으며 손에 스치는 나무들과 손 인사를 나눴다. 그녀에게 이곳의 어둠은 더 이상 소름 끼치거나 두려운 장소가 아니었다.


승훈의 음악에 마음이 안정되는 것은 나은뿐만이 아니었다. 김 부장과 준호의 발걸음도 무척이나 가벼워졌다. 그들은 승훈의 피리를 콧노래로 따라 부르며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은 듯 기쁘게 발을 디뎠다. 어느샌가 점점 밝아지는 별빛에 이제는 서로의 웃는 얼굴을 볼 수도 있었다. 나은은 승훈에게 다른 곡을 연주해 달라며 미소가 섞인 부탁을 건넸다.


승훈의 피리 : 가끔은 태양의 햇빛을 나 혼자 누리고 싶어. 가끔은 세상의 와인을 나 혼자 다 마시고 싶어. 그렇게 취해도 괜찮았으면 좋겠어. 가끔은 다시 한번 아이가 되고 싶어. 너를 향한 사랑도, 모든 것도 다 내려놓고 싶어. 하늘의 구름처럼 자유가 되고 싶어.


자유가 다가오고 있어!


그들이 음악을 즐기며 걸을 때 준호는 등에 닿는 차가운 바람을 느꼈다.


준호 : 우리 조금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아.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올랐다. 등을 할퀴며 불협화음처럼 쫓아오는 차가운 바람에 그들은 승훈의 음악에 의지하며 걸었다. 승훈의 음악은 어둠 속 그들을 이끄는 등불이었다. 승훈 역시 친구들의 칭찬에 행복을 느꼈지만, 빠르게 걸으며 피리를 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나은 : 승훈아, 힘들면 잠시 쉬어도 돼.

승훈 : 다른 사람들도 있잖아. 저 사람들이 먼저 도착하면 어떡해.

나은 : 먼저 갔다고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음악이 아름다워야 한다 했어. 너의 음악이라면 우린 분명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승훈 : 정말?

나은 : 응.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준호는 앞사람의 발만 바라보며 걸어갔다. 승훈의 음악은 민혁을 상기시켰다. 준호는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돈을 위해 친구를 등지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조차 잃어버렸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등 뒤에서 다가오는 차가운 바람도 무서워 도망치는데, 민혁이를 저 어둡고 차가운 곳에 두고 왔구나.’


나은 역시 승훈의 음악 덕에 사색에 잠겼다. 어쩌면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김 부장 역시 깊은 생각을 음악에 곁들였다. 그는 뱃사공이 던진 질문을 떠올렸다.

‘나는 누구지?’


김 부장은 무엇이 그를 대표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검은 운동화와 검은 코트. 아니면 안경? 안경을 쓴 회사원? 어쩌면 그의 직업? 그의 집? 그의 차? 기억의 상실은 준호를 제외한 모두의 눈에 눈물을 맺게 했다. 나은은 피리를 부는 승훈이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은은 승훈을 위로했다.


나은 : 승훈아, 너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정식으로 음악을 배워 보는 건 어때?

승훈 : 집으로 돌아가면…. 이유가 있었어. 음악을 할 수 없는 이유. 그런데 그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

나은 : 네가 피리를 부는 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지? 나는 이제 확신할 수 있어. 네 덕분에 우리 모두 집으로 돌아갈 거야. 지금처럼 계속해서 연주해 줘, 우리가 맞춰 걸어가기만 한다면 우리는 분명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나는 확신해.

승훈 : 고마워.


승훈의 피리 : 모든 것이 괜찮아. 나는 아직 다르지 않아.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 그저 돌아가게 해 줘.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어. 그저 돌아가게 해 줘. 빼앗긴 것들을 돌려받고 싶어. 이제는 용서받고 싶어. 나의 죄가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도 않아. 그런 무지조차 용서받고 싶어.


자유가 다가오고 있어.


승훈을 필두로 빠르게 걷는 일행은 밝아지는 별빛과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은의 말은 진심이었다. 준호와 김 부장 역시 그렇게 믿기 시작했다. 붉은 별이 뜬 곳에 가까워지자 다른 이들의 괴로운 잡음들이 울려 퍼졌다. 승훈은 한 손으로 귀를 막고 한 손으로 피리를 연주했다. 한 손으로 연주하는 피리의 소리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화음은 조각이 났다.


나은 : 승훈아. 괜찮아. 하던 대로만 하면 돼.


그들은 자신들의 옆을 빠르게 지나는 다른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멀리서 찬 바람 같이 들려오는 바이올린의 소리는 그들을 앞질렀다. 피아노의 건반 소리 역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승훈은 초조했다. 승훈은 귀를 막은 손을 다시 피리에 올렸다. 그러나 급한 그의 마음에 박자가 무너졌다. 승훈의 뒤에 선 일행은 침묵으로 그를 응원했다. 건반과 기타의 소리가 승훈을 앞서갈 때 승훈의 피리는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승훈은 음정을 무시한 채 빠르게 별을 향해 달려갔다. 김 부장은 어른으로서 해줄 조언이 없음에 낙심했다. 나은 역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그들은 빠르게 승훈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준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빛 속에 그는 붉은빛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빛이 더욱 밝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준호는 승훈의 팔을 잡았다. 어둠 속에 자신을 잡는 손에 승훈은 겁을 먹었다.


준호 : 승훈아, 거의 다 왔어. 이 주변에 너밖에 없다고 생각해 봐. 경쟁이 아니야. 우리는 너의 음악을 듣는 게 좋으니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를 위해 연주해 준다고 생각해 봐.


승훈의 피리 : 거울은 나를 보여주지 않아. 이정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지 않아. 의사가 처방해 준 약들을 먹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 모든 것이 괜찮아. 나는 다시 숨기 시작해. 가장 어두운 곳에, 빛 하나 들지 않는 구석에 숨기 시작해. 나는 이제 돌아갈래. 내가 왔던 어두운 구석으로. 내가 연기해 온 거울은 깨지고 가루가 됐는걸.


자유가 다가오고,


승훈은 숨을 가다듬고 다시 곡을 연주했다. 산 중턱의 그들은 멀리서 해변의 뱃사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급하게 산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그저 승훈의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뱃사공을 향해 걸었다. 승훈 역시 뱃사공을 볼 수 있었다. 뱃사공의 손에 들린 작은 불씨와 모래 위의 장작, 승훈은 조급함을 느꼈다.


뱃사공의 앞에는 미영과 닮은 여자가 서서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승훈이 생각하기에 그녀의 음악은 형편이 없었다. 자신의 곡을 따라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표정을 알 수 없는 뱃사공의 로브 속에 만족하는 미소가 지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승훈은 뱃사공과 피리를 부는 여자가 있는 곳을 향해 다시 한번 빠르게 달려갔다. 당황한 일행은 최대한 빠르게 승훈을 따라갔다. 뱃사공의 앞에 선 승훈은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만든 곡하고 비슷한데, 훨씬 별로야. 나를 기만하는 거야. 혹시나 이 여자가 집에 돌아가게 되면 어떡하지? 나의 노래를 훔친 주제에.’


승훈은 그의 피리로 미영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피리는 부서지며 파편이 튀었다. 파편은 승훈의 턱에 튀어 상처를 만들어냈다. 파편에 베인 승훈의 턱에선 피가 흘러내렸다. 피는 바닥에 쓰러진 연주자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쓰러진 연주자의 머리에 선홍색 피가 쏟아졌다.


뱃사공은 승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승훈은 여전히 로브 아래 가려진 뱃사공의 얼굴을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준호와 김 부장, 나은은 이런 광경을 한 발치 앞에서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그들의 싸움이 아닌, 승훈의 싸움이라는 것을. 뱃사공은 승훈에게 말했다.


뱃사공 : 이제 너 차례야. 너의 음악이 얼마나 좋은지 들려줘. 그러면 장작에 불을 붙여서 연기를 피울게. 집에 보내줄게. 너희 모두.


승훈은 부서진 피리를 바라보았다. 손에 들린 피 묻고 부서진 피리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였다. 그는 깨달았다.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는 데에 실패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분노뿐이었다. 쓸모없는 인간이 된 그는 부서진 피리를 들고 뱃사공에게 돌진했다. 뱃사공은 가볍게 그를 노로 밀어내었다. 승훈이 밀려난 그곳엔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었는 듯이 구멍이 파여 있었다. 턱에 흉터가 난, 마음이 죽은 음악가는 어둠보다 더욱 어두운 구멍으로 추락했다.


자유.


나은 : 승훈이는, 어디로 간 거야?

뱃사공 : 쓸모없는 것들이 배출되는 곳으로.

나은 : 너는 다 알고 있었지?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뱃사공 : 무엇이 어떻게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나은 : 재수 없는...


준호와 김 부장은 충격에서 벗어나 나은을 말려야 했다.


뱃사공 : 여기서 얼어 죽을 거야?


준호는 격하게 거부하는 나은을 진정시킨 후 일행과 함께 배에 올라탔다. 뱃사공이 노를 밀어내 바다로 향할 때 김 부장은 그에게 다가갔다.


김 부장 : 너는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이 없는 거지?

뱃사공 : 왜 그렇게 생각해?

김 부장 : 다 알고 있어.

뱃사공 : 네가 쓸모없는 인간이 될 거란 걸 안다는 뜻이야? 너는 왜 확신하지? 네가 패배자가 될 거라고?


김 부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는 멍하게 배의 끝자락에 앉아 있는 나은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준호는 김 부장에게 물었다.


준호 : 여기 오기 전, 해변에서는 뭘 하고 계셨죠?

김 부장 : 내가 해변에 있었어?

준호 : 저와 친구들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 주시고 계셨어요.

김 부장 : 우리 모두 해변에 있었어? 그곳은 추웠어?

준호 : 아니요. 어쩌다가 그 해변에 있게 되신 지는 물어볼 필요 없겠죠?

김 부장 : 응. 내가 누구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아. 어쩌면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닐 수도 있어.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거야.

준호 : 나은아 너는 기억나?


나은은 승훈이 그리운 듯 따뜻한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있었다. 어둠 아래 바닷물은 그녀의 손에 닿아 잔잔한 물결을 만들어냈다. 나은이 만들어내는 물결의 파동은 승훈의 음악과 다르지 않았다. 나은은 승훈이 연주해 주던 곡을 콧노래로 흥얼거렸다.


나은 : 이제는 그만 집으로 돌려보내 줘.


준호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말해야 했다. 자신이 넘어온 문 너머의 세상을. 준호 본인조차 기억을 잃기 전에. 하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준호는 침묵을 지켰다. 준호는 지친 모습으로, 바닷물에 손을 담그는 나은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이겨내야 할 게임은 무엇일지.


바닷물은 잔인할 정도로 잔잔했다.


자유가 다가오고 있어. 나는 쉬고 싶어.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 나는 증명할 게 없어. 다시 아이가 되고 싶어. 이제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놔. 내가 알던 모든 것을. 이제는 자유가 다가오고 있어. 나는 그저 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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