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

Born to be alive

by 박규동



1. 영지주의란 무엇인가?

영지주의는 믿음이 아닌 앎, 지식을 통한 구원이다.

단순한 명상을 통한 해탈이나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닌, 모든 종교와 철학, 심지어는 과학과 모든 지식을 동원해 진리를 찾아 구원을 받으려는 사상이다. 영지주의는 진리를 찾기 위해 불교, 도교, 그리스도교, 모든 종교에서 공통분모와 교집합을 찾는다.


아주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과학의 우주론인 시뮬레이션 이론을 불교적 관점에서 받아들인다면, 부처님은 끝없는 명상으로 우리가 사는 이 '심즈'를 탈출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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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말쿠트부터, 명상과 경험적 앎을 통해 케테르에 닿는 과정 역시 영지주의다. 이데아를 향해 나가려는 방 탈출 게임과도 같다.


2. 체계화되어 버린 영지주의

내가 개인적으로 정의하는 영지주의는 영적 유목민과 같다.

도는 길이며 과정이자 목적지이다. 모든 철학과 과학을 통해 진리를 찾아 끝없이 찾고 또 찾아야 한다.

그러나 영지주의도 진리의 공통분모를 찾았다는 사람들에 의해 다른 종교들과 같이 체계화된다.


우리 엄마를 낳은 할머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누구일까?

그렇게 찾아낸 할머니는 바로

I AM WHO I AM. (나는 그냥 존재함ㅋ)

태초의 근원은 복잡계라는 우주 그 자체, 카발라의 아인소프와 동일시 된다.

체계화된 영지주의에선 모나드라고 불린다.

이데아는 모나드를 위해 '존재'라는 것의 개념을 부여해 줄 거울이 된다.


그렇게 모나드와 이데아는 많은 자식을 낳게 되고, 우주에 별이 끝없이 많듯이,

우리가 아는 수많은 개념들이 생겨난다.

구원, 진실, 정신, 통합, 감정, 영혼... 끝없이. 모든 추상적인 개념들은 태초의 자녀들이다.

여기서 '지혜(소피아)'는 이 모든 드라마의 시작이 된다.

지혜의 본질은 '앎'이다. 소피아는 앎이라는 그녀의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근원인 모나드를 이해하길 시도한다.

그러나 모나드는 '그냥 존재함' 즉 지혜는 아버지인 모나드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것은 그녀의 본질인 '앎'과 상충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소피아는 어떻게 했을까?

그녀에게 존재해선 안될 '무지', 또는 '불완전'을 분리해 낸다.

그렇게 그녀는 불완전이라는 아들 '데미우르고스'를 창조해 낸다.

Demiurge.PNG 사자의 머리에 뱀의 몸통으로 묘사되는 Demiurge


모나드에게 데미우르고스는 친자식도 아닐뿐더러, 자신을 이해하려던 시도이며 실패작일 뿐이다.

모나드는 못생긴 데미우르고스는 케노마(빈 공간)로 퇴출시킨다.


퇴출된 데미우르고스...

나 같아도 텅 빈 우주에 혼자 놓이면 꽤나 심심할 것이다.

이에 데미우르고스는 우리가 사는 물질세계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영지주의와 그리스도교의 연결점이 생기는데,

영지주의자들은 데미우르고스와 야훼를 동일시하기도 한다.(내 의견 아님ㅜ)

물질세계와 인간을 창조한 데미우르고스는 인간이라는 그의 창조물이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게 지구를 감옥과도 같이 만든다. 데미우르고스는 아콘이라는 존재를 창조해 인간의 영혼이 그의 세상을 떠나지 못하도록 지키게 만든다. 이렇게 보면 지구 감옥설과 시뮬레이션 이론, 그리고 부처님이 물질계 프리즌 브레이크를 위해 끝없이 명상했다는 이야기들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을 안타까워한 모나드가 구원이라는 아이온을 보내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게 했다는 이야기나 아브라삭스의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

위의 이야기는 모두 체계화되어버린 영지주의로 행여나 누군가가 '나는 영지주의자다.'라고 외친다면 데미우르고스와 소피아의 신화체계를 믿는 사람일 수도 있다.


3. 성경과 영지주의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내용이 진짜냐, 아니냐로 다툰다. 나는 성경의 내용의 진위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이 무엇인지, 어떤 점을 배울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심지어 성경이 만들어질 당시의 배경 역시 이해가 간다.


신약을 예로 들어야 마땅하지만 그래도 구약의 출애굽기를 보자.

모세는 억압된 이집트의 유대인을 이끌고 동쪽으로 향한다.

수많은 피난민의 리더가 된 모세, 그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동쪽으로 가보자.'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따랐을까? '하나님이랑 직접 대화하고 왔는데 기적으로 다 도와주신다 함, 모두 따라오세요.'라는 말이 훨씬 믿음이 간다.

구약과 신약은 유대계 민족 신화라는 내러티브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예수님이 동네 똑똑한 사람 1 보다는 유대인을 구원할 그들의 메시아가 되는 것이 더욱 희망찬 상황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낡은 문서가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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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나그 함마디 문서라고 부르는데 위 문서에는

도마복음, 빌립 목음서,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등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복음서들이 담겨있다.

나그 함마디 문서는 영지주의자들의 정경과도 같은 취급을 받는다.

가장 주목해야 할 복음서는 바로 도마복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 내용의 진위를 두고 싸우고 있다고 언급했다.

'물을 어떻게 와인으로 바꿈 ㅡㅡ'

도마복음서는 유대계 민족에게 필요했던 내러티브를 제외하고 예수님의 말씀만 받아 적은 예수님 어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교회를 뒤집어엎을 내용 때문에 기독교내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4대 정경에 나오는 시대상과 도마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을 비교해 보면, 칼 융을 시작으로 많은 학자들은 도마복음에 적힌 내용들이 예수님이 한 말들이 맞다고 주장한다.


영지주의에서는 데미우르고스를 야훼와 동일시한다던지, 사탄이어야 할 에덴동산의 뱀을 구원의 아이온으로 묘사하는 등 교회에서 좋아할 내용이 하나 없다.

그러나 도마복음은 데미우르고스 같은 얘기를 하는 영지주의 문서가 아니다.

도마복음 3장을 보자.

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를 이끈다 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보라! 나라가 하늘에 있도다' 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2 그들이 또 너희에게 '나라는 바닷속에 있다'라고 말하거든, 물고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3 오히려 나라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밖에 있다. 4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 때에, 너희는 알게 될 것이니라. 그리하면 너희는 너희가 곧 살아있는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5 그러나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빈곤 속에 살리라. 그리하면 저 빈곤은 바로 너희이니라."

교회는 예수님을 믿으면 착한 '장소'인 천국을 가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장소'인 지옥을 간다는 믿음 체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도마복음에서 예수님은 본인이 우상인 종교의 체계와 반대되는 말씀을 하고 있다. 게다가 그 말씀은 깨달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짜' 영지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어떻게 바다를 가를 수 있는지, 어떻게 물을 와인으로 바꿀 수 있는지에 관한 논쟁이 무슨 가르침을 주나?


그러나 도마복음의 6장을 보면 삶의 지혜가 되고도 남을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있다.

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거짓말하지 말고, 3 너희가 싫어하는 것 하기를 하지 말라. 4 모든 것은 하늘 앞에서 밝혀지기 때문이다. 5 드러나지 않을, 숨겨진 것은 없고, 6 벗겨지지 않을, 덮어진 것은 없나니라."


이렇게 기존의 체계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진리 무엇인지 찾는 행위를 진짜 영지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4. 신비주의적 체험으로서의 영지주의

영국 작가인 그레이엄 핸콕은 재밌는 주장을 했다.

인간이 진화해 온 과정에 있어서 동물과 구분이 되는 가장 큰 터닝 포인트는

환각 약물과 샤머니즘이라는 주장이다.

똑같이 사냥을 하고, 바나나를 먹으며 진화했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우주와 우리의 관계는 무엇인지 영지주의적 고찰을 시작한 지점은 우리가 환각 식물들과 샤머니즘을 받아들이며부터 라는 이야기다.


LSD에 절어 살던 비틀스는 LSD 없이도 신비적 체험을 하기 위해 명상을 배우러 인도로 떠났다.

비틀스는 무엇을 찾으려고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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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T 영혼의 분자.

대부분의 인간들은 약물을 사용하고 깨어났을 때 자신이 본 환각과 환청이 약물의 영향이었음을 인지한다.

그러나 많은 DMT 사용자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체험 중 보았던 존재가 그들이 찾아야 했던 '신'이라고 확신하며, 그 상호작용 역시 단순한 환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어쩌면 비틀스가 찾으려고 했던 존재를 만나고 왔을지 모른다.


약물은 나쁘다. 최소한 오늘날 사회 규범에서는.

그러나 명상만으로도 영지주의를 실천할 수 있다.

도마복음을 읽고, 과학 저널을 읽고, 절에도 가고 교회에도 가고, 모두 영지주의적 노력이다. 그러나 신이라는 존재와 그와의 상호작용은 언어와 물질을 넘어선 형이상학적 체험일 확률이 높다.

실제 세피로트의 나무를 그리며 명상을 하는 카발리스트들은 그들의 체험이 언어이상의 개념이었기에 상징체계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는 카발리스트도 아니고 카발라 잘 모른다.)


인간은 무엇일까? 우리가 보는 세상은 정말 진짜일까? 우주는 무엇이고 신은 무엇일까?

질문이 넘쳐나는 영지주의자라면 의식을 선택할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그것이 4번째 레슨~ 에서 가장 주장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의식을 선택할 권리.

물질세계는 때론 가혹하기도 하며 품위 없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식을 선택할 권리를 행사하라.

철학의 부재라는 문제를 해결하면 현대 사회의 상황이 많이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5. 그래서 신은 존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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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모르겠다.'

그러나 그를 찾으려는 영지주의적 탐구를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오늘날 우리는 법이라는 규격 안에서 서로에게 피해 주지 않고 좋게 좋게 사려고 노력한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법이라는 게 없었으면 어땠을까?

우리는 죄를 지을까?


법의 근본은 도덕이다.

도덕은 바위처럼 단단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파도와 바람에 깎이고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하기도 한다. 심지어 도덕이란 바위는 너무 거대해 그 전경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도덕은 계속해서 변화하지만, 법은 그 바위를 보고 그린 그림과도 같이 변하지 않는다.

법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고 우리는 도덕률의 본모습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걸어야 한다.

그것은 영지주의의 길과 다르지 않다.


업보라는 불교적 교리가 인간들이 서로 배려하는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나.

우리는 이런 '업보' 같은 개념을 계속해서 찾아내야 한다.


예수님은 천국이 너의 안에 있고 너와 다른 이의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위는 영지주의 문서, 도마복음에 나오는 말씀이다.

선과 악은 구분이 희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을 배반하는 행위는 모두 악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육체와 물질을 넘어선 영적 탐구를 하다 보면 페라리를 사는 것 보다, 친구와 함께 걷는 것이 더욱 '천국'에 가까울지 모른다는 영적 지식을 얻을지도 모른다.




페라리로쉐 먹고 싶다... 오늘은 나의 31살로서의 마지막 날이다.. 떡국도 안먹었는데...

오늘은 뭐하지... 추석인데... 코로나도 다 나은 것 같은데...

챗gpt에 내 프로필을 메모리에 저장해놓으라고 했더니

'2024년 무슨 책 출간, 2024년 무슨 상 수상, 키는 177에 77kg, 스스로를 미남이라고 주장함.'

이 따위로 써놨다. 터미네이터 현대로 시간여행오면 포항제철에 던져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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