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신앙, 북쪽에서

뱀과 매의 창세기

by 박규동

5. 극한의 신앙, 북쪽에서


설산 아래 동쪽 해안, 우르고스군은 분주했다. 높은 흙산 위에 희고 긴 머리칼, 길게 자란 손톱으로 달걀을 입에 집어넣던 조슈아는 명을 향해 다리를 놓는 병사들을 내려다보았다. 병사들의 고된 노동을 우려한 병참 장교가 조슈아에게 물었다.


“전 사령관께서 이를 막으려 명으로 가신 것 아닙니까?”


“무엇을.”


“이곳과 명을 잇는 다리를 건설하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을 때의 이야기지.”


“지금은 어째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조슈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교의 목을 틀어쥐었다. 그의 하얀 눈동자가 뿜어내는 광기는 장교를 공포에 떨게 했다.


“왜, 황제의 군대가 패배할 것 같나? 태초의 신과 합일하신 황제가, 고작 저런 이교도들에게?”


조슈아의 손아귀 힘이 점점 강해졌다. 그때, 멀리서 노인의 발걸음 소리와 지팡이가 땅을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슈아는 고개를 돌렸다. 젊은 수도사들의 부축을 받은 설산의 원로 하나가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조슈아는 다가오는 노인을 보며 질렸다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조슈아의 앞에 선 노인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명의 침략을 막을 진지를 만들라고 했지, 명으로 전진할 수 있는 다리를 건설하라고 하지 않았네. 이건 약속과 다르지 않은가. 솔로몬은 어디 있나. 그와 대화해야겠네.”


“이제는 저한테 말씀하십시오.”


“지금 모든 작업을 멈추고, 전군을 우르고스로 돌려보내게.”


조슈아는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노인에게만 들릴 듯 낮게 읊조렸다.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들이 나이만 처먹어서는. 쥐뿔도 없는 힘으로 이래라저래라 하는군.


조슈아는 황제에게 하사받은 검을 뽑아 들고 노인의 주위를 배회하며 말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십니까? 누가 이 세상을 만들었는지. 누가 창조주인지. 우리같이 불쌍하고 우매한 짐승들을 인도할 창조주의 벗, 그 말씀이 누구인지. 저 건너편 붉은 천을 두른 명의 군사들을 보십시오. 이교도들. 그들은 하늘에서 뱀이 떨어져서 악신으로부터 인간을 구해냈다고 믿습니다.”


위협을 느낀 노인은 뒷걸음질치며 말했다.


“일단은 돌아가겠네. 돌아가서 원로와 젊은 수도사들과 상의해보겠네.”


“대화를 하면 뭐 합니까? 우리가 가진 믿음이 다른데.”


조슈아는 노인의 복부에 검을 쑤셔 넣었다. 검신에서 매가 울부짖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황제의 울음소리는 노인의 비명마저 집어삼켰다.


노인의 몸에서 칼을 뽑아낸 조슈아는, 순식간에 수도사 둘의 목 또한 베어 넘겼다. 칼은 마치 피를 빨아들이는 듯 번들거렸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병참 장교는 공포에 질렸다. 조슈아는 웃으며 장교를 바라보았다.


“이단에도 정도가 있지. 이들은 명상과 공부로 신을 마주할 수 있다고 믿는다네. 웃기지 않는가? 신성모독자들이 나를 모독하는 게.”


병참 장교 역시 우르고스에서 나고 자란 여인이자, 독실한 신앙을 가진 군인이었다. 푸른 땅을 빚어낸 창조주와 유일하게 소통 가능한 황제, 그 황제는 우르고스인 한 명 한 명의 영혼을 인도한다. 허나 독실한 그녀조차 다른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로 칼을 뽑은 적은 없었다.


조슈아는 검의 손잡이로 하얗고 힘없는 자신의 머리를 긁으며 장교에게 말했다.


“잠시 산에 다녀오겠네.”


“철학자들이 있는 설산 말씀이십니까? 그곳에는 어떤 연유로...”


“솔로몬이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을 하러 간다. 그의 후임으로서 나의 의무를 다해야지.”


조슈아는 바닥에 쓰러진 원로의 로브에 칼의 피를 닦아냈다.


마지막으로 설산을 오를 때, 조슈아의 머리카락은 금빛이었고 눈은 푸른색이었다. 영혼의 재를 들이킨 후 죽음에서 돌아온 조슈아는 가볍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던 시절의 조슈아는 과거 속에서 죽어버린 듯했다.


바람과 진창, 침엽수로 둘러싸인 산을 뚫고 조슈아는 수도원의 철문 앞에 당도했다. 이번에도 역시 누군가가 자신을 응시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철문은 고음의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조슈아는 지체 없이 예배당에 들어가 종을 울린 후, 벽난로의 불 앞에 앉았다. 죽음에서 돌아온 후,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되었으나, 그저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의 그가 그랬듯이.


종소리에 원로와 수도사들이 예배당으로 몰려들었다. 불을 등지고 앉은 조슈아는 그들을 향해 읊조렸다.


“노인의 머리를 들고 왔어야 했는데, 생각이 짧았군.”


조슈아는 과거 솔로몬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이곳의 철학자들이 명의 진군을 방관한다면, 철학자들 모두 우르고스의 적이 아닌가. 조슈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철학자들을 응시했다.


“내 자존심을 긁는 부분이 몇 가지 있어. 우르고스가 원한다면 당신들의 목을 모두 베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을 거야. 그런데 왜 우리가 전쟁에 앞서 당신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 그래, 그 부분은 괜찮다고 치자. 모두 정치적인 문제 아니겠어. 나는 군인이지, 정치인이 아니니까.”


예배당 안, 젊은 수도사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은 원로들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와 도망치고 싶다는 생존 본능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조슈아는 분노한 듯한 원로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들의 교리니, 공부니 하는 것들을 보고 있자니, 그 교만함에 기가 차더군. 명상과 글자들로 신과 하나가 돼? 신을 목격하고 신의 목소리를 들어? 나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신을 대면할 수 있었다. 너희들이 이곳에서 마당이나 쓸고 따뜻한 스튜나 퍼먹을 때 말이야.”


조슈아의 목소리가 점점 고조되었다.


“신은 나에게 길을 제시했다. 모든 길 잃은 영혼들에게 그러듯이 말이야. 별이 뜨고, 별이 지고. 생명이 태어나고, 생명이 죽고. 모두 신의 뜻이 아니겠어? 신이 나에게 그 권한을 부여했다.”


수도사들 사이를 뚫고 나온 늙은 원로가 조슈아의 말을 끊었다.


“그래서 배가 부르던가? 당신이 말하는 신이라는 작자가 준 영혼을 먹으니? 자네는 아무것도 몰라.”


“모르니까 믿음 아니겠습니까, 노인장. 믿는다는 것은 애초에 모른다는 것이오. 그럼에도 나의 목숨을 바치고 사명을 얻는 것이지. 내가 삼킨 영혼들에 배가 불렀냐고? 그 이상이었지. 궁금하면 내가 보여주리다.”


조슈아는 예배당 구석에 몰려 있는 원로와 수도사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성스러운 공간. 조슈아는 매의 검을 든 채,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은빛 갑옷은 붉게 물들었다. 하얀 얼굴과 머리카락 역시 철학자들의 피에 젖어 들었다. 과거 성전에서 죽어 나간 군인들의 모든 검술이 그의 매의 검 위에서 살아 숨 쉬었다.


조슈아는 흐르는 피가 군화에 닿기 전 가볍게 뒷걸음질 친 후, 예배당 안의 시체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기도만이 그의 머리를 맑게 만들었다. 조슈아는 그 순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본인은 황제를 위하여, 신을 위해 태어났다. 이단을 베기 위해 태어난 목숨, 그는 스스로 빛나는 매의 검이 되었다.


그는 외롭게 열려 있는 철문을 통해 수도원을 떠났다. 산을 내려가는 그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명의 궁궐, 옥좌에 앉은 명의 왕은 전방에서 온 전령의 보고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는 우르고스가 다리를 놓고 있다는 소식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솔로몬은 분명 아직 남쪽 섬에 있을 터, 사혈의 소식은?”


“예, 장군님께서는 다른 배를 이용해 귀환 중이라 합니다.”


“다른 배... 어찌 되었든 솔로몬 또한 우르고스에 닿았겠군.”


그는 붉은 비단 위로 드러난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내 옥좌 옆 탁자에 놓인, 뱀이 그려진 투구를 집어 들었다.


“모든 화포를 설산의 다리를 향해 배치하라. 나와 친위대는 내일 그곳으로 향한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


궁궐 기둥에 기대어 있던 사손이 옥좌 앞으로 나섰다.


“제가 가겠습니다.”


“너는 여기서 사혈을 기다려라. 그가 오면, 그때 함께 전장으로 합류해라.”



솔로몬이 탄 작은 배가 우르고스 해안에 닿았다. 과거 해안으로 접근하는 배를 막아세우던 그는, 이제 침입자의 심정으로 고향을 마주했다.


해안을 지키던 우르고스 경비대는 솔로몬의 갑옷이 반사하는 빛을 보고 경계를 풀었다. 솔로몬은 그들 사이에서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해변에 앉아 있던 이삭을 향해 걸어가 손을 내밀었다.


이삭의 표정은 어두웠다.


“자네는 해임되었네. 조슈아가 새 사령관이야. 그가 황제를 알현했다는 소문이 파다해.”


솔로몬은 뒤엉킨 사건의 실타래를 풀려 애썼으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자신의 처지, 원망의 대상, 그리고 당장 향해야 할 곳조차.


이삭은 모래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솔로몬을 말이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부친의 장례는 잘 치렀으니 걱정 말게. 이곳에 도착해 패잔병들의 습격을 받고 조슈아는 죽을 뻔했지. 아니, 죽음에서 돌아왔네. 마치 자네처럼. 그가 회복한 걸 확인하고 자네 부친의 집으로 갔지. 편지가 한 통 놓여 있더군. 우린 지금 그 편지에 적힌 주소로 가는 걸세.”


이삭이 건넨 편지를 받아든 솔로몬은 아버지가 적어내린 마지막 문장에 시선을 멈췄다.


‘파도를 기다리지 마라.’


두 사람의 말은 모래 해변을 지나 숲을 가로질렀다. 앞서 달리는 이삭의 등을 보며 솔로몬은 안도했다. 황제나 신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


아버지의 죽음은 여전히 실감 나지 않았다. 어쩌면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없기 때문일까. 숲을 지나 우르고스 도시에 진입한 두 남자는 말에서 내려 시장을 걸었다.


솔로몬은 황제와 주교가 있는 탑을 올려다보았다. 어서 주교에게 자신이 본 진실을 전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일었다. 허나 아버지의 유언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고향의 평화가 오히려 두렵게 느껴졌다. 곧 닥쳐올 거대한 격변을 알기에.



이삭은 솔로몬이 과일을 사던 시장 안쪽, 깊숙한 골목으로 그를 이끌었다.



두 사람은 석공들의 회합 장소로 들어섰다. 기술자들의 공간이라기엔 지나치게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곳이었다. 흑백이 교차하는 바닥 위로 난해한 상징들이 어지럽게 새겨져 있었다.


이삭은 건물의 지하 창고로 솔로몬을 인도했다. 그곳에는 솔로몬의 아버지 연배로 보이는 노인들이 정교하게 깎인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중앙에 놓인 상자를 발견하자, 아시아에게 받은 창이 격렬하게 불타올랐다. 솔로몬은 상자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직감했다.


창과 방패를 내려놓은 솔로몬은 이삭과 함께 노인들 곁에 앉았다. 침묵을 깨고 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태초의 돌을 발견한 자들이 있었어. 떨어진 운석을 보고 석공들은 달려들었지. 주변의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지만, 놀랄 일은 아니었어. 그들은 돌을 깎기 시작했네. 돌이 부서질 때마다 그들은 환영을 보았지. 우주가 태동하는 모습, 빛이 모여 별이 되는 순간, 그리고 우리가 선 이 푸른 땅이 빚어지는 광경 말이야.”


“그 쏟아지는 지식과 진리를, 그들은 어디에 이용했습니까?”


“그들은 석공들이었어. 자네가 태어나기 전, 그들은 연금술이라 불리는 기술을 썼지. 지금이야 과학이니 건축이니 하지만. 자네는 지금 이 지하 위, 거대한 문명이 하루아침에 솟아났다고 생각하나? 전부 돌의 힘일세.”


“그렇다면 당신들은, 그리고 제 아버지는...”


“자네 부친 또한 한 명의 석공일 뿐. 우린 그저 태초의 지식을 보관할 뿐이네. 그 무엇도 행하지 않아. 돌을 발견한 태초의 석공들 중에는 명의 선조도 있었고, 점성술에 능한 여인도 있었지. 그저 건축과 예술에 몰두한 이들도 있었고. 허나 돌이 보여주는 환영에 중독된 자도 있었어. 영생을 얻어버린 게지.”


“누구입니까?”


“모르지. 자네 그 이야기를 아는가? 신이 이 땅을 빚은 후, 초월적 짐승들을 만들어 우리의 삶을 굽어살핀다는 이야기?”


“초월적 짐승, 매와 뱀의 이야기입니까. 우르고스의 신... 굽어살핀다기엔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매는 레비아탄이 신의 작품을 망치지 못하도록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주시한다네.”


솔로몬은 창에 머리를 기대어 생각을 정리했다. 그 역시 환영을 보았다. 빛의 응집과 태초의 땅이 창조되던 순간을.


“영생을 얻었다는 석공, 혹시 그가 황제입니까?”


“확신할 수는 없네. 허나 분명한 건, 매는 신이 만든 집정관이라는 사실이야. 인간의 육신을 빌려 살아가는 게 분명해.”


솔로몬은 지하 창고의 벽화들을 둘러보았다. 바닷속 괴수를 억누르는 매, 인간을 감싸 안은 매. 동시에 인간을 소유하고 가두는 매의 형상.


“저 그림들, 누가 그린 것입니까?”


“자네 부친일세.”


“불타는 운석은 무엇입니까? 그것 또한 신의 장난감에 불과합니까?”


“신은 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일세. 불타는 운석은 누구도 설명할 수 없어. 신의 실수인지, 아니면 정말 인간을 구원하러 온 외부의 신인지. 어쩌면 그저 자연현상의 일부일지도.”


솔로몬은 사혈을 떠올렸다. 명의 백성이 숭배하는 불타는 뱀. 그들은 하늘의 뱀이 인간을 연민하여 스스로 운석이 되어 떨어졌다고 믿었다. 사혈이 보았다던 환영 또한 그와 닿아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신화의 늪에 빠진 솔로몬에게 이삭이 손을 내밀었다.


“중요한 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닌가?”


“주교님을 만나야 해. 계획은 변하지 않았어. 주교님께 고하고, 남쪽 돌 앞에서 사혈을 만나는 것이다.”


“주교는 자네를 버렸어. 게다가 사혈을 믿나? 그가 대군을 이끌고 올지도 모르는 일이야.”


“사혈이 약조를 깬다면, 마녀는 우르고스의 편에 설 거야.”


“너무 늦어. 그사이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걸세.”


“이삭, 자네는 북쪽으로 가주게. 조슈아에게 전해줘. 다리 건설을 멈추라고. 내가 명과 맺은 약조가 있으니 전쟁 준비를 중단하라고.”


“그동안 자네는?”


“주교를 만난 후, 곧장 남쪽의 돌로 향하겠네.”


“주교가 옳은 선택을 내리길.”


“조슈아를 잘 설득해 주게.”


두 사내는 석공들의 은신처를 빠져나왔다.



이삭은 말에 올라 북쪽 해안을 향해 내달렸고, 솔로몬의 말은 탑을 향해 질주했다. 우르고스의 도시는 평화로웠으나, 도시를 가로지르는 두 남자의 마음은 폭풍과 같았다.


황제가 기거하는 탑의 앞. 솔로몬은 말에서 뛰어내려 탑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경비병들이 앞을 막아섰으나, 해임되었다 한들 오랜 시간 명령을 따르던 사령관의 기세를 제압할 수는 없었다.


사제와 시종들이 분주히 오가는 층에 다다라서야 솔로몬은 숨을 돌렸다. 그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가 살아 돌아올 줄은 몰랐네. 그 창은 무엇인가? 우르고스의 물건이 아닌 듯한데.”


주교는 땀에 젖어 거친 숨을 몰아쉬는 솔로몬을 환대했다. 솔로몬은 호흡을 가다듬고, 남쪽에서 목격한 것들을 털어놓았다.


주교는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침착하게 솔로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돌은 어차피 야만인들의 숲에 있지 않은가? 명의 군대라 해도 절대 그 돌을 빼앗을 수는 없어. 돌의 불은 성수에도 꺼지지 않아. 잠시 불씨가 약해질 뿐이지. 명은 그 돌이 바다를 건너게 할 기술이 없어.”


“성수야 소금물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돌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백성들에게 명의 신화가 옳다고 시인할 수는 없었네. 그들의 교리가 진리라고 어찌 공표하겠나.”


“왜 말할 수 없습니까.”


“그 돌은 그저 우연의 산물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인간을 연민한 뱀 따위가 아니란 말일세. 허나 사람들은 믿겠지. 그리되면 우리의 신은 악신이 되는 거야.”


“제가 어찌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북쪽의 전쟁에 더 집중하는 거야.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된 걸세. 명의 군대 일부가 남쪽으로 향하면, 북쪽의 전력은 줄어들겠지. 이 틈을 타서 명에게 우리의 교리를 전파하는 거야.”


“명의 왕과 약조했습니다. 돌에 관한 지식과 사용처를 확고히 하기 전까지는 전쟁을 멈추겠다고. 약조를 지켜야 합니다.”


“자네는 명의 장군인가, 우르고스의 장군인가? 우르고스의 모든 시민이 황제에게 등을 돌리기를 원하나? 이 세상을 만든 게 악신이고, 우리의 안녕에는 관심 없는 파괴자일 뿐이라고? 내 말을 듣게. 우린 지금의 균형을 사수해야 해.”


솔로몬의 뇌리에 석공들의 말이 스쳤다.


‘영생을 취한 태초의 석공이 있지.’


‘신이 만들어낸 초월적인 동물, 매.’


‘매는 인간을 보호하고, 동시에 가두지.’


‘매는 신의 집정관으로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어.’


인간을 보호하고, 인간을 가둔다….


솔로몬의 시선이 황제가 머무는 문을 향했다.


그는 사제와 경비병들을 밀치고 거대한 문을 향해 파도처럼 들이닥쳤다. 그의 갑옷이 육중한 문에 부딪히며 파열음을 토해냈다.



문이 열리자 쏟아지는 빛이 시야를 하얗게 집어삼켰다.



탑의 옥상. 황제의 옥좌. 탑의 최상층은 쓸쓸했고 태양 빛만이 가득했다. 솔로몬은 공허한 바닥 위, 금으로 주조된 의자를 발견했다. 생애 처음으로 황제를 알현하는 순간이었다.


황금 의자 위에는 하얀 로브로 전신을 감싼 형체가 있었다. 솔로몬은 천천히 다가가 로브를 걷어내었다.


그곳에는 미라처럼 풍화되어, 흡사 박제된 노인과도 같은 형체가 앉아 있었다.


솔로몬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솔로몬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열린 문을 통해 걸어오는 주교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지만, 솔로몬은 허망한 표정으로 옥좌만을 응시했다.


의자 위의 시체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죽여….”


솔로몬은 햇빛에 말라비틀어진 시신이 말을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시신의 다리는 뱀의 꼬리처럼 여러 갈래로 찢겨, 의자 다리에 결박되어 있었다. 얼음처럼 굳어버린 솔로몬에게 주교가 말했다.


“손대지 말게.”


“...이게 무엇입니까? 황제는, 신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자네에게 모든 걸 말해줄 순 없었네. 허나 황제의 문까지 박차고 들어오다니, 신앙을 잃은 수준이 아니군. 미쳐버린 거야. 돌이 자네를 미치게 만든 게지.”


“의자 위에…. 이것은 무엇입니까? 뱀의 꼬리를 한 인간의 시체…. 이것은 무엇입니까.”


“태초의 바다엔 지금보다 거센 폭풍이 몰아쳤지. 바닷속의 괴수가 자유롭게 뛰놀았거든. 반복되는 홍수에 우리는 문명을 건설할 시간조차 없었어. 그때 몇몇 석공이 돌을 발견한 거야. 바닷속의 괴수, 레비아탄을 묶을 방법을 찾은 거지. 괴수의 영혼을 다른 그릇에 담는 것. 나약한 인간의 몸에.”


“그다음은 나약한 인간에게 영생을 부여했습니까? 돌을 이용해? 석공 중 영생을 얻는 방법을 알아낸 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입니까.”


“영생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 솔로몬, 자네 눈앞의 이 기만이야말로 문명을 지탱하는 유일한 걸쇠야.”


솔로몬은 옥좌 앞에 놓인 유골 단지를 바라보았다.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혼잣말을 읊조렸다.


“분명, 분명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죽는 순간, 죽음의 문턱에서 매를 만났는데. 매의 목소리는….”


“나의 목소리지. 이보게, 돌은 인간에게 사명을 보여준다네. 자신이 태어난 이유와 운명.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진정 자신이 누구인지. 나의 사명은 너희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거다. 돌과 마법, 괴물, 영생이나 신의 장난에서 벗어나 너희가 자유롭게 문명을 이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운명이다.”


주교의 목소리가 확신에 차 울려 퍼졌다.


“땅을 빚은 창조주가 선택한 수호자. 내가 바로 매이며, 아브라삭스다.”


솔로몬은 다가오는 주교를 피해 뒷걸음질 쳤다.


솔로몬의 뒤꿈치가 유골 단지에 닿자, 그의 창은 더욱 거세게 불타올랐다. 자신이 이곳에서 죽을 운명인지, 주교가 자비를 베풀지 알 수 없었다. 솔로몬은 바닥의 유골함을 들어 올렸다.


“누구의 유골입니까.”


“유골이면서, 돌가루지. 영혼이 곧 별과 같으니 영생을 얻는 것이 복잡할 것 없다네. 꺼지지 않는 불길. 그 화마를 피로 잠재워 내 몸과 하나로 만드니, 내 육신이 곧 불길이자 영생인 것을.”


솔로몬은 여전히 죽음을 구걸하는 황제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죽음이 떠올랐다. 모순되게도 아버지가 온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음이 감사하고 명예롭게 느껴졌다.


주교는 솔로몬의 앞에 멈춰 서서 그의 손에 들린 유골함을 낚아채듯 빼앗았다.


“영생과 진리, 그 모든 비밀을 이곳에 가두면 될 줄 알았지. 가장 높은 곳, 가장 높은 권위, 가장 거룩한 이름 아래. 아무도 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어. 당황스럽군. 그래도, 운명을 거스르는 자들을 처리하는 게 나의 사명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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