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上

뱀과 매의 창세기

by 박규동

6. 전쟁 上


이삭은 쪽배에 몸을 싣고 조슈아가 머무는 진지를 향해 거칠게 노를 저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숲속 수도사들이 쓰던 말에 올라타 동쪽으로 내달렸다.


말은 주인의 조바심을 읽은 듯 거친 입김을 토해냈다. 설산의 수도원에 들를까 고민했지만, 조슈아를 막는 것이 급선무였다. 전쟁을 막는 것이 솔로몬의 뜻이라면, 조슈아 또한 거절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설산 아래 해변에 도착한 이삭은 망연자실했다. 명으로 이어지는 다리의 건설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다. 애초에 솔로몬을 기다릴 생각조차 없었던 건가.’


이삭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이삭은 흙으로 쌓아 올린 진지의 고지에 섰다. 그곳에는 전혀 다른 세상, 전혀 다른 사람이 있었다. 백발이 된 조슈아는 의자에 앉아 병사들의 고역을 감시하고 있었다. 가혹한 노동 강도, 비정상적인 공사 속도, 죽어가는 병사들의 모습. 이삭은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조슈아는 인기척만으로 등 뒤에 이삭이 섰음을 감지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삭을 마주했다.


“어색하구먼.”


“솔로몬이 돌아오기 전까지, 전쟁을 멈추는 것이 목적 아니었나?”


“수도사님은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만 설산으로 돌아가시죠. 이미 우르고스와 황제를 등진 몸 아닙니까.”


“원로들은 침략을 위한 다리 건설을 승인한 적이 없어. 그들과 이야기했나?”


조슈아는 머쓱한 듯 웃으며, 길게 자란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 죽였습니다.”


“뭐?”


“황제의 과업을 수행하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수도사님 또한 제 손으로 처단함이 마땅하나, 목숨을 빚진 제가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설산으로 올라가 그들의 장례나 치르십시오. 당신들이 하는 방식이 있지 않습니까?”


이삭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거센 바닷바람 소리도, 병사들의 신음도 그의 귀에 닿지 않았다.


이삭은 옆에 있던 경비병의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망설임 없는 칼날이 조슈아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조슈아 역시 황제에게 하사받은 검으로 이삭의 칼을 막아냈다. 진지의 고지, 흙산 위에서 두 남자는 칼과 시선을 맞부딪쳤다.


조슈아는 고개를 틀어 이삭의 칼날을 차가운 송곳니로 물었다. 맞대던 조슈아의 검이 이삭의 가슴을 꿰뚫었다. 입가에서 피를 흘리는 조슈아는 무릎 꿇은 이삭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제가 명의 패잔병에게 찔린 곳은 거기가 아닙니다. 그곳이었다면 당신은 이 자리에서 즉사했을 겁니다. 믿음이 부재한 당신은 죽음에서 돌아오지도 못하겠지요. 이제, 저는 당신에게 더 이상 빚진 것이 없습니다.”


조슈아는 진지 아래 의무병을 향해 손짓했다. 우르고스의 의무병이 달려와 이삭의 상처를 지혈했다. 상처의 감각을 마비 시키는 잎의 가루를 뿌린 뒤, 서둘러 붕대를 감았다.


이삭은 누운 채로, 분주한 병사들을 내려다보는 조슈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는 속고 있어, 조슈아. 네가 그렇게 숭배하는 매는 세상의 창조주가 아니야. 인간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존재가 아니다. 내 말을 들어. 황제는 신이 아니야. 그는 거짓 선지자일 뿐이다.”


“살려준 보람이 없군.”


조슈아는 다시 검을 뽑아 들고 이삭에게 다가갔다. 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삭의 영혼을 위로했다.


“황제의 검에 죽는다면 누구라도 구원 받을 수 있답니다. 당신 같은 이교도의 영혼이라도, 신께서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실 겁니다. 잘 가십시오.”



검이 허공을 가르려는 찰나, 천둥 같은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포탄이 쏟아져 내렸다.



진지의 흙산이 무너지고 천막들이 화염에 휩싸였다. 이명과 흙 먼지를 이겨내며 일어난 조슈아는 만리경을 들어 다리 건너편을 응시했다.


거대한 붉은 옥좌에 앉은 창백한 남자, 명의 왕이 앉아 있었다. 명왕은 친위대와 모든 화력을 전방에 배치하고 있었다.


명왕은 의도적으로 다리를 피해 포격하고 있었다. 조슈아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조슈아는 군사들을 정렬시키고 소리쳤다.


“저들이 토해내는 불길에 녹아 죽느니, 다리를 건너 진격한다! 우리는 패배하지 않는다. 그것이 황제 폐하께서 내게 보여주신 미래다. 다리를 건너라! 매의 방패로 불을 뚫고, 붉은 천을 두른 놈들의 목을 베어라!”




명의 남쪽 해변에 도착한 사혈은 군마에 올라 궁을 향해 질주했다. 불타는 도끼창을 등에 멘 그는 노을빛보다 빠르게 내달렸고, 병사들은 감히 그를 뒤쫓지 못했다.


도시에 도착한 사혈의 말은 인파를 뛰어넘고 시장통을 부수며 궁궐로 들이닥쳤다. 사혈은 달리는 말에서 뛰어내려 궁 안으로 달려들었다.


그곳에는 왕의 신하 하비브와 동생 사손이 상자를 두고 대화 중이었다. 사손은 형의 창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을 가리켰다.


“형님, 아버님께서 솔로몬에게 하사하신 돌. 그 돌에 관해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헌데 창에는 왜 불이 붙어 있습니까?”


“나도 할 말이 많다. 아버지는 어디 계시지?”


“솔로몬이 약조를 어겼습니다. 우르고스가 명을 향해 공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친위대와 함께 최전방에 계십니다. 형님이 돌아오면 함께 그곳으로 오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가야 한다. 솔로몬이 약조를 어긴 것이 아니야. 당장 말에 올라타라. 아버지에게 가자.”


“저는 지금 비단옷 차림입니다.”


“검만 챙겨서 나와라. 당장.”


급박한 상황에 사혈은 투구를 고쳐 쓰고 말에 올랐다. 사혈은 검과 함께 불타는 돌이 든 상자를 챙기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사손이 말에 상자를 싣고 올라타자 사혈이 말고삐를 채찍질했다. 사손은 바람을 가르며 형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 상자에 든 돌, 그 원석을 발견했다. 솔로몬의 말이 옳았어. 그가 본 환영이 맞았던 거야.”


“어째서 아버님께선 형님과 제가 아닌, 솔로몬에게 그 돌을 먼저 보이신 겁니까. 우리보다 그놈에게 자격이 있다고 믿으신 겁니까?”


사혈은 흔들리는 투구를 붙잡은 채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의 말은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닿았다. 그들은 아버지가 앉아 있는 옥좌를 발견했다. 왕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옥 그 자체였다.


백발을 휘날리는 우르고스의 장군은 다리 위에서 명의 병사들을 지푸라기 베듯 도륙하고 있었다. 사혈과 사손은 다시 한번 말을 보채 해변의 아버지를 향해 달렸다. 명왕은 다가오는 우르고스의 괴물마저 지루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사혈은 아버지의 곁에 말을 멈춰 세웠다. 그는 남쪽 땅에서 목격한 참상을 토해내듯 보고했다.


허나 명왕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누구도 그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사혈은 포탄과 비명을 뚫고 목청을 높였다.


“아버지의 뜻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일단은 신사협정을 맺은 후, 남쪽 돌 앞에서 솔로몬을 만나야 합니다. 어서 뜻을 내려 주십시오.”


옆에서 듣던 사손이 코웃음을 쳤다.


“약조를 깨고 침략을 감행한 건 저들입니다. 거짓을 일삼는 자들과 어찌 협정을 맺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그러시는 겁니까. 우리가 이기는 전쟁입니다.”


“적이 두려운 게 아니다. 전쟁 후 격변할 세상이 두려울 뿐.”


명의 노란 눈동자가 사혈을 꿰뚫었다.


“말을 전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 내게 입이 있는데. 내가 직접 가면 되지 않겠느냐.”


“하지만 아버지, 그곳은 야만인들의 땅입니다. 돌의 힘을 다루는 마녀도 있습니다. 아버님이 가시기엔 너무나 위험합니다.”


“일국의 왕자와 장군을 전서구로 쓰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 내 직접 가겠다.”


명왕은 단호했다.


“너희는 저 다리 위 백발의 장군에게 협정을 제안해라. 놈들이 결코 이 해변을 넘지 못하게 막아라.”


“어찌하실 겁니까.”


“돌 앞에서, 솔로몬을 만나 담판을 지어야지.”


사손은 왕의 뒷모습을 노려보다, 전방으로 향하는 형의 뒤를 쫓았다.


'아버지가 직접 야만의 땅으로 가다니, 나와 형님을 믿지 못하는 것인가.'


“형님, 하비브와 나눈 이야기가 있습니다. 손쉽게 이길 방도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는 상황입니다.”


“궁궐 노인네들의 헛소리는 나중에 하도록 해라. 우선 저 백발의 백정 놈부터 멈춰 세워야 한다.”


사혈은 아군에게 사격 중지 신호를 보낸 후 다리 위로 질주했다. 동생 사손은 멀어지는 아버지와 형의 등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혈의 말은 병사들의 시체를 뛰어넘으며 내달렸다. 사혈은 등에 멘 도끼창을 꺼내 던져 조슈아의 발 앞에 내리꽂았다.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굉음에 양측 군사들이 주춤하며 뒷걸음질쳤다.


말에서 내린 사혈은 바닥에 박힌 창을 뽑아 들었다.


“솔로몬은 어디 있지?”


사혈의 눈을 바라보던 조슈아는 검의 피를 닦아냈다.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 판국에 한가한 질문이군.”


“우르고스군의 총사령관인 솔로몬이 명의 왕과 약조했다. 병사들을 물려라. 다리 건설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겠다.”


조슈아의 검이 사혈을 반으로 가를 듯 맹렬하게 내리꽂혔다. 사혈은 불타는 도끼창으로 검을 받아냈다.


“다시 한번 경고한다. 병사를 물려라. 네놈이 마음대로 휘저을 수 있는 전쟁이 아니다.”


조슈아는 자신의 검에 잘려나가지 않는 창에 흥미를 보였다. 다시 한번 창을 향해 검을 내리친 그는 튕겨 나간 반동을 이용해 회전하며, 사혈의 갑옷 틈새를 향해 검을 뻗었다.


사혈은 도끼창으로 검신을 바닥에 찍어 누른 뒤, 조슈아의 가슴을 걷어찼다.


조슈아는 미동도 없이 기괴한 미소를 흘렸다. 반동에 밀려 넘어진 사혈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네놈도 돌의 힘을 이용했군.”


“무슨 헛소리냐. 훈련과 황제의 은혜일 뿐이다.”


조슈아가 넘어진 사혈의 목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순간, 빗발치는 화살이 조슈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말 위에서 활시위를 당긴 사손이 달려오고 있었다. 조슈아는 검을 휘둘러 화살을 튕겨냈다. 화살을 쳐낸 검신에서 은빛 섬광과 함께 매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틈을 타 사혈은 창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켰다. 도약과 동시에 도끼창을 횡으로 휘둘렀다. 적중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조슈아의 반응 속도는 상식의 범위를 넘어섰다. 당황한 사혈은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렸다.


“모두가 전쟁을 멈추려는데, 네놈은 뭐 하는 놈이냐. 이게 황제의 뜻인가?”


“나는 황제의 검일 뿐. 진리를 거역하는 영혼들을 인도할 뿐이다.”


조슈아는 뒷걸음질 치는 사혈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너희의 그 하찮은 불꽃으로 우르고스를 이기리라 여겼나. 너희의 모든 무기와 기술도, 믿음보다 강할 수는 없다. 믿음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지.”


조슈아가 허공을 향해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매의 울음소리와 함께 빛의 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창끝의 불꽃이 사그라들자, 사혈은 당혹감을 감추려 억지 미소를 지었다. 겁에 질린 병사들 앞까지 밀려난 사혈은 다시 한번 창을 고쳐 잡았다.


“이 전쟁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냐.”


“네놈도, 네 뒤의 병사들도, 모두 종잇장처럼 베어버릴 것이다. 계속해서 진군할 것이다. 명의 도시에 닿아, 황제를 믿지 않는 모든 이들의 영혼을 황제께 바칠 것이다.”


“상황이 바뀌었다. 병사를 물리고 솔로몬을 기다려라, 하얀 머리.”


조슈아는 날아오는 화살을 맨손으로 낚아챘다. 그 틈을 타 사혈이 도끼창을 지지대 삼아 날아올라, 두 발로 조슈아의 가슴을 걷어찼다.


숨이 턱 막히는 고통에 조슈아의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허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발밑의 사혈을 향해 검을 내려찍었다.


그때 붉은 비단을 휘날리며 달려온 사손이 장검을 뽑아, 사혈을 노리던 조슈아의 검을 쳐냈다. 조슈아는 전장에 비단옷을 입고 나타난 남자를 노려보았다.


“적발에 노란 눈, 창백한 피부. 형제가 나란히 죽으러 왔구나.”


사혈의 창과 사손의 장검이 조슈아를 향해 빗발쳤으나, 조슈아는 유령처럼 공격을 흘려냈다.


사손은 춤을 추듯 검을 휘둘러 조슈아의 갑옷을 베어냈다. 은빛 매가 그려진 갑옷에 흠집이 나자, 분노한 조슈아가 사손의 목을 한 손으로 틀어쥐고 들어 올렸다.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사혈이 적발을 휘날리며 조슈아에게 창을 휘둘렀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사손은 자신의 말을 향해 기어갔다. 이내 사손이 소리쳤다.


“쉽게 이길 방도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형님”


사손이 말 안장 위의 상자를 여는 순간, 조슈아의 검이 지친 사혈의 허점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때, 질주하는 말에서 뛰어내린 남자의 외침이 전장을 갈랐다. 은빛 갑옷을 입은 솔로몬이었다.


“황제의 명이다. 멈춰라. 조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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