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별일기 Jun 04. 2021

남편 손에 들려 있는 검정 비닐봉지

그릇에 담긴 뜨끈한 짬뽕 한 그릇

엄마랑 같이 살기로 한 건 내가 8~9살 때 즈음인 것 같다. 엄마와 함께 산다는 건 어린 내게 수많은 자유 시간과 더불어 외로움을 기꺼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환경이었다.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것, 아니 여자 혼자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건 주방이 아닌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는 시간이 많음을 의미했다. 우리 둘은 암묵적으로 그런 환경에 스스로 적응하여 생존해야만 했고 엄마는 밖에서, 나는 집에서 각자의 외로움을 이겨내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살가운 엄마는 아니었지만 간혹 검정 비닐봉지 안에 맛동산 과자를 사 오시곤 했었다. 하지만 맛동산은 내가 좋아하는 과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저녁 즈음이 되면 텅 빈 집 안에서 문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 손에 들려 있는 봉지가 기대되는 그런 시간들이었고, 간혹 맛동산 사이에 먹을만한 과자가 보물처럼 숨겨져 있기도 한 날들이 있었으니깐.


그런 내가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되어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이 남자도 간혹 비닐봉지 안에 무언가를 담아 내게 마음을 전하곤 한다. 남편이 비닐봉지를 들고 귀가하는 날은 대게 1박 2일로 어디를 놀러 가거나 혼자 다른 곳에 있다 집으로 귀가하는 날들이다. 한 번은 회사 동기들과 1박 2일로 집 근처 바다로 놀러 간 후 다음 날 점심까지 먹고 오게 되었다며 전화가 왔다.


"자기, 밥 먹었어?"

"아니, 아직"

"나 우리 집 근처에서 지금 짬뽕 먹고 있는데 여기 짬뽕 좀 사갈까""

"그래? 그래 그럼"


남편은 식사 후 검정 비닐봉지 안에 짬뽕을 가지고 귀가하였다. 우리 집 반려견은 하루 만에 돌아온 남편을 반기느라 좌우로 꼬리를 흔드느라 정신이 없는 그저 그런 우리들의 하루.


"여보, 짬뽕 좀 데워먹어 "

" 그냥 먹어도 돼"

"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지"


남편은 플라스틱 용기 안에 있는 짬뽕을 냄비에 다시 넣어 팔팔 끓여서 그릇에 담아 내게 주었다. 나는 남편이 끓여 준 뜨끈해진 짬뽕을 주방에서 먹고 있었고 남편은 거실에서 반려견 쵸파와 못다 한 안부를 물으며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았다.


문득 그런 모습을 보는 데 '사랑'이 느껴졌다.


결혼 6년 동안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 아내지만, 남편은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는구나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보다 나를 신경 써주고 생각해주는 행동들이 사랑의 깊이를 더 잘 느끼게 해주는구나 느꼈던 순간의 기록.


좋은 곳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생각나는 사람


그게 나라서 감사하다.

아마 행복은 이런 작은 일상 속에 있는 건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