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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별일기 Jun 12. 2021

유치원 선생님의 아픈 손가락


“숙모! 우리 선생님 놀이하자!”

이제 다섯 살이 된 시조카가 전직 유치원 선생님인 내 손을 잡아 자기 놀이방으로 데리고 간다.

“숙모는 학생들! 아린이는 선생님이야! 자 튼튼반 친구들 안녕?”

방 안에 있는 피아노 장난감을 음은 맞진 않지만 실제로 연주하는 척 손을 위아래 나비처럼 흔들며  “안녕 안녕 선생님” 노래를 부르는 아린이를 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 내 모습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 나 또한 아린이처럼 공상 놀이를 즐겨했었다. 어느 때는 신발장에서 엄마 구두를 꺼내 온 집 안을 또각또각 소리를 들으며 활보하며 드라마 속 여주인공을 따라한 적도 있었고, 어느 날에는 부엌에 있던 의자를 거실에 다 꺼내놓고 거실 유리창에 동네 주유소에서 준 큰 달력을 찢어 흰색 뒷 장을 스카치테이프를 붙여놓고 선생님 놀이를 하기도 했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놀이를 선생님 놀이였다.

맨 앞에 앉아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가르쳐 주는 시늉을 하는 놀이.

그 시절 선생님들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아이는 결국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다.

가끔씩 교실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작은 사회를 한눈에 관찰하는 것처럼 재밌기도 하다.

“선생님의 인정과 칭찬을 갈구하는 아이”

“혼자만의 놀이를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몰입하는 아이”

“친구와 함께 놀이하지 않으면 시무룩한 아이”

“자기 뜻대로만 하고 싶은 아이”

“말을 시처럼 아름답게 표현하는 아이 등등 다양한 아이들이 한 교실 안에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생활하고 있다.


교사란 직업은 이 처럼 다양한 색깔을 뿜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 좋지만 그만큼 다양한 기질의 아이를 상대해야 하기에 어려운 직업 중 하나인 것 같다.

adhd를 겪고 있어서 지나가는 아이를 급작스럽게 밟거나 때리는 아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울고 떼쓰며 심지어 눈에 보이는 장난감을 마구 던지는 아이는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가끔은 어려워 피하고 싶기도 했었다.


그러던 중 좋은 교사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보조 교사로 일하는 시절, 한 아이가 자기가 만든 장난감을 지나가는 친구가 자기의 허락 없이 만졌다고 주먹을 쥐고 때리는 모습을 보았다. 상대편 아이는 맞아 울고 있었고 나는 더 큰 싸움으로 이어질까 급히 달려가 때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00아. 선생님이랑 이야기 좀 할까?”

본인의 잘못을 아는 아이는 내가 다가가자마자 주먹으로 나의 가슴을 있는 힘껏 때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담임교사는 아이에게 가 “선생님을 때리는 건 안되는 거야. 너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선생님이 이야기를 들어줄게. 어서 오렴”이라고 말하며 아이를 데려갔다. 담임교사는 장난감이 무너져 속상한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읽어 준 후, 그렇지만 때리는 건 안 되는 것이라는 규칙, 그리고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대안까지 아이에게 차근차근 지도해 준 후 그 아이가 다시 자신의 행동(때린)을 내게 사과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었다.


상황이 한 단락 끝난 후 나는 담임교사에게 말했다.


“아이의 행동에는 다 원인이 있지만 매 순간을 감정의 동요 없이 지도하는 건 참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에휴, 그렇죠? 저 또한 그래요”

“근데 저는 00 이가 너무 자기 틀 안에서만 행동하는 게 걱정돼요. 이제 곧 공교육 시스템인 학교도 갈 텐데. 자기 뜻대로 안 되면 힘들어하는 아인데.”

“그렇죠.. 제게도 참 걱정되고 아픈 손가락이에요”


순간, 담임 선생님의 말이 참 따뜻하게 와닿았다.


단체 생활에서 갈등이 빈번한 아이를 교사를 힘들게 하는 아이가 아닌 그래서 교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아이,

그래서 더 사랑의 약을 발라주고 마음을 써주는 선생님의 마음.

아이에게도 그게 느껴졌을까?

곁을 쉽게 주지 않고 자기 뜻대로만 하는 그 아이는 유독 자기 담임 선생님 말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하였다.


그런 그 아이를 보며 저분 같은 선생님들이, 저분 같은 어른들이 많으면 좋겠다 싶었다.

문제 있는 아이가 아닌 문제를 겪고 있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아이. 그래서 교사인 내가 조금 더 품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


인간극장에서 이혼한 시동생네 아이를 입양한 어머니가 자기 자식들보다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면 친자식들이 뭐라 하지 않아요?라고 질문하자 이런 말을 했다.

“아픈 손가락은 더 호~하고 따뜻한 사랑을 불어넣어 줘야 돼요. 더 아프잖아요.”


아이들의 첫 작은 사회인 이 공간에 따뜻한 사랑이 가득했으면,

그렇다면 나중에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상처를 입어도 그때의 그 기억으로 세상을 조금 더 믿어주지 않을까?


가르치기 좋아하는 그때의 나는 생각한다.

더 이상 의자에 앉아 아이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내 무릎에 아이를 앉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게 전부인 게 교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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