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책을 덮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눈물이 났다. 정확히는, 눈물이 나려는 것을 꾹 참으며 천장을 봤다. 소설 속 아버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어느 순간부터 나는 소설 속 아버지가 아닌 내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 출신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딸인 화자는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며, 그 삶을 조각조각 복원해나간다. 그런데 이 소설이 선택한 방법이 독특하다.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빨치산이었다는 사실, 그 때문에 평생 감시와 낙인 속에 살았다는 사실은 배경처럼 깔려 있을 뿐이다. 정지아가 정말로 쓰고 싶었던 것은 다른 무엇이었다. 이념 이전에, 낙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였다.
그것이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다.
역사소설이나 이념 서사가 종종 빠지는 함정 — 인물이 역사의 대변자가 되어버리는 함정 — 에 이 소설은 빠지지 않는다. 소설 속 아버지는 거창하지 않다. 때로는 고집스럽고, 때로는 어리숙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폐도 끼친다. 웃기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더 아프다. 그가 얼마나 평범한 사람이었는지, 그 평범함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철저히 빼앗겼는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해방"이라는 단어는 이 소설 안에서 두 겹으로 울린다.
하나는 역사적 의미다. 해방, 1945년, 그리고 그 이후 이 땅에서 벌어진 일들. 어떤 사람들에게 해방은 해방이 아니었다. 이념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혹은 선택했다는 혐의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도, 평생을 감시당하고 발이 묶인 사람들이 있었다.
또 하나는 죽음으로서의 해방이다. 딸은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어쩌면 이것이 비로소 아버지의 해방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살아서는 단 한 번도 제대로 해방되지 못한 아버지. 죽음이 그에게 처음으로 자유를 돌려준 것은 아닐까.
이 이중성이 독자를 먹먹하게 만든다. 죽음을 해방으로 읽어야 하는 삶이란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나의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었다. 이념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사셨다. 평생 도목수로 일하셨다. 나무를 다루는 손이었고, 집을 짓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가 마음 한 곳에 뭔가를 평생 묻어두고 사셨다는 것을 안다. 어떤 꿈이었는지, 어떤 바람이었는지, 끝내 듣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그저 일하셨고, 묵묵히 사셨고, 뜻을 다 펴지 못한 채 떠나셨다.
돌아가신 지 이제 10년이 다 되어간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으면서 나는 여러 번 아버지 생각을 했다. 이념의 굴레가 아니어도, 시대와 형편과 운명이 사람을 가두는 방식은 다양하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식은 언제나, 조금 늦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
정지아는 이 소설에서 아버지를 고발하지도, 신화화하지도 않는다. 그냥 바라본다. 있는 그대로, 웃기고 고집스럽고 때로는 안쓰럽고 그러면서도 끝내 사랑스러운 한 사람을. 그 시선이 독자로 하여금 각자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힘이 된다.
책을 덮고 오래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해방되었을까.
손에서 일을 놓던 마지막 순간, 혹은 그 이전 어느 조용한 날 오후에, 아버지는 잠깐이라도 가볍고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셨을까. 모르겠다. 끝내 물어보지 못했다.
그것이, 이 소설을 읽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