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옷 한 벌이 전한 말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두 번째 읽고

by 씨알

책을 두 번 읽는다는 것은 같은 강을 두 번 건너는 일이 아니다. 첫 번째엔 물살에 휩쓸리고, 두 번째엔 강바닥이 보인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다시 펼쳤을 때, 나는 이미 그 결말을 알고 있었다. 동호가 죽는다는 것을, 살아남은 자들이 평생 죄인처럼 살아간다는 것을. 그런데도 눈물이 났다. 아니, 처음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났다.


1980년 5월,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집에서, 뉴스에서 들은 것은 '폭동'이었다. 불순분자들이 도시 하나를 점거했다는 이야기. 나는 그것이 거짓말인 줄 몰랐다. 아니,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독재 정권이 언론을 틀어막으면 진실은 공기 속에서도 숨을 죽인다. 우리는 그 질식한 공기를 마시며 자랐다.

진실은 대학 입학 후에 찾아왔다. 등사기로 찍어낸 유인물, 누군가 몰래 건네준 사진들, 그리고 눈물을 삼키며 증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광주는 폭동이 아니었다. 학살이었다. 그 사실이 뼛속으로 스며들었을 때, 청년인 나는 더 이상 방관자로 서 있을 수 없었다. 거리로 나가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처럼 느껴졌다. 아니, 그것조차 틀린 말이다. 그것은 그냥 숨을 쉬는 일처럼 자연스러웠다.


소설의 후반부, 동호의 어머니가 나오는 장면을 댜시 접했을 때 나는 퇴근길 지할철 안에 있었다.책을 덮었다. 잠시가 아니라, 꽤 오래 덮어두었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들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자책, 그 어머니의 죄책감이 활자를 뚫고 나와 내 가슴을 눌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 어머니를 떠올렸다.

학생운동 현장에서 경찰에 연행된 날, 나는 그길로 의정부 보충대에 끌려가 입대했다. 예고도 없이, 작별 인사도 없이. 어머니는 아들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사라진 아들을 찾아 얼마나 헤매셨을까. 그 발걸음들을 나는 지금도 다 헤아리지 못한다.

입대한 지 2주쯤 지났을 무렵, 어머니께 소식이 닿았다. 막내아들이 군에 입대했다는 전갈과 함께, 내가 입고 있던 옷 한 벌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 옷을 받아 든 어머니는 대성통곡하셨다고 한다. 나중에 전해 들은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웃으며 넘겼다. 살아있다는 소식이었으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나서, 그 장면이 자꾸 눈앞에 살아난다.

그 옷 한 벌이 어머니께 전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아들이 군대에 갔습니다'가 아니었을 것이다. 먼지와 최루가스로 법벅이 되었던 그 옷 위에는, 어머니가 감당해야 했던 공포와 안도와 원망과 사랑이 한꺼번에 얹혀 있었을 것이다. 자식을 잃을 뻔한 어머니의 심장이 거기 있었을 것이다.


첫 면회는 입대 후 6개월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일병 계급장을 달고서야 어머니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반년이라는 시간. 어머니는 그 반년을 어떻게 버티셨을까. 나는 군복 속에 있었고, 어머니는 그 반년의 무게를 혼자 이고 계셨다.

동호 어머니가 죽은 아들 때문에 평생 자책하듯, 살아있는 아들 때문에도 어머니는 평생 가슴 한켠에 그 기억을 품고 사셨을 것이다. 불효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 단어 하나로 덮어두기엔, 어머니가 홀로 감당한 시간이 너무 크다.


어머니는 4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이 책을 펼쳤다.

한강은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쓴 것 같지만, 실은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썼다.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를. 남겨진 사람들이 그 무게를 어떻게 온몸으로 감당하는지를. 동호 어머니의 통곡은 광주의 통곡이었고, 동시에 나의 어머니의 통곡이었다. 그 울음들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었지만, 같은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역사의 거대한 비극 속에서 아주 작은 한 점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나는 전부였다. 소년 동호가 그의 어머니에게 전부였듯이. 한강이 그 진실을 소설로 써냈을 때, 나처럼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은 단순히 역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다.


책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어머니, 그때 그 옷 한 벌을 받아 들고 울었던 그 날의 어머니. 나는 그 눈물의 온도를 이제야 조금 안다. 너무 늦게 알아서, 이제는 전할 수도 없다. 그게 살아남은 자의 죄라면, 나는 기꺼이 그 죄를 안고 살겠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것이 남겨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불효의 사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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