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 호미 (1화)

베프 바구니와의 협업

by 하얀 나비
뒷뜰

안녕들 하신가유.

내 이름은 김 호미유.


한국 대장간 출신이고, 27년 전 무려 비즈니스 클래스(가방 옆자리) 타고 밴쿠버에 온 이민 1세대구먼유.


밴쿠버 간 아들이 "긴급히 호미가 필요하다"고 SOS를 쳐서, 노부부가 나를 금지옥엽 데리고 오셨슈. 겉은 투박하고 무뚝뚝해도 속은 정이 많고 일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츤데레' 장인이 바로 나유.


서양 삽이나 갈퀴? 에이, 걔들은 덩치만 컸지 나처럼 세밀한 '손맛'은 흉내도 못 내유. 입국 심사 때 나를 테러 무기인 줄 알고 겁내던 공항 직원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유. 내가 '코리안 엣지'를 가진 명품 농기구라고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더구먼유.


캐나다 흙은 왜 이렇게 버터 냄새가 난대유? 한국 흙의 그 구수한 된장국 같은 냄새가 그립지만, 어쩌겄슈. 서양 삽 녀석이 잡초 하나 못 뽑아 쩔쩔매는 꼴 보면 내가 나서야지유. 주인이 나를 쥐고 흙을 파낼 때면 느껴지는 그 익숙한 손길... 이 양반도 나처럼 한국 땅이 무지하게 그리운가 봐유.


"야, 바구니. 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입을 크게 벌리고 있슈? 내 어깨가 다 저릴 정도여."


흙 묻은 호미가 툭, 하고 바구니 안으로 던져졌다. 밴쿠버의 봄 햇살은 따갑고, 오늘따라 뽑아낸 잡초들은 왜 이렇게 뿌리가 깊은지. 호미는 씩씩거리며 흙먼지를 털어냈다.


"호미야, 네가 오늘 캐나다 땅을 너무 정열적으로 파서 그래. 그럴 땐 좀 살살 하라니까."


바구니가 묵직한 잡초들을 몸으로 받아내며 짐짓 점잖게 대꾸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몰러. 한국 대장간에서 나올 땐, 이렇게까지 억센 놈들은 안 상대해도 될 줄 알았는디. 주인의 손에 오늘따라 힘이 잔뜩 들어갔길래, 나도 모르게 '에라 모르겠다' 하고 힘좀썼슈."


호미는 바구니의 둥근 모서리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골랐다.


"주인도 그래유. 요즘 들어 글 한 줄 쓰고 나면 자꾸 나를 들고 정원으로 나오잖유. 텃밭을 파면서 머릿속 잡념까지 싹 뽑아내려는 모양인디, 덕분에 우리만 고생이지유 뭐."


바구니는 말없이 호미의 차가운 쇠 몸체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그래도 우리라도 있어야 주인이 밴쿠버의 긴 시간을 버티지 않겄어? 오늘은 그만 퇴근하자구. 주인이 이따가 따뜻한 차 마시면서 우리도 한번 쓱 닦아주겄지."


호미는 못 이기는 척, 바구니의 품속으로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비행기 타고 건너온 금쪽같은 호미와, 캐나다에서 만난 속 깊은 바구니. 이 둘의 하루도 노을빛 속에서 노곤하게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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