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그리는 화가
누구의 도화지길래
저토록 끝도 없이 너른가
내가 잠든 사이에도
바람을 심부름 보내
매일 다른 구름을 그려 둔다
어느 날은 길 잃은 새떼를
어느 날은 먼 길 떠나는 비행기를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캔버스 한켠에 슬쩍
얹어 주기도 한다
어린 시절 도화지 속 손님은
고추잠자리와 나비,
노래하는 새였는데
지금 어느 먼 하늘 위에는
에어쇼가 아닌
폭격기와 미사일이 죽음의
숨바꼭질을 하며
비극의 밑그림을 그려 넣는다
하늘 그림 화가는 마음이
슬픈 날이면
캔버스를 통째로 흐리게 덮어
참혹한 그림들을 지워 버리고
꾹꾹 참았던 분노가 터지는 날엔
번쩍이는 호통과 눈물로
세상의 오염을 한꺼번에 씻어낸다
기세등등하던 햇살조차
심술 난 구름 화가 앞에서는
무력해져 회색 도화지 뒤로
몸을 숨긴 채
그의 노여움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린다
부디, 화가의 분노가
세상을 삼키기 전에
이 땅의 하늘 도화지 위로
맑고 깨끗한 봄의 숨결이
다시 그려지기를.
우리는 간절히 기다린다
장난꾸러기 화가는
구름을 모아 포근한
솜이불을 만들고
밤이 오면 그 보드라운
품속에서 잠이 든다
내일 아침에는
조금 더 평화로운 세상의 그림을
우리에게 선물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