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인생 최대의 숙제

by 하얀 나비
코코밥양 잴때만 쓴게된 저울


하루 세 번

피할 길 없이 마주해야 하는

인생 최대의 숙제


우리 집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집에서나 식당에서나

"아무거나"

그 요리는 예리한 기술이

필요하다


보글거리는 냄비 위로

상대의 마음을 읽는 눈빛을

한 끼 듬뿍 끼얹어야 하니까


다행히 나의 단골손님은

그 어려운 메뉴를 참 잘도 먹는다

싱거우면 김치 국물 한 숟갈로

간을 맞추고

짜다 싶으면 밥 한 술 더 얹어

중용을 찾는다


언젠가 말없이 내밀던

주방용 저울 하나

그것은 숫자를 모르는 아내를 향한

그의 소심하고도 소리 없는

반항이었을까


한 꼬집, 약간, 그리고 조금.

계량컵 대신 마음을 담는 것이

나의 요리법(?)이라

오늘도 저울은 주방 한구석의

장식품이 된다


신혼 때 콩나물 맛있다고 했던

한마디 때문에 평생 콩나물을

먹는다는 웃픈 이야기를

들어서 일까? 한 번도

맛있다는 말을 안 한다.


오늘은 마음먹고

대장금 손맛을 보여주려고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한창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는데


그가 좁은 틈을 쓱 비집고 들어와

냄비에 물을 받는다


"물은 왜?"


잔뜩 겁먹은 얼굴로 대답한다


"라면 끓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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