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크루즈
꽃다운 스물세 살
결혼이라는 언약을 하고
성치 않은 마음을
기대고 살려고 했는데
출산이라는 인생 숙제에 걸려
몸마저 상처 투성이가 되었다.
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두 아이가
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니
둥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신이 내게 내리신
종족 번식의
사명을 마칠 때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낯선 땅에 서있었다.
갑자기 언어장애자가
되어버린 우리만 믿고
얼떨결에 낯선 땅에
착륙하셨던 시부모님을
강물에 눈물을 섞어
보내드리고 둘러보니
꽃답던 청년과 아가씨는
간데없고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반 노인 코스튬을 어색하게 입은
두 사람이 강가에 쓸쓸히
마주 보고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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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숙제를 하듯 서둘러
삐그덕 거리기 시작하는
몸을 이끌고 떠난
지중해 크루즈
남편은 울퉁불퉁한 벽돌로 만든
유럽의 길바닥에 자빠지고
나는 그를 일으켜 세우며
웃음반 눈물반으로
나무랐다.
“아까 인솔자가 뭐랬어?
하늘 말고, 건물 말고, 땅만 보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