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이야기-1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봄이었다.
우리는 해외 파견을 앞두고 연수생 개념으로 합숙 훈련을 하는 훈련생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성인들 백여 명 정도가 저마다의 생각으로 모여 같은 옷을 입고, 밥을 나누며 수업을 듣고, 일상을 공유했다.
한 달 남짓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눈을 떠서 새벽 구보를 하고 취침 소등에 맞추어 모두가 잠이 드는 규칙이 있는 곳에서 우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친해져 갔다.
흔히 말하는 술도, 여가도 없는 그곳에서 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다 큰 어른들이 수업시간엔 꾸벅꾸벅 졸기도, 쉬는 시간에는 깔깔대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주말에는 가볍게 산책도 하고 탁구를 치기도 했다. 매일 출퇴근하시는 영양사 선생님께 사제 음식을 부탁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생일 축하를 위한 케이크 같은 것들..) 그렇게 일상의 재미가 쌓여갔다.
그 많은 훈련생들과 말 트고 대화하기에 어려움이 없던 나에게 그는 말 붙이기 어려운 부류였다. 항상 남자 동기들이랑만 다녔고, 언제나 짧은 대답에 낯을 가리는 듯한 표정은 더 이상의 질문을 거부하는 듯 보여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와 친해지게 된 것은 그와 어울리던 서넛의 다른 붙임성 좋은 남자 동기들과 친해지면서였다. 그들 못지않게 발랄하던 나는 시커먼 남자 다섯 명이 있는 그 모임의 매니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남들은 신기해하는 단 둘이 대화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와의 대화가 더 이상 어렵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순간이 왔다. 까칠한 그를 아는 다른 동기나 룸메들이 나에게 신기하다는 듯한 말을 건넸지만, 나에겐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한 달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갇힌 공간에서 생활하던 젊은 청춘들에게 핑크빛 기류는 이상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미 커플인 사람도,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우리는 그런 핑크빛 기류와는 간극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주말마다 자주 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우리 둘 사이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없었다.
몇 해 전의 연애 이후로 딱히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던 그의 말이 마음을 굳게 걸어 잠근 높은 벽과 같이 느껴졌다. 그것을 깨고 싶은 마음도, 깰 자신도 없었다. 호감을 발전시키면 안 된다는 마음의 철벽을 나도 모르게 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훈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등산을 가는 날이 왔다. 첫 번째 정상까지는 모두가 반드시 가야 했으나 거기에서 이어진 추가 등반의 코스는 열외가 있었다. 그는 축구를 하다 다리를 다쳐 열외였고, 나는 단체 게임을 하다 다른 훈련생과 부딪혀 발목이 아파 열외 대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내려올 때까지 할 일도, 갈 곳도 없었던 우리는 어느 길가 귀퉁이 보도블록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몇 마디 대화가 오갔고, 침묵이 슬그머니 찾아올 즈음, 그가 이어폰을 건넸다. 악기를 전공한 그에게 음악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다. 이미 희미해진 기억이라 어떤 곡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음악을 듣는 순간 귓가로 들리는 음악과 함께 마음이 일렁였다. 이제껏 그저 친한 사이였던 그가 갑자기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얼굴이 붉어진 건 아닐까 신경이 쓰였다. 그의 벽은 무너지지 않았을 테지만 내 마음속의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갔다. 우리는 더 자연스럽게 스며갔다. 어느 날인가는 새벽 구보에 둘 다 열외 되어 대열의 마지막에 걷게 되었는데 어느샌가 그와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좋아한다 고백을 한 사이도, 사귀는 사이도 아닌 애매한 관계였다. 그땐 썸이라는 단어가 통용되지 않았던 때였다.
눈물바람을 한 동기들과의 훈련 일정이 끝나고 우리는 한 달 남짓 남은 각자의 파견국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빠른 국가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었다. 각자 준비를 하기 여념 없던 중에도 친했던 동기들과 서울에서 그간 누리지 못한 음주가무를 폭발시키며 술을 마시고 회포를 풀기도 하고, 전화로 수다를 떨기도 했다. 언제나 그가 있는 곳에 내가, 내가 있는 곳에 그가 있었다. 그의 집은 서울이었으나 나는 지방이 고향이었다. 각자 정리해야 할 사람들과 공간이 달랐으니 아쉬운 헤어짐을 고했다
그렇게 헤어진 우리는 여전히 애매한 사이였지만 매일매일 수화기 너머로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했다같은 체육복을 입고 훈련소에 있을 때보다 그의 말투가 조금 더 다정해졌지만 여전히 어떤 정의를 내리긴 어려운 사이였다. 각자 파견국이 다르니 물리적인 거리와 분명한 헤어짐의 시간을 앞둔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다른 친한 동기들을 만나러 부산으로 놀러를 왔다. 매일 통화를 하는 것과 얼굴을 보는 것은 달랐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체 그와 마주 보고 있었지만 심장소리가 들릴까 봐 시끄러운 술집의 음악소리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음악소리와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의 대화 소리에 그 사람의 말은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그때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테이블을 앞에 두고 몇 마디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앞에 있는 사람과 문자를 주고받다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그가 자기 은사님이 근처에 사신다며 인사를 잠깐 하러 가야 하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는 메시지를 보냈다. 타지에서 온 길도 모르는 사람을 혼자 보낼 수도 없었다. 그러겠노라고 하고, 바닷가로 향하던 무리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열외 되었다.
바다가 보이던 자그마한 펍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나오신 그의 은사님을 뵈었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가 반가운 듯 선생님께 그간 잘 지내셨나는 말을 하곤, 눈빛으로 저 아인 대체 누군가 하고 바라보는 선생님께 말했다.
"여긴 제 여자 친구예요 선생님" 하고....
그리고 그 이후에 그와 은사님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기억도 나질 않았다. 입만 웃고 머릿속에는 온통 그가 소개한 여자 친구라는 말만 맴돌았다.
은사님과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를 찾는 무리들이 있는 해변으로 돌아갔다. 그의 말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내 입 밖으로 다시 말하기가 어쩐지 멋쩍었다. 다시 확인하고자 하다가 스르륵 하고 손에서 빠져나가 버린 모래알처럼 없었던 일이 될까 두려웠다. 갑자기 취기가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그의 옆에 서 있기가 혼란스러웠다. 물어볼 용기도 없었지만 확실하지 않은 관계를 계속 받아들일 아량도 없었다.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길을 나선 나를 그가 쫓아왔다.
결국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그에게 용기 내 물었고, 그는 그때 그 말 그대로라고 하였다. 정신이 더없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난간에 걸터앉은 내 다리를 베고 누웠고, 나는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그를 놀라게 해 주고 싶어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었다. 눈을 뜨고 나를 보며 놀란 그의 표정에 까르르 웃음이 났다. 그러자 그가 다시 한번 얼굴을 가까이해보라고 하였다. 아무런 생각 없이 얼굴을 대자 그가 고개를 들어 입을 맞추었다. 얼굴은 붉어졌고 그를 향해 느리게 가던 마음이 빠르게 내달려졌다.
이후 우리의 짧은 연애는 하루 몇 시간의 통화로 채워갔다. 그리고 내가 출국을 하루 앞둔 여름, 서울에서 그를 만났다. 당시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에 빠져있던 나에게 남산은 남자 친구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그렇게 제대로 된 우리의 첫 데이트 장소는 남산으로 정해졌다. 자물쇠를 거는 유치함따윈 없었지만 땀이 삐질삐질 나는데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다정함은 있었다. 문득문득 첫사랑 소녀처럼 부끄러웠지만 그와 함께 있는 순간이 좋았다. 상투적이지만 시간이 느리게 가길 그 어느 때보다 바랐다. 아침에 만나 어느덧 해가 진 저녁이 되었다.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싫었지만 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야 해 근처를 산책하듯 배회하다 어느 공원 벤치에 앉았다. 옆에 나란히 앉은 것만으로도 심장이 콩닥거렸으나 조잘조잘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우리 앞을 오가던 운동하던 행인들이 사라진 어느 순간, 나란히 앉아있던 그가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옆으로 앉아 삐죽 들린 내 티셔츠 끝자락에 그의 손이 있었다. 달콤한 키스만큼이나 그의 꽉 쥐어진 손끝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