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이야기 -2
드디어 출국일이 되었다. 이제 한국에서 쓰는 핸드폰은 정지되었고, 도착 이후 연락하겠다는 통화가 한국에서의 마지막 통화였다.
도착 이후 물기를 머금은 찌는 듯한 더위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지만 그보다도 당장 현지에서 사용할 핸드폰이 없다는 것과 임시 숙소에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내 애를 태웠다.
그리고 현지에서 쓸 핸드폰이 생긴 날, 아직 출국하지 않은 그와 통화를 하고, 그 시절 우리 대화 창구였던 싸이월드 방명록에 먼저 현지 생활을 시작한 나의 절절한 하루를 풀어갔다. 그의 응원이 힘이 되었다. 그를 향한 그리움이 컸지만 잘해 낼 수 있다는 내 마음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했다.
느리긴 해도 인터넷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던 나와 달리 그의 파견국은 제대로 되는 것을 찾기가 더 어려운 아프리카였다. 심지어 그와 스카이프 통화라도 하려고 하면 그는 저녁이 되어야 했고, 나는 꼭두새벽인 네다섯 시에 일어나야만 했다. 아침잠이 많은 나였지만 그 시간에 일어나지 않으면 실시간 채팅도, 통화도 할 수 없었기에 눈이 번쩍 뜨였다. 다행히 부지런한 룸메 언니 덕분에 눈 뜨기 힘든 날에도 빠짐없이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그의 아프리카 생활은 생각보다 더 녹록지 않아 보였다. 그의 동기는 그보다 두세 살 어린 귀여운 남자 동생과 나이와 경력이 꽉 찬 어머니뻘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인터넷은 물론이거니와 전화 연결도 잘 되지 않았는데 그의 방명록 메시지에는 힘들다는 말이 늘어갔다. 다른 단원들과의 관계, 뜨거운 날씨, 낯선 환경이 그를 힘들게 한 듯 보였다.
나는 수도에서 동기들과 한 달 간의 현지 훈련을 마친 후 각자의 소속 기관이 있는 곳으로 파견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 곳이 아닌 건기와 우기가 있는 곳에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의 소식이 점점 뜸해져 갔고, 애가 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고작 그저 힘내라는 말과 우리가 언젠가 나누었던 (1년 이후 우리가 각자 휴가를 쓸 수 있을 때 중간 거리인 터키에서 만나자는 이야기) 긍정의 이야기를 상기시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갔다. 컴퓨터를 켜면 싸이월드의 방명록이 1번, 채팅창에 그가 접속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그의 글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내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나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지만, 징징거려서 그의 마음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소속 기관에서 수업을 하고 점심을 먹고 접속했으니 그에게는 깊은 밤이었을 시간, 그가 말을 걸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답을 했고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은 후에 그가 나에게 "그만하자"라는 말과 "자신이 없다.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어쩌면 몇 달간 느껴온 그의 태도에서 짐짓 예상할 수 있던 것이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단숨에 받아들여지는 일은 아니었다. 그간 그가 보인 대답없는 대답의 의미가 새삼 가슴에 꽂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멍해져서 키보드의 자판을 눌렀다 지웠다 했다. 노래 가사처럼 총 맞은 것 같은 그 순간에도, 구질구질한 마지막 기억을 그에게 남기고 싶지 않았다. 일방적 이별을 당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나 자신보다 그를 배려했고 그를 좋아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안 되겠냐는 나의 말에 그는 그럴 여유가 없다고 했다. 다시금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남은 기간 건강히 잘 지내라고 하고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왔다. 막상 학교에서 채팅창을 마주했을 때는 고장 난 시계처럼 그저 멍했는데.. 동료들과 평소 같은 대화를 하고 인사를 나눴는데 갑자기 내 공간으로 돌아오고 나니 미루어두었던 슬픔이 밀려왔다.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에 창밖이 회색빛 소음을 낼 때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누군가에게는 그 몇 달의 시답잖은 연애가 뭘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 할 수 있겠지만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나는 그를 향해서만 내달렸다. 달리던 마음이 더 나아갈 곳도, 돌아갈 곳도 잃은 상태였다.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그 사람 얘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날도 늘어갔다.
이성이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감성이 지배하는 술 취한 늦은 새벽에는 미친 척 그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그마저도 한 번에 걸리는 날은 드물었지만, 수화기 너머로 "알로(여보세요)"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떡이 되게 마신 술이 깨는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상 중에 상진상이었는데, 그 목소리라도 듣겠다고 술 김에라도 전화를 해 댄 그 시절의 내가 안쓰럽다.)
친구들은 가족도 친구들도 없는 타지에서 이별한 것이라 그를 오래도록 잊지 못하고 미련을 떠는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안줏거리 삼아 나를 차 버린 그를 욕하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좀 더 빨리 잊을 수도 있었겠지. 아니면 결국엔 그와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해서 오래도록 그를 마음에서 놓아주지 못했을 수도 있고..
지나고 보니 나는 그를 정말로 좋아했다. 그리고 서툰 마음이 앞 서 내달렸지만, 이것저것 재지 않고 순수하게 그를 사랑한 그 시절의 내가 그립다.
그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지난 십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 시절의 아픔을 마음 한 구석에 잘 덮어두었을 뿐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라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살며 혹시라도 그런 우연이 허락된다면, 그에게 웃으며 인사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든다. 짧지만 누구보다 행복하고 슬펐던 나의 시절인연, 그 시간을 선물해 준 그가 지금 어디서 누구와 있든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란다.
"시절인연"
(時節因緣)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말을 가리키는 불교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