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돼, 내지 마 플리즈.
받아라, 사직서
나와 같은 팀으로 일하는 막내 대리가 오늘 퇴근 전 이렇게 얘기한다.
“... 뭐?”
“당장 관두겠다는 게 아니라 어차피 인수인계 한 달은 생각하고 미리 내려고요.” ('말 길 못 알아들어?')
“너는 꼭 퇴근할 때 이런 얘기를 하드라, 내일 다시 얘기하자.”
"네."
요즘 우리의 분위기가 이렇다. 퇴사와 이직에 대한 생각과 마음이 가득 차 있는 분위기.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힐 리가 없다.
강경하게 사직서를 내겠다고 마음을 굳히면 말릴 재간도 없으며 내가 그럴 처지도 아니다. 준비는 내가 먼저 하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나 역시 사직서를 꺼낼 타이밍을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어제의 영향이 컸으리라. 어제는 한 달 전쯤 관두신 상사분께서 우리 팀을 불러 맛있는 고기와 디저트, 커피를 사주셨다.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고, 또 현재 상황에 놓인 우리를 안타깝게 바라보셨다.
결국 빨리 탈출하라는 말씀이다.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어서 나오라는 말...
헛되고 헛되도다 (진심은 정말 아니기를 바란다)
이 곳에서의 내 삶은 3년째 흘러가는 중이다.
처음 1년은 무작정 시키는 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하면 이 사업이 잘 되는 것에 일조할 것이라 생각했다.
2년 차 접어들어서며, 거액의 투자금을 받아 사무실도 확장 이전하며 더 좋은 환경에서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3년 차에 접어드니 투자금을 회수하라는 압박과 함께 소송이 들어왔다.?????
환경을 탓하기 이전에 너 자신을 바꾸라는 주옥같은 명언들이 무색해지리만큼 외부 환경의 변화가 다이내믹하다. 롤러코스터 같은 곳..
스스로는 대단히 허무하고 허망하다는 생각이 밀려들어 괴로운 마음이 들기도 하다.
성장을 하고 성공을 하고 싶어 대표님을 딱 한번 만나 뵙고 이 곳에 들어왔는데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정말 한참 잘못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책을 펼쳐 촤르르르 빠르게 넘기면 한 장 한 장의 내용을 알 수가 없는 것처럼 매우 다양한 모습의 대표님을 본다.
때론 뛰어난 전략가, 때론 허망한 실패 주의자, 때론 순수한 열정 주의자, 때론 허풍과 거만함이 잔뜩 낀 비계 낀 돼지 같기도 했으며 비겁하게 도망치는 치졸한 사람으로도 보였다.
그 어느 것도 아직까지 진짜의 모습인지 잘 분간이 되질 않는다. 모든 모습이 진실일 수도 모든 모습이 가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한 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막내 직원이 ‘사직서’를 내겠다고 사전 예고를 하였다.
왜 그만두냐는 질문도 의미 없고 내가 말린다고 들을 친구도 아니니 최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한다. 이 곳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직원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말이다. 사직서 쓰지 마 이 XX야, 무조건 반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