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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겄냐?"

귀여운 거짓말

크리스마스이브, 난 중앙 보훈병원에 와 있다.


허리를 다치신 할머니가 한 달째 허리 고통으로 입원 중이시다.


큰 걸 해드릴 게 없다. 한 번 더 찾아뵙고 곁에 있어드리는 거지


많이도 늙으셨다.


1924년에 태어나셨으니 95년을 사셨다. 그것도 꽉 차게.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애잔해진다.


힘 없이 축 처진 몸, 주름지다는 표현 그 이상으로  더 많이 주름 잡힌 몸, 앙상하게 튀어나온 뼈 마디들.


무엇보다 눈에 초점은 약해지고, 입이 살짝 벌어진 채 누군가를 찾는 듯한 할머니 표정은


한 때 정글을 호령하던 젊은 사자가 기력이 쇠퇴하여 이제는 얼마 안 남은 인생 앞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다.


병원 커튼을 확 재끼며 젊은 의사들이 나타났다.


"할머니, 좀 나아지셨어요? "

".. 예?"

"허리요! 허리 괜찮아요??"
"예에~... "

"네, 알겠습니다"


할머니가 나아지고 있음을 확인한 그들은 훅 가버렸고, 할머니는 나에게 귓속말하듯이 속삭였다


"좋아졌다 해야지, 나빠졌다 하면 쓰겄냐?"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면 안 되죠"


할머니도 웃고, 나도 웃었다.


그들이 남기고 간 썰렁했던 공간이 멋쩍은 웃음으로 채워졌다.



"쓰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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