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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면 가라"

이제는 의심 없이

주일 아침, 잠든 아내와 딸을 뒤로하고 동네 경춘선 산책길로 서둘로 몸을 움직였다.

찌뿌둥해진  몸뚱이가 신호를 보냈다. 좀 나가서 머리 좀 식히라고.


아주 오래간만에 불쾌했던 미세먼지를 피해 ‘보통’의 공기를 마음껏 마셨다.

흐아... 이 기분 좋은 시원한 공기가 머릿속을 맑게 해주는 느낌이라니... 이 상쾌한 맛이 참으로 오랜만이다.

기분이 좋으니 절로 흥이 난다.

두둠칫, 두둠칫

세상에 없는 즉흥 노래를 또 흥얼거리며 자박자박 걸어본다.

이 좋은 것을 왜 그리 오랫동안 잊고 있었을까.

산책을 하는 동안은 뇌가 쉬기도 하며 열심히 일을 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튀어나오는데 자기반성도 하게 되고 하나씩 차근차근 정리하는 맛도 있다.

'어제 아버지와 말다툼을 해서 후회스럽기도 하다... 왜 그랬을까’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분들이 있어 참 감사하다’


나와 아내는 둘째를 두고 기도하고 있다. 서로 조금은 다른 생각으로 부딪히기도 한다.


아내는 둘째를 위해 매우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고, 나는 무심한 듯한 태도로 속을 썩이고 있다.


‘살리시는 하나님.. 확실히 살리시는 하나님’


2년 전 이 맘때즘이다.  둘째를 임신한 아내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유산을 한 것이다.

슬픈 나날들이 어느 정도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가슴이 아파 검사를 받았는데  ‘무언가’ 보이니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한다.

조직검사를 하니 병원에서는 ‘암’이라고 했다.

이럴 수가...

눈 앞이 캄캄해지고, 검사를 받고 수술을 하기로 했던 원자력 병원이 아닌 서울대 병원으로 예약을 다시 했다. 장모님께서 앞장서서 도와주신 덕이 크다.

그러나 수술일정이 워낙 밀려있어, 수술까지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받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콧바람을 쐬면 괜찮을까, 처가댁과 동서네와 강원도로 1박 여행을 갔다.

펜션을 잡아 고기도 구워 먹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며 있는데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 주 수술할 수 있는 일정이 되었으니 준비하세요’

정말 다행이다 생각하며 안도하면서도 착잡했다. 나와 아내는 약간 상기되어 도우심이 있음을 체험했다.


그렇다 해도 앞으로 견뎌야 할 나날들을 생각해보면 무섭고 두려움이 없을 수 없었다. 나도 이런데 본인은 오죽했을까.

그 두려운 마음들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나는 최대한 호들갑 떨지 않고 무덤덤하게 당연히 결과는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태도였다.

별 걱정되지 않아, 무조건 잘 끝날 것이고 회복할 테니.

만약 둘째를 잃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모른 채 종양은 커져 시기를 놓쳤을 것이 뻔한 상황이었는데...


이 일들이 생각나면서 다시금 입으로 내뱉었다.

‘살리시는 하나님.. 확실히 살리시는 하나님... '


아내와 난 최근까지도 둘째를 두고 투닥거리며 말다툼을 했다. 그런데 난 잊고 있었다.

끝까지 살리시는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이제 다시 그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자녀의 축복에 더는 불안해하지 말자,

무조건 잘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잘 되고 좋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나의 시야가 아닌 그분의 시야로 보니... 이미 축복인 것이다.

                                                           



P.S : 꽃샘추위 막바지답게 제법 바람이 세차게 불어 아내의 머리가 찰랑거렸다. 항암으로 머리가 모두 빠져 가발을 쓰던 작년을 생각하니... 그 찰랑거림 또한 어찌나 감사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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