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선택한 사람들의 해방

내 안의 뿌리에서 시작되는 삶

by 안녕 마음아

"참 착한 아이였는데."

이 단순한 문장 속에 숨겨진 비극을 세상은 쉽게 알아주지 않는다.

본래 곱고 예쁘게 자랄 수 있었던 아이들이

환경을 잘못 만나거나 부모의 무지 속에서 끝없는 다툼을 목격할 때,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착함' 선택한다.

살아남기 위한 가장 고통스러운 방어 기제인 것이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심각한 분리불안을 겪게 된다.

아버지의 횡포는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적개심과 분노를 심어주었다.

참고 참았던 모든 감정이 터져 나오던 그 날,

억압된 분노는 아이를 휩쓸고 지나갔지만,

동시에 그 혼란 속에서 세상의 민낯을 보게 된다.


그렇다.

모든 사람의 조건이 다 똑같지 않다는 것

본래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 우열이 나뉘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지만,

하물며 태어난 환경이야 오죽하겠나.

대한민국 1% 부잣집에 태어난 아이가 있는가 하면,

1% 확률로 가장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에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공평인가?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던지는 시선과 잣대다.

그들은 "너는 왜 노력도 안 하느냐"며,

가난한 사람과 부자인 사람들을 살벌하게 구분 짓고 나눈다.

지성이 있는 분이라면,

이처럼 기울어진 판에 떨어진 것이 축복이라 단언할 수는 없으리라

태어난 위치가 곧 삶의 전부가 되어버리는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

우리는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노력하는 이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들은 불평불만 대신, 그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지혜롭게 자신의 삶을 축복하는 법을 안다.

가족들과 웃으며 서로를 감싸주고 응원해주는 그 따뜻함.

그 행복은 아마도 세상의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장 귀한 삶의 선물이 아닐까.

이제 희미한 바깥의 목소리를 따라 쫓아다니던 삶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이젠 수동적으로 '무엇을 해야만 하고',

'무엇을 이루어야만 하는' 삶의 굴레에서 벗어 나자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했다.

비로소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나하나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을 산다는 것이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매일 경험하게 된다.

이 자유는, 세상의 평가나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내 안에서 시작된 단단한 뿌리에서 나온다.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 당장, 나를 짓누르는 '해야만 하는 것' 중 단 하나를 내려놓고,

당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중 단 하나를 선택해 보자.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희망한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모든 이들과 함께 응원하고 격려하며 이 한 세상을 건너가고 싶다.

어린 시절의 아픔과 기울어진 세상의 냉정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오직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자유를 선택한 사람. 그런 진실한 사람과의 관계라면, 모든 시간을 걸어 그 길을 응원해도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내 모든 시간을 걸더라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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