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서리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들어주는 이의 소중함에 대하여

by 이현

no. 2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히가시노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왜 하필 소설 속 공간은 잡화점일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첫 질문이었다. 잡화점에서 파는 가지각색의 물건처럼 다양한 고민 상담 의뢰가 들어오고, 없는 게 없는 잡화점의 특성처럼 해결 방법도 무조건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 이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특별한 고민 상담소와 관련된 이야기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jpg Poto by. 이현
p. 49
“내 생각에는 일이 이렇게 된 거 같아. 가게 앞 셔터의 우편함과 가게 뒷문의 우유 상자는 과거와 이어져 있어. 과거의 누군가가 그 시대의 나미야 잡화점에 편지를 넣으면, 현재의 지금 이곳으로 편지가 들어와. 거꾸로 이쪽에서 우유 상자에 편지를 넣어주면 과거의 우유 상자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앞뒤가 딱 맞아.”


빈집털이범인 세 친구 야쓰야, 쇼타, 고헤이는 범행 후 우연히 ‘나미야 잡화점’이란 신비한 공간에 몸을 숨기게 된다. 그곳에서 세 친구는 과거의 사람들로부터 고민 상담 편지를 받게 되고, 나름의 해결법을 담은 답장을 해주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리는 어떤 이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보다 무슨 말을 할지에 대해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깊이 공감하며 경청한다는 것은 어쩌면 진심으로 호소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소설 속 잡화점의 원래 주인이었던 나미야 할아버지는 이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에 귀찮은 내색 없이 최선을 다한다. 사연자의 감정을 깊이 헤아리고, 진심으로 고민이 해결될 수 있길 바라며 자신만의 해답을 제시한다. 일부로 골리려는 못된 장난 같은 편지에도, 심지어 백지의 고민 편지에도.


p. 158-159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p. 447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겁니다. 지도가 백지라면 난감해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개인적으로 고민은 ‘마음과 생각의 합의점’을 찾지 못해 생기는 듯하다. 가령 시험에서 100점을 맞고 싶으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그게 하기 싫으면 고민이 생기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조금만 하고 100점을 맞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고민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 고민의 답은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하지만 자신의 쓴 답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아 괴로울 뿐.


공감과 위로.jpg 출처. pixabay

이럴 때 고민을 들어주는 이의 배려가 필요하다. 고민의 사연자는 상담자의 공감과 위로를 받으며 점차 마음과 생각의 합의점을 찾아간다. 공부는 하기 싫지만, 그냥 교과서를 한 번이라도 가볍게 훑어보자고 결심하듯이. 고민 상담의 핵심은 해결책 제시가 아니다. 공감과 위로다. 누군가가 자기 말에 귀를 기울여 준다는 것, 자신의 감정과 사정을 헤아려 준다는 것, 눈을 맞춰준다는 것, 따스하게 손을 잡아주며 위로한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일어설 힘과 정답에 대한 확신이 생기는 것이다.


p. 444
“아니, 그게 맞아. 이 편지는 나미야 할아버지가 아니라 우리한테 보낸 거잖아. 그렇지, 야쓰야?” 쇼타가 말했다. “이 사람이 감사하는 대상은 바로 우리야. 우리한테 고맙다고 편지를 보내준 거야. 우리 같은 놈들한테, 쭉정이 백수인 우리한테…….” 야쓰야는 쇼타의 눈을 보았다. 불그레한 그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도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성립하기에 ‘말하는 이’뿐만 아니라 ‘들어주는 이’ 또한 그 속에서 치유 받을 수 있다. 이 소설 속 세 친구도 어설프지만, 최선을 다해 고민 상담을 해주는 과정에서 하찮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기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과는 결이 좀 다르다. 추리 소설로 유명한 작가답게 이 소설 역시 인물 관계도나 사건 구성이 촘촘하지만, 읽다 보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오늘 밤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은 식어버린 나의 마음을 데우고, 주변에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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