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서리뷰

천 개의 파랑

구름 선명한 파란 하늘을 만끽하며 천천히 달리고 싶은 분에게 추천

by 이현

no. 3

천 개의 파랑 - 천선란 지음


며칠 전, 새로 장만한 자전거를 타기 위해 집 근처 자전거 도로로 향했다. 실로 오랜만에 타보는 자전거라 의도치 않게 천천히 달리며 주변을 살폈다. 정말 말 그대로 파란 하늘, 초여름 아침에 맛볼 수 있는 시원하고 산뜻한 공기, 자전거 도로 옆 파릇파릇한 풀과 바람에 흔들리던 노란 금계국, 그 옆을 천천히 흐르는 강과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차를 타고 빠르게 다닐 때는 볼 수 없었던 생경한 풍경이었다. 천천히 자전거를 타며 보았던 그 풍경이 낯설지만 너무나 좋았던 탓일까? 문득 아침에 본 풍경과 함께 「천 개의 파랑」이란 소설이 떠올랐다.

Poto by. 이현

‘천 개의 파랑’은 비교적 가까운 미래 2035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감성 SF소설이다. 무릇 SF소설이란 보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 괴상한 생김새의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던가 사악한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시비를 턴다던가(?)하는 잘 와닿지 않는 미래를 그린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과 달리 ‘천 개의 파랑’은 “와! 정말 10년 후에는 이럴 수도 있겠다.”라는 현실적인 미래를 다룬다.


로봇에 의한 일자리 대체 문제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진 여러 문제점을 안락사 위험에 처한 경주마 ‘투데이’를 구하기 위해 인간인 ‘연재와 은혜’ 그리고 휴머노이드 ‘콜리’가 힘을 합치는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여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또한 문명이 주는 혜택에 빠져 동물의 존엄성과 같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치는 없는지 돌아보게 한다.


p.47
대학이 필수였던 시대가 한풀 꺾이면서 진로를 결정하는 시기는 더 앞당겨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연재의 꿈은 소프트 로봇 연구원이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희미했다. 왜 이 일을 하고 싶고 그래서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느냐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이 소설에서는 18살이 되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여 나아가야 한다. 과학 기술 발전만큼이나 빠른 삶의 방향성 결정을 청소년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현상일까?

*어느 책에서 탈북자에게 북한에서의 삶이 어땠냐고 물었을 때, 남한이 북한보다 살기 어렵다고 대답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이유는 남한에서는 너무 많은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결정을 합리적으로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책임감도 커지지만, 많은 결정을 해야 하니 월급을 많이 주는구나’라고 이해했었다. 이렇게 선택의 어려움에 대해 알아가면서 학생들과 상담할 때면 제일 안타까웠던 것이 바로 진로 결정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인데 이 사회는 남들보다 늦어서는 안 된다고, 빨리 너의 미래를 결정하라고 종용한다. 어른인 나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고 사는데, 경험이 부족한 어린 학생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단번에 선택할 수 있을까? 나는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여유를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꿈이 없으면 남들에게 뒤처지는 거야’라는 채찍질이 아닌 ‘조금 늦어도 괜찮으니 천천히 생각해 봐’라는 따뜻한 격려를 해줄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 우종영 지음, 한성수 엮음 p.18


p. 348~349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했다. 경마장에서는 빠른 말이 1등을 하지만, 느리게 달린다고 경기 도중 주로에서 퇴출당하지는 않았으므로, 애초에 천천히 달리는 것이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p. 352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아요. 저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돼요. 당신은 당신의 주로가 있으니 그것만 보고 달려요.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요.

빠르게 변화하며 효율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촌스럽지 않기 위해 숨 가쁘게 트렌드를 쫓고, 남들보다 뒤처진 건 아닐까 전전긍긍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자신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그저 앞만 보고 달린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빨리… 이렇게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태로 인생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앞만 보며 달리다가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빨리 달리고 있는지 마음속 물음표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멈춰서 물음표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텐데, 지금까지 빠른 속도로 달리던 내가 갑자기 멈춰 설 수 있을까?

출처. pixabay

“인생에서 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라는 간디의 말을 되새기며 우리는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통해 자신만의 주로를 찾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찾아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오히려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천선란 작가가 말한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라는 문장을 내 뜻대로 해석하자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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