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며느리는 몰라도 딸이 되긴 어려울 것 같아요
결혼하고 한 두 번째쯤 시댁에 내려갔을 때였을까.
마지막 날 시집을 나와 기차역으로 가는 차 안.
내 뒷자리에 앉아계셨던 어머니께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이런 말을 해주셨다.
"이제 내가 네 엄마야."
그 순간 자동으로 나의 친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
엄마아아아...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어디 뜻대로 되던가.
친엄마한테도 썩 잘하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이
시어머니 맘속에 착_ 하고 자리 잡을 리가.
어머님의 그 말씀이 있고 몇 년 후.
시댁 냉장고 전면에 A4 용지가 떡 하니 붙어있었다.
뭐지?
가까이 다가가 읽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이런저런 가족 시리즈.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 아들'부터 시작해서
실없는 웃음 나오게 만드는 이야기들.
그중에서 내가 보기엔
감히 이 종이의 하이라이트랄까.
'며느리를 딸로 알면 xx 년'이 떡 하니 적혀있었다.
아이고.
어머니.
시간이 약이라고 그 후 세월이 꽤 흘렀고
어머니와 나 사이도
좋을 때도 있고 얼굴 붉힐 때도 있는
그런 시간들이 섞여서 차곡차곡 채워져 왔다.
그런데 최근 어머님이 새로운 제안을 하셨다.
몇 년 전부터
어머님의 육 남매 형제자매가 1년에 한 번씩
부부동반으로 며칠씩 여행을 다니시는데
이번에 와서 같이 여행하자고.
육 남매가 낳은 아들들 중에 결혼한 아들은
내 남편 단 한 명.
또한 여행에 참여하는 자식뻘 되는
아이들은 전무한 상황.
휴.
내가 인프피라 낯가리고 할 말 못 하고 살지만
이상하게 이럴 때는
할 말은 하는 편이다.
어머니의 제안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쫌.. 그렇죠.."
1초 만에 내 의중을 알아차려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왜지?
왜 어머님은 내 마음을 몰라주시지?
세상 이해 안 간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왜. 가자. 얼마나 재밌는데. 이모들 다 오고"
와...
진짜 이런 상황에서 간다고 나서는 며느리가 존재할까?
세상 궁금하다.
내가 이상한 건가?
"네_ 어머니 너무 좋죠.
여행 갈 생각 하니까 너무 신나요.
매년 불러주세요"
이렇게 대답할 며느리가 들어왔어야
모두의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까.
나는
나를
미안해하게 만드는
그런 순간이
너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