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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May 31. 2022

오아시스

자비 없이 내리쬐는 햇볕에 숨이 막혀 길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마알간 실지렁이 같은 아지랑이가 일그러지는 숨 막히는 도심 속을 벗어나려 겉옷을 어깨에 걸쳤다. 등고랑을 소름돋게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주름없는 팽팽한 와이셔츠 소매마저 걷게 한다. 한 손으론 따가운 햇살을 가리고, 남은 손을 휘적대며 온몸으로 태양에 항의했다. 연신 나오는 한숨과 짜증.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숨을 곳을 찾고 있지만, 보이는 곳마다 손을 내밀고 자릿세를 요구한다.


터벅터벅. 땀에 흐물해진 목덜미를 손으로 쓸어내며 피난처로 향하고 있다. 그곳은 나만의 오아시스. 짙푸른 잎이 풍성한 나무는 자비롭고,  살랑이는 바람은 온화했다. 무엇보다 주변에 수다쟁이 개천이 졸졸졸 흐른다. 생각만으로도 신레몬을 먹은 것처럼 웃음이 질질 흐른다. 곧이다. 구질구질하게 내게 매달리며, 앞을 가로막는 질척이는 햇볕을 무시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어깨에 걸친 쓸데없는 거죽이 축축 해질무렵, 저기 오아시스가 보인다. 하지만 서두르면 안 된다. 서투른 애송이처럼 헐레벌떡 나무그늘로 숨어들면 안 된다. 예의를 갖춰야 한다. 성역에 들어가는 이들이 공물을 준비하듯이, 저기 보이는 편의점에 들러 음료를 사야한다. 당연히 달달한 라떼다.


하지만 예의없이 얼음컵을  빠뜨리는 서툰 실수를 해선 안된다. 딸랑.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건넨 무미건조한 인사말에도 작지만 또랑한 그런 에티켓을 건넨다. 그리고 능숙한 듯 커피를 고르고 냉동고를 열어 얼음컵을 신중히 고른다. 혹여 돌덩이처럼 딱딱히 굳어 울퉁불퉁한 얼음덩어리를 고르는 그런 초짜같은 그런 바보같은 선택은 금물이다.


그리고 나를 들어올때부터 은밀히 관찰하고 있을 알바생 시간을 뺏으면 안 되니 허둥대지 말고 스마트폰을 건넨다. 


....

안녕히 가세요. 

네. 수고하세요.

딸랑...


구름 위를 걷는 듯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물컹한 고무바닥을 가로질러 풍성한 초록 나뭇잎이 파라솔처럼 넓게 펼쳐진 그곳으로 갔다. 다행히 선객은 없다. 평소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나 어린아이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따가운 햇살이 경쟁자들에게 제대로 탱커 역할을 했나 보다.


서늘하게 음영진 세상으로 발을 들이니 공기가 달라진다. 숨구멍으로 끝없이 쇄도하던 놈들이 성역을 차마 범접하지 못했다. 말랑한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이 펼친 결계 밖에서 쨍한 햇볕이 더욱 성을 내고 있다. 하아.... 하지만 바로 벤치에 앉으면 안 된다.


제단에 제물을 올릴때 정해진 절차가 있듯이. 먼저 거추장스러운 눅눅한 지갑과 스마트폰을 꺼내 해가 비치는 곳에 두었다. 등을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에 축축해진 바지 뒷주머니 속에서 눅눅해진 녀석들을 뽀송하게 말려야 한다. 그리고 내 왼쪽 어깨에 걸쳐 있던 거추장스러운 허물을 벤치 한켠에 살포시 내려놓으면 된다. 


그리고 엉덩이를 벤치에 붙이고, 손에 든 얼음컵을 탁탁 두드려 얼음을 준비시키고, 라떼를 조심히 부었다. 컵이 라떼로 찰랑해지자 바다에 떠다니는 빙하처럼 얼음조각이 둥둥 떠다닌다. 그래. 모든 준비는 끝났다. 얼음 냉기에 축축해진 컵을 한손으로 슬며시 한 바퀴 돌리고 한 모금을 꿀꺽. 좋구나!


만족감에 다소곳이 모은 가랑이 사이로 양손을 넣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여유를 만끽했다. 눈 앞을 어슬렁이는 알록이는 덩어리에 눈을 뜨니, 짙푸른 나뭇잎 사이로 햇볕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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