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흐릿한 얼룩이 신경을 거스른다. 처음 봤을 땐 이게 뭐지 심드렁히 넘겼다. 얼룩에 대한 생각은 이내 없어지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타닥타닥... 그러다 또 얼룩이 다시 눈 언저리 저쪽에 어설프게 걸려있다. 아...되게 걸리적거리네... 무슨 얼룩인지 손이 먼저 움직여 그것을 더듬었다.
까슬한 감촉이 느껴져 손으로 힘을 줘 밀어봤다. 뭔가 표면에 묻어있던 가루는 지워지는데, 책상표면을 물들인 말간 거뭇한 흔적은 그대로다. 항상 책상 주변을 뒹굴다가 발에 채던 물티슈가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다. 없어진 물티슈를 찾아 잠시 책꽂이를 노려보다가 나직한 한숨을 쉬고 하던걸 계속했다. 일어나기 귀찮았다.
눈과 손을 모니터를 향해 익숙한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자꾸 백스페이스만 누르게 된다. 자꾸 묽은 얼룩과 물티슈가 아른거린다. 키보드 위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왼손을 들어 눈썹 위를 슬쩍 긁적이다가 얼룩을 문질렀다. 뽀득...뽀드득...뭔가 진하고 질척한 게 흘렀는지 제대로 오염된 듯한데? 왼손을 혀에 가져다 톡 찍어 다시 그곳을 서너 번 세차게 비볐다. 미끄덩. 찝찝하지만, 그보다 먼저 저 얼룩을 지우고 싶었다.
뭐지? 눈을 찡그리며 뭐가 흔적을 남겼는지 허리를 수그리며 고개를 길게 뺐다. 볼펜? 연필? 커피? 콜라?....콜라!? 그래 콜라 아니면 다른 비슷한 끈적한 음료겠지. 커피는 쉽게 지워지니까. 잠시 흔적을 노려보다가 혹시 하는 마음에 손톱을 세웠다. 역시... 지워지는 느낌이 전혀 없다. 이러다가 괜히 표면에 매끈하게 코팅된 게 벗겨질까 다시 부드러운 살로 슬슬 문질렀지만.....슬슬 짜증이 나려고 한다.
손가락 리듬에 맞춰 양다리를 흔들고 동시에 상체는 등받이 탄성을 이용해 앞뒤로 흔들흔들, 고개는 이따금 까닥이며 타이핑을 치고 있었는데... 왜 화가 부글거리고 있는지. 한창 궤도에 올라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관성으로 조금만 더하면 됐었는데 마알간 얼룩이 모두 망쳐버렸다.
뭔데 안 지워지는 거야! 순간 올라온 짜증에 손톱 핏기가 사라질 정도로 힘을 줘 문질렀다. 책상을 흔들며 짜증을 부렸지만 여전히 얼룩은 그대로였다. 도대체 물티슈는 어디 있는 거야? 다시 재빨리 어지러운 책장을 살피고, 혹여 책상 아래로 떨어졌을까 상체를 책상 밑으로 숙였다. 옳지. 저기 있구나. 책장 틈으로 언제 떨어졌는지 허연 먼지 구덩이 속에 물티슈가 구겨져있었다.
의자를 뒤로 밀어내고 책상 밑을 어기적 기어가 뒹굴고 있는 녀석을 끄집어내고 다시... 표면에 묻은 흐리멍덩한 먼지를 신경질적으로 강하게 두드려 털어내고, 대충 잡히는데 뭉텅이로 뽑았다. 이를 앙다물고 책상얼룩을 박박 문질렀다. 이번엔 반드시 지워내려고 빠득 소리가 날 때까지 강하게 문질렀다. 덜컹덜컹. 책상은 덜컹이고 내 앞에 매달린 모니터는 이리저리 기우뚱댔다. 물기를 대충 손으로 훔치고. 왜 그대로야? 짜증 나네. 흐릿한 얼룩은 여전히 어쭙잖은 생김새로 나를 점점 끓어오르게 했다.
아.... 짜증 나네. 짜증..... 울컥울컥 솟아나는 화를 억누르려다, 다시 자연스레 돌아가는 고개와 물티슈 세례를 받아 맨들 해진 얼룩표면에 더욱 짜증이 솟구쳤다. 화를 분출하려 책상을 내리치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왜 이러지? 왜? 아무것도 아니잖아. 이게 화낼 일인가? 책상에 얼룩이 저기 뺀질거리는 거뭇한 얼룩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한가운데, 끄트머리, 모서리, 그리고 책상 여기저기.
커피 자국, 커터 자국, 볼펜 자국 자질구레한 크고 작은 얼룩달룩한 흔적이 저리 많은데 왜 유독? 저것에만 과도한 집착을? 너무 오래 앉아 있었나? 커피를 많이 마셔서? 아니면....
이유를 이리저리 나열하자니 어지럽다. 부글 끓던 화가 가라앉고, 화르륵 타올라 재만 남긴 씁쓸한 뒷맛에 혀만 차게 된다. 쌓인게 무너진건가, 아니면 내가 무너트린건가? 그리고 양보와 배려가 나에겐 앙금이었구나. 당시엔 그냥 넘겼지만 좀스러운 내 맘은 여전히 꿍해 있었구나. 뭘 해야 이 쪼잔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