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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Jun 10. 2022

하늘은 흐린데....

눈을 감고 눈썹을 좌우로 움찔거리다가 엄지손가락으로 이마를 두어 번 길게 긋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맹물이 섞인 변두리 싸구려 맥주마냥 흐리멍덩한 빛을 쫓아 화장실로 향했다. 허름한 빛이 보여준 윤곽을 따라 손을 쭈욱 뻗어 스위치를 켰다. 위잉.... 조용히 돌아가는 팬소리를 들으며 화장실 문을 열었다. 눈이 찌뿌려지는 밝은 led 불빛을 하품으로 빨아들이며 상의를 벗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매일 까먹는다. 욕실 가기 전 새수건을 챙겨야 한다는 걸... 물방울을 바닥에 질질 흘리며, 침대 맞은편에 있는 뻑뻑한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어거지로 꾸역꾸역 욱여넣은 수건들로 미어터진 서랍에서 한개를 꺼내고, 서랍틀에 걸려 닫히지 않는 서랍을 억지로 밀어넣었다. 달콤하고 향긋하지만 뒷내음이 쓴 세제향을 맡으며, 부드러운 수건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다시 화장실 앞으로 다가가서 방안 스위치를 켜고, 신발장 위에 올려둔 로션을 대충 짜 얼굴에 펴 발랐다. 손안에 남은 끈적함이 싫어 몸통에 다시 슥슥... 잠깐 화장실 물을 내렸던가?



쏴아아...콰르륵...뭔가 노쇠한 조랑말이 마지막 귀찮은 숨을 들이키는 것같은 괴이한 소리를 뒤로하고 방을 가로질러 갔다. 자기 전에 물을 따라뒀던 책상 위 텀블러를 들어 갈증을 해소하고, 현실을 깨닫고 싶어서 두터운 커튼을 젖혔다. 역시... 오늘은 날이 많이 흐리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나는 쓸데없이 해맑고 쨍한 날보다 오늘같이 저런 흐리멍덩한 구름낀 날을 더 좋아하니까...



유리창에 오른손을 올린 채, 밖을 구경하고 있는데 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다다다 들린다. 문득 생각난 시답잖은 헛생각에 피식거리다가 묵직한 창을 끈적한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연한 비누향에 어딘가 매운 세제향 그리고 나는 알지 못하는 끈적한 로션 향기에 적응하던 콧구멍에쌩한 비린 새벽 내음이 들이친다. 거부감이 들 정도로 비릿한 내음에 창을 다시 닫을까 했지만, 밤새 내가 뱉은 숨으로 바닥으로 가라앉아 묵직하고 눅눅해진 공기를 내쫓기 위해 창을 가로막고 있던 두터운 커튼도 한쪽으로 젖혔다.



물끄러미 흐린 세상을 바라보다가 베란다 창문이 애매하고 쪼짠하게 열려있는 모습이 거슬려서 슬리퍼를 찾았다. 한데 지난밤 반대편 창을 열고 베란다에 나갔는지, 슬리퍼가 그쪽에 놓여있다. 짧은 고민을 이내 포기하고,  차가운 타일 바닥에 축축한 맨발을 디뎠다. 거슬렸던 창문을 활짝 열고, 내친김에 방충망도 열어 멀쩡한  세상에 손을 내밀었다. 하늘 꼬라지가 질질 짤 것 같은 그런 모양새라서 손을 내밀었더니, 눅눅한 습기만 느껴진다. 이거 비 오겠는데.. 어쩌지? 우산 없는데....  


© jessele,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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