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ty Jun 20. 2022

바뀐 신호등

커피를 들고 길을 가다가 저기 10m 거리에 내가 건널 횡단보도가 보인다. 사람들이 신호등 근처에 여럿 서성이는 걸 보니 신호가 바뀔 때가 .....? 그 순간 반대편을 보며 도로 둔턱에 서있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애매한데... 뛸까? 사람들이 횡단보도 1/3 정도 지나는 걸 보며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횡단보도를 향해 달음질을 쳤다. 고민한만큼 늦었기에 더 힘을 내야 한다. 여기 신호등 대기시간이 좀 길고, 게다가 날이 좀 덥다. 뙤약볕 아래서 훵훵 지나는 자동차들 매캐한 매연 냄새가 싫어서 뛰기로 했다.


꽉 쥐면 내용물을 왈칵 쏟아버릴것 같은 부들한 플라스틱 컵을 아슬하게 붙잡고 횡단보도를 향해 뛰었다. 한 모금 정도... 살짝 입술만 댄 얼음이 가득한 투명한 컵은 요란한 달그락 소리를 내며 시선을 주목시켰다. 민망함에 자세를 의식하며 최대한 손에 움직임이 안가게 하려 했지만, 새어나오는 커피는 어쩔수가 없었다.


손등만이 아닌 내 바지, 운동화 그리고 마알간 흰 티셔츠에도... 티셔츠에 튀긴 커피 방울이 점점 커지는 걸 걱정스레 보면서도 뜀박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중간에 멈추면 신발과 바지, 티셔츠에 묻은 얼룩에 대한 보상은 무엇으로 ...


준비없이 갑자기 뛰어서 그런지 자세 잡기가 애매하다. 급해서 발을 빨리 움직이기는 했지만, 커피라는 애물단지때문에 몸 밸런스가 무너졌다. 맞은편 파란색 신호등이 깜빡이는 걸 보면서 어색한 몸뚱이를 보다 편하게 하려 했지만 글쎄? 갑자기 묵직한 중량으로 발바닥을 강타하는 아스팔트 바닥에 뻣뻣한 무릎이 비명을 지른다. 뚜둑뚜둑...달그락 거리며 걷는 해골 병사처럼 따닥거리며 어색하게 뛰는 내 모습이 맞은편 상점 거울에 점점 더 선명해질수록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한때 100m 달리기 1등도 했었는데... 물론 초등학생 때 이야기다. 오래전 이야기. 생각해 보니 군대 제대 후 이렇게 길고 빠르게 그리고 필사적으로 뜀박질을 해본 적은 없었던 같다. 이전에도 횡단보도에서 신호등과 신경전을 벌이긴 했지만, 대부분 빠른 걸음이었을 뿐 이렇게 숨차게 달려본 적은 없다. 꿈속 도망질 빼곤. 


그런 거였나? 몸의 퇴화. 운동을 매일 하지만, 달리기는 하지 않고 턱걸이나 스쿼트같은 정적인 근육운동만 해서 몸이 정적으로 변한모양이다. 달리기는 이제 필요 없다 생각한 건가? 대략 20m 정도 달린 것 같은데 하체가 벌써 욱씬하다. 나름 하체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엉망이네? 살려달라 호소하듯 거친 숨을 토해내는 가슴을 달래기 위해 손에 들린 커피 빨대를 쭉 빨아들였다. 그리고 반대 손으로 커피를 옮겨들고, 커피로 흥건해진 손을 허공에 털어냈다.


쨍한 햇볕은 여전히 뜨겁고, 갈길은 멀기만 한데 어떻게 하지?








작가의 이전글 흐릿한 뒤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