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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Jul 18. 2022

삭아버린 치기

한때 나만, 나혼자만, 내 힘으로만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심장을 쿵쾅이게 하는 열정에 과민반응이었을까?

검은 달과 푸른 태양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휑한 황무지를 맨몸으로 횡단하는, 여행하는 상상을 종종 하던 시절이었다.

밤이면 잠이 드는 달.

달무리 주변을 흐르는 반짝이던 별빛도 사멸하는 깜깜한 어둠 속을 초라한 작대기를 길잡이 삼아 헤멘다.

내 젊은 날의 망상은 무엇을 바라 달과 태양이 숨어버린 단조로운 세상을 갈망했을까?

젊은날의 하릴없이 불쑥이는 호르몬탓일까?


내 방 구석 한자리를 차지하는 넙적한 4단 책장의 맨 밑에는 지난세월 내 치기어린 망상을 봉인해둔 낡은 노트가 몇권 숨겨져 있다. 묵은 먼지와 습기로 눅눅하고 탁해진 스프링 노트를 펼치면 그 시절 불뚝이던 혐오스러운 망상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날카롭게 사방을 찌르는 위협적인 필체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타오르며 내 얼굴을 붉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공격적이고 사나운 그리고 마치 잔혹한 대지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고행자처럼 스스로를 복돋이고 있었다. 차마 만지기 싫은 눅눅한 노트를 넘길수록 이어지는 한숨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다. 그렇게 싯다르타 코스프레를 즐기던 어느순간 글이 바뀌기 시작했다. 저 드높은 하늘을 거스르려 활활 불타올랐던 자존감이 사그라들더니 마침내는 지저분한 볼펜똥만 가득한 페이지가 나타났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그 시절 나를 되돌아보니, 그 시절 나는 온몸을 짓누르는 좌절감에 숨막혀 버둥거리던 시기였다. 화려하게 빛나는, 휘황찬란한 백색빛을 반사하는 빌딩에 나역시 그곳에 드나들거라 확신했던 나 자신이 희미해지고 있던, 그런 시절. 아주 작고 가는 틈이라도 거기에 나를 맞추기 위해 한없이 스스로를 낮추었지만, 그마저도 몸을 맞추지 못했던.


그래서였을까? 눅눅한 노트의 마지막에 비겁한 글이 남아 있었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변절자처럼 느껴졌을..


"인간은 오롯이 혼자일 수 없다.

존재는 하나로는 성립이 될 수 없는 피조물이다.

둘의 부대낌으로 셋이 되고 나아가 마을이 된다.


인간은 또다른 하나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길에서 인연을 맺어 친구와 연인을 만나고 

결국엔 나를 만난다.


길은 인간을 위해 인간이 만든다.

고이지 않는 커다란 흐름을 위해 만들었다.

전염병 같은 역병이 흘러 마을을 망치거나

옆 마을의 적이 나를 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길을 끊을순 없다.

스스로를 가둔 인간은 자신의 호흡에 죽기 때문이다."


이건 변절일까 아니면 진리일까?

이젠 어린애처럼 정답찾기는 그만뒀다.

그리고 만일 내가 찾은 답이 정답이면 어떻고, 오답이면 어쩌란 거지?

환호를 하거나,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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