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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Jul 19. 2022

그런날

가던 걸음을 멈춰 사람들에게서 몇걸음 떨어진 곳, 그곳에서 이마를 적시는 땀을 손으로 쓸어내며 시간을 확인했다. 언제나처럼 내 걸음 속도는 같았고, 길도 우회해서 샛길로 오지않아 시간도 늘어지거나 줄어들지 않았다. 그럼 기다리는 버스가 곧,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내가 건너온 횡단보도 앞에서 버스가 털털거리고 있었다. 난 평소와 같았지만, 버스는 평소보다 서둘렀다.


여느 때와 같이 한 공간에 빗발치는 수신음들에 스트레스 받기 싫어서, 하얀 귀마개와 내겐 높고 튼튼한 장벽 같은 칸막이에 몸을 웅크려 숨겼다. 완만하게 기울어 둥그런 모양새의 유선형 망고를 반으로 싹둑 자른듯한 녀석을 이리저리 움직여 내 몫으로 새로 할당된 노역꺼리를 뒤적이다가 파일폴더에서 어제 마무리했던 꺼리의 잔해가 난잡하게 남아있었다.


망고 반절을 닮은 덩어리를 움직여 지워버리려다 괜한 노파심에 한쪽에 깡그리 몰아두었다. 000, 가져와봐요!.... 분명 보냈을 텐데, 아니라고? 불타오르는 억울함을 노파심의 유산으로 진화를 했다.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이 일 때문에 노파심 코너가 생길지도?


나른함이 눈꺼풀에 졸음을 차곡 쌓는 가시 같은 시간, 텀블러를 백기처럼 흔들며 밖으로 향했다. 잠시 비에 젖은 콘크리트 냄새와 달콤하지만 텁텁한 프림의 자판기 커피, 그리고 내 방 모기처럼 앵겨붙는 밉상의 아이돌 이야기를 들으며 졸음을 치웠다. 아니 항복을 했을 때 이미 지워졌었나?


무거워진 텀블러를 들고 엉덩이를 다시 붙인 순간 "까똑". 햇볕에 질식할 것 같은 날, 하늘 귀퉁이에서 창백한 낯의 달을 본 것처럼, 생경하고 선명히 들린다. 가볍게 풀어져 내 머리 위에서 살랑이던 기분이 날카로운 알림에 가슴 아래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런 거지. 낯설고 새롭던 물건도 시간이 지나며 손에 익어 지루해지는 거겠지. 그리고 어느새 방치되 텁텁한 먼지만 즐거워하겠지. 그래 그런 거지. 낡은 옷은, 지루해진 옷은 옷장 어딘가에 실종되겠지.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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