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첫째주가 끝날 무렵, 내 잔망스러운 체취가 남아있는 보금자리에서 자질구레한 여남은 짐을 바리바리 챙겼다. 그리고 그다음주, 인근의 자그마한 이곳, 원룸으로 이사를 왔다. 햇살을 막는 커다란 불청객이 없어, 밝은 햇살이 함뿍 들어오는 넓은 창이 마음에 들어 이곳으로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마음에 든 다른 한 가지. 베란다 밖 아래를 내려다보면 길게 길을 거스르는 좁다란 회백색 시멘트 길을 경계 옆으로 자그마한 텃밭이 있었다. 그때는 4월이라 녹색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로지 삭막한 황톳빛 땅에 잡다한 비닐과 조그만 돌멩이들만 뒹굴 뿐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 땅에 무언가를 기른듯한 흔적은 여실했다. 여하튼 황망한 시멘트 건물과 아스팔트가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오른쪽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짙은 녹색 소나무 숲이 있어 머무는 바람에 파도처럼 잔잔히 커다란 녹색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지만, 이건 이사 오고 며칠 지나서야 알아챘다.
그리고 이사 온 지 2주 정도 지났을까 상추처럼 생긴 앙증맞은 모종이 휑했던 황톳빛 공터 가장자리에 길게 자리하고 있었다. 반갑다기보단 내 예상이 들어맞은 것에 만족스레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또 며칠 후 자줏빛 모종이 심어져 있었는데, 얼마 전에서야 알았지만 무였다. 그땐 고구마인 줄... 그리고 텃밭을 길게 에둘러 짤막한 옥수수가 울타리처럼 심어져 있었다.
그 후로 종종 앙증맞은 상추와 무, 옥수수가 풍성해지고 길죽 해지는 모습을 흘끗대며 즐거워했다. 내가 한 건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풍성해지고 짙어지는 녀석들의 모습에 괜히 대견했다.
그리고 지금 7월 셋째 주. 지리한 장마가 꾸물대는 시기, 황폐하던 황톳빛 공간은 숨 막힐 정도로 녹색 물결이 흐드러져 있다. 풋내를 풍기던 3달 전과는 확연히 다른, 성숙한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지나는 실바람에도 휘청이던 녀석들이 이제는 든든해 보이기까지 한다.
상추와 무도 풍성해졌지만, 옥수수의 변화에는 미치지 못했다. 짭둥했던 키가 이제는 나보다 한뼘이상 길어졌고, 앙증맞던 잎도 바람에 제법 나풀거릴 정도로 길쭉해졌다. 그리고 아직은 덜 여문 옥수수가 빼꼼히 수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