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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ty Jul 25. 2022

오래된 은행나무

자주 건너는 횡단보도에서 항상 눈길이 가는 곳이 있다. 그곳은 오래돼 보이는 커다란 은행나무에 교묘히 가려져 있어서, 만약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은행나무를 마주 보고 선다면 커다란 녀석의 덩치때문에 은밀히 숨어 있는 그곳을 볼수가 없다. 나 역시 항상 서 있는 자리에 습관처럼 찾아가기에... 마음이 한번 정한 기준을 깨기는 여간 어렵지 않아서.


내가 항상 서던 곳에 만약 사람이 여럿이 서있지 않았다면, 습관적으로 향하던 발길을 멈추진 않았을 거다. 그리고 마음과 타협한 자리에서 맞은편 조그만 창을 째려보며 바뀌지 않는 녀석을 원망하며 몸이 달았을수도... 또한 지금처럼  뭉게뭉게 피어나는 짧은 단상의 불쏘시개를 발견하지 못했으리라.


묵직하고 압도적인 질량으로 자신을 짓누르며 일렁이는 해숫물에 힘겨워하는 열대어처럼, 강렬한 태양의 세례에 느적거리며 횡단보도에 겨우 도착했다. 하릴없이 하늘거리는 신기루의 보탬에 더 강렬해진 신호등의 붉은색을 잠시 힐끗. 뜨듯한 열기가 올라오는 보도블록을 탓하며 쨍한 햇볕을 쨍하게 흡수한 반질한 구두를 들썩여 몸을 슬쩍 틀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오아시스. 커다란 구두쇠 은행나무 할배의 구역.


구두쇠 같은 은행나무 할배는 자기 구역에 내리쬐는 태양빛을 누구에게도 양보하기 싫었는지, 초록잎을 두툼한 양탄자처럼 조밀하고 빽빽하게 탐욕을 부려, 그 아래 검은 땅에는 흔한 잡초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 아래는 단지 서늘한 냉기만 흐를뿐이었다.


큼지막한 쇳덩어리가 육중한 덩치를 뽐내며 기운차게 내 앞을 지나간다. 차라리 저렇게 씩씩한 기운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눈을 멀게 하는 섬광탄이 터진 세상에서 눈조차 쉽게 뜰 수가 없다. 저 구두쇠 그늘 아래로 조용히 숨고 싶다. 왜 저곳만 초록 잎이 살랑살랑 나풀대는지, 바람은 구두쇠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저 숨겨진 던전에서 은밀한 어두운 기운이 새어 나오는 걸까?


어느새 농밀한 집착으로 변한 질투심에 정신마저 어질하다. 햇볕을 독차지하고, 바람도 독차지하고, 내 망상마저 빼앗아가다니. 밝은 햇볕에 반짝이는 느슨한 초록 덩어리와 굵직한 검은 기둥이 점점 지워지고 망상이 보여주는 투박한 횃불이 성을 내는 어둑한 계단 위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보여준다. 깊고 가파른, 그리고 눅눅한 곰팡이 내와 녹진하고 퀴퀴한 먼지 내가 나는 가파르고 끝이 보이지 않는 그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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