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어 이전엔 음성 즉, 소리로 의도를 전달했을 것이다. 크게, 중간으로 또는 속삭이듯이. 물론 몸짓으로도 했겠지만 각설하고 소리를 조절해 뜻을 전하다가 어느 순간 특정 사물을 지칭하는 '단어'가 생겼을 것이다. 그럼 어느 순간이란 언제일까? 아마도 지위를 가진 자를 향한 찬양이거나 강한 자가 권위를 위해 욕심을 드러냈을 때였을 것이다.
힘이 강한 자 즉 대장 지위를 지닌 이가 가령 '돌'을 'ㄱ'이라 하면 공동체의 구성원은 권위, 힘을 숭상해 'ㄱ'이라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ㄱ'은 다른 부족에 이어졌을 것이다.(평화 또는 강압적인 방법에 의해..) 이런 일련의 과정이 지나면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단어가 축적되고, 권위 전승을 위한 기록을 할 수 있는 문장이 완성되었으리라.
한데 의사소통의 도구가 언어에서 문자로 변화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연구에 따르면 약 1만 년 전에 언어로 의사소통을 시작했고, 문자화되는 시간은 4000년 정도 소요되었다고 한다. 여러 가설이 있겠지만 아마도 부족사회의 존속이 너무 길었던 게 이유인 것 같다.
부족사회보다 더 큰 도시를 이루고, 나아가 국가를 형성해야 기록의 필요성을 느껴 문자를 발명했을 텐데, 원시 부족의 존속이 너무 길었다. 소통을 단지 열댓 명이 한다면 문자가 굳이 필요하진 않았을 테니, 말과 몸짓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언어는 마치 바이러스 같다. 강한 전염성으로 생명체를 파괴하는 바이러스와 언어는 성향이 비슷하다. 사상이란 병균을 지니고 언어는 문자에 스며들어 한 국가에 전파되어 그곳을 파괴하거나 변화시킨다. 우리는 언어가 지닌 치명적인 위력을 굳이 기록을 찾아보지 않아도 익히 알 수 있다. 인류가 그간 자행했던 학살의 이면엔 언어가 은밀히 도사리고 있었다.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을 요사한 언어는 부추겼으리라. 언어의 독니에 중독된 이들은 무지와 야만에 물든 자를 구원한다는 명목이란 갑옷을 두른 채 구원이라는 창칼을 들이댔다. 살육으로 얼룩진 대지를 새하얀 종이에 위대하고 거룩한 성전이라 치장해 스스로를 위안케 한 독니.
지금도 언어의 독니는 무뎌지지도 흐릿해지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점점 날카로워지고 진해졌다. 우리는 진화한 언어가 주입한 독에 중독된 채 굶주린 맹수처럼 다른 먹잇감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