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의 향이 전해주는 계절

by 나린



가을이 오면 먼저 몸이 반응을 한다.

아침에 문을 열자마자 ‘후’ 하고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어김없이 마음이 먼저 간질간질해진다. 여름의 뜨거운 기운이 사라지고, 대신 부드럽고 향기로운 공기가 들어차게 된다. 그 향에는 ‘추억’이란 타임캡슐이 실려 있다.


가을바람...

운동회 날 새하얀 체육복을 입고 친구들과 달리던 어린 시절, 청팀, 백팀 팀을 갈라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김밥 도시락 냄새가 운동장에 가득했던 장면들이 바람에 실려 찾아온다. 친구들과 소풍 가서 과자 나눠 먹고, 나뭇잎을 모아 꽃다발처럼 묶어서 재잘거리며 놀던 기억도 함께 피어오른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 바람.. 참.. 좋다.


어린 시절 추억의 향이 지나고 나니 단풍산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회사 동료들과 가을 주왕산을 오르던 날,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도 이상하게 발걸음이 가볍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 아마 눈앞에 펼쳐진 단풍 때문이었을 것이다.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이 한꺼번에 눈앞에 펼쳐지니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에 감사하다.


그리고, 가을이 더 좋은 이유. 바람이 살짝 스며드는 창가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과 책 한 권.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고요하게 들리는 그 시간은, 세상 어느 고급 카페보다도 근사하다. 활자가 마음에 스며들고, 한 문장이 오래오래 여운을 남기고.. 역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가을이 되면 이상하게도 사람이 그립고, 편지도 쓰고 싶어지고, 오랜만에 누구에게든 전화를 걸고 싶어진다. 어쩌면 이 계절의 바람이 ‘마음의 창문’을 살짝 열어주었나 보다. 펜을 잡고 누군가를 떠 올려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을이 끝나갈 즈음이면, 나는 슬그머니 겨울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첫눈 소식이 들려오면 괜히 설레고, 거리의 조명이 하나둘 켜질 때면 마음이 따뜻하게 달아오른다. 크리스마스란 단어에 가슴이 뛴다. 가을은 그렇게 겨울을 향한 설렘을 품고 내 곁을 조용히 스쳐간다.


그래서 나는 해마다 이 계절을 ‘추억의 계절’, ‘책의 계절’, 그리고 ‘설렘의 전령’이라고 이름을 바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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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불어올 때, 당신 마음엔 어떤 추억이 살짝 고개를 들고 있나요?